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 길 위의 거울
길을 걷다가
길인 줄도 모르다가
걷고 있는 줄도 모르다가
헐떡이며 쉬다가
쉬다가 나는 저만치 있는
나를 보아버렸다
나는 어디에도 없었다
길을 벗어난 자 감옥에 갇히고
감옥을 벗어난 자 길에 갇힌다
기도해보지 않은 자 있는가
바람의 채찍에 생채기
나지 않은 자
또 어디 있는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고찬규(1969~)
무슨 급한 볼일이 있는 것일까.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헐레벌떡 길을 걷고 있는 시인. 풍경을 완상하기는커녕 걷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다. 서둘러 걷다 보니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길 위에 선 목적을 내려놓고 잠시 다리쉼을 하던 시인의 눈에 “저만치” 거울이 들어온다. 자신과 마주친다. 저만치는 시인과 거울의 거리지만, ‘거울 속의 나’를 통해 확인한 삶의 괴리이기도 하다. 먹고살기 위해 헐떡이는 사이에 정작 내가 원하는 삶은 잊혔기 때문이다.
시인은 거울 밖에서 거울 속의 나를 응시하다가 문득 ‘감옥’을 떠올린다. 삶이 감옥에 갇힌 건 아닌지 생각한다. 거울은 반성의 사물이고, 길은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지는 곳이다. 그런 길에서 벗어나는 것은 “감옥에 갇히”는 것이고, “감옥을 벗어”나 찾은 자유도 결국 생존의 길 위에서 바둥거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삶이 힘들 때마다 간절히 기도도 해보고, “바람의 채찍”에 상처를 입기도 한다. 하긴 상처 없는 삶이 어디 있겠는가. 길 위의 사유가 깊다.
김정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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