[미디어세상] 노동 보도서 반복되어온 형식과 언어 바꿔야
실업급여 폐지를 거론하며 ‘노는 사람이 더 번다’ ‘여성 노동자는 실업급여를 받아 명품 액세서리를 산다’라는 요지의 발언을 한 현 여당과 정부 담당자의 발언이 비판을 받고 있다. 실업급여 수령자를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 이러한 발화들은 현 정부가 반노동 정책을 기조로 삼아 노동자 권리를 축소하는 정책을 펴고 ‘노동자’를 비난의 대상으로 삼아온 것과 그 궤를 같이한다.
아쉽게도 다수 언론 보도는 ‘노동자 비난’을 그대로 전달하는 데 그치거나, 여야 간 정쟁으로만 다루면서 우리 사회가 노동에 대해 논의할 공론장을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노동과 삶,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접할 수 있는 공교육의 기회조차도 편향된 교육이라는 비판을 받아 예산이 삭감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언론이 노동과 삶에 대한 의제를 ‘파업 갈등’과 ‘노동자 비난’을 넘어서 어떻게 설정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이제까지 노동의 의미에 대한 공적 논의의 장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노동에 대한 인식이 사무직 정규직 노동자 중심으로 형성되어 다양한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가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 마치 개인의 선택 문제 혹은 임금이 높은 직장에 취업하지 못한 실패 때문인 것처럼 이야기되는 것을 온라인 공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노동 환경은 청소년 시기 획득한 학교 성적에 따른 징벌이나 포상이 아니고 안전하고 평등한 직장에서 일하는 것은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이다. 파업 보도 기사 댓글란에 해당 일을 하는 노동자는 당연히 부당한 환경을 참고 감수해야 한다는 식의 맹목적 비난이 늘어나거나, 실업급여는 고용보험 관련법에 의해 노동자가 부담해온 것이며 근본적으로는 노동 안정성의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실업급여를 수령하는 노동자가 국가 재정을 편취하는 게으른 사람인 양 비난하는 댓글이 게시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노동과 삶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구성해오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
그런데 저널리즘이 노동 주제를 잘 다루기가 쉽지 않아 현장의 고민이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노동 관련 주제는 사건·사고와 관련되어 파업이나 산업재해의 경우에만 주요 소재가 되고, 경과 중심의 스트레이트 보도가 주가 되며 이 경우 결국 정부 대 노조, 경영진 대 노조 등 갈등 주체들의 발화를 전달하는 데 집중하게 된다. 산업재해 관련 보도, 이주노동자 관련 보도가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는 까닭은 이 때문일 것이다.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감시가 이루어지지 않아 언론은 관련 사건을 자극적으로 반짝 보도하는 데 그친다. 특히 포털을 통해 뉴스가 소비되는 현실에서 정파적 대립 구도에 따라 주목이 달라지는 현재의 언론사 수익 구조에서는, 노동 보도가 결국 정파 대결 구도로 수렴된다는 것이 여러 연구자에 의해 지적되었다.
경향신문의 기획 기사 ‘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하시나요’는 작업복을 매개로 노동의 안전 문제가 추상적인 것도 아니고 특정한 직종의 것만이 아니라는 점을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전달했다. 이외에도 여러 언론에서 여성 노동자의 현실,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기록하는 기획을 진행 중이다. 정부의 반노동 정책이 강화될수록 현장의 목소리가 언론에 의해 더 많이 알려져야 한다는 점에서 이처럼 언론이 노동자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작업이 더욱더 적극적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
물론 노동 보도가 모두 기획 보도여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반노동 정책하에서 기득권에 의한 노동자 비난의 언어를 그대로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노동 보도에서 반복되어온 형식과 언어를 바꾸기 위한 시도가 이루어져야 한다. 노동자가 하는 일과 경험을 기록하는 것이 보도 방식의 변화 방향을 만들어내는 가장 기본적인 일이 될 수 있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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