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이 있어야 꽃이 핀다… 세계 42위가 보여준 투혼

박강현 기자 2023. 7. 17.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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윔블던 女단식 본드로우쇼바 우승
팔에 격언 문신 새기고 각오 다져
‘노 시드’로 출발해 강호들 다 격파
15일 윔블던 여자 단식 우승 트로피(비너스 로즈워터 디시)를 들어 올린 마르케타 본드로우쇼바. /로이터 연합뉴스

마르케타 본드로우쇼바(24·체코·세계 42위) 양팔엔 문신(tattoo)이 새겨져 있다. 왼쪽 팔엔 ‘다 괜찮아(it’s okay)’, 오른팔엔 ‘비를 맞지 않으면 꽃은 피지 않는다(no rain, no flowers)’다. 16살 때 처음 했는데 장식용이면서 동기 부여 차원이다. 이 문신은 스스로 의기소침할 때 각오를 다지는 자극제이기도 하다.

그는 15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에서 열린 윔블던 테니스 대회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온스 자베르(29·튀니지·6위)를 1시간 20분 만에 2대0(6-4 6-4)으로 완파하고 우승했다.

우승을 확정 지은 뒤엔 얼굴을 감싼 채 코트에 드러누워 감격을 표현했다. 문신 문구대로 본드로우쇼바는 비(시련)를 맞으며 개화(開花·성공)를 기다려왔다. 1999년생인 그는 20세이던 2019년 프랑스오픈 준우승을 하면서 빛나는 미래를 보장받는 듯했다. 그러나 그해 하반기 왼쪽 손목 부상으로 시즌을 마쳐야 했다. 왼손잡이인 그에겐 치명적이었다.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 단식 은메달을 따며 재기하는 듯했으나 왼쪽 손목에 다시 문제가 생겨 수술을 받고 한동안 라켓을 놓아야 했다. 만개(滿開)하기도 전에 꺾이는 게 아닐까 불안스러운 주변 시선을 견뎌가며 그는 끝내 시련을 이겨냈다.

마르케타 본드로우쇼바 오른쪽 팔꿈치에 있는 ‘비를 맞지 않으면 꽃은 피지 않는다(no rain, no flowers)’ 문구가 적힌 문신. /AFP연합뉴스

본드로우쇼바의 이번 윔블던 우승은 이변으로 평가된다. 그조차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테니스는 정말 알 수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는 세계 랭킹이 낮다 보니 상위 32명에게 주는 시드(seed)도 받지 못한 채 대회에 출전했다. 결국 여자 프로테니스(WTA) 랭킹 제도가 도입된 1975년 이래 윔블던 정상에 오른 가장 낮은 순위 선수로 이름도 남기게 됐다. 이전엔 2007년 당시 31위로 윔블던을 석권한 비너스 윌리엄스(43·미국)가 기록 보유자였다. 본드로우쇼바 개인적으론 2019년 프랑스오픈(준우승) 이후 통산 두 번째 4대 메이저 대회(호주·프랑스·US오픈과 윔블던) 결승 진출이며 첫 메이저 우승 트로피다.

본드로우쇼바는 지난해 윔블던에는 관객으로 참여했다. 손목 수술 이후 회복 중이라 경기를 뛸 수 없어 대신 첫 윔블던 예선에 나선 친구를 응원하러 왔다고 한다. 그러나 1년 만에 그는 관객에서 주인공으로 발돋움했다. 원래 스포츠용품 회사 나이키 후원을 받다가 지난해를 끝으로 계약도 종료되는 ‘굴욕’도 겪었다. 나이키는 그가 부상에서 회복될지 확신이 없었던 듯했다. 결과적으로 “나이키가 성급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우승한 이날은 본드로우쇼바의 결혼식 1주년 전날이었다. 본드로우쇼바는 경기장을 찾은 남편 스테판 시메크(26·체코)를 바라보며 “내일이 우리 결혼식 1주년인데, 정말 뜻깊다”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작년에 (이 시기쯤) 손목 수술을 받고 깁스를 하고 있었는데, 올해는 우승해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며 “돌아오기까지 참 쉽지 않았다. 인생은 아무도 모른다”고 기뻐했다.

아랍권 국가 출신 선수론 첫 메이저 대회 여자 단식 우승에 도전한 결승 상대 자베르는 패배가 아쉬운 듯 눈물을 쏟았다. 이어 “수많은 부상을 이겨낸 본드로우쇼바를 축하한다”면서 “다시 돌아와 언젠가 이 대회에서 우승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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