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헌법과 제헌의 정신
오늘은 대한민국헌법이 제정된 것을 기리는 국경일, 제헌절이다. 헌법이 제정되었다는 것은 분명 기념할만한 일이다. 헌법은 국가의 존재 형식과 과제를 밝히고 과제수행의무자인 국가기관이 작동하는 원리와 방식 및 한계를 설정하여 국민의 지위를 보장한 ‘기본규범’인 점에서, 헌법제정으로 국가의 토대와 성격을 이해할 수 있는 입문이 마련되었고 국가구성원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교양이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헌법은 최고 권력인 주권의 발동으로 등장해서 모든 국가기관을 지배·규율하는 국가의 ‘최고규범’이자, 다양한 생활영역에서 형성된 구성원들의 공감대를 결집한 ‘공통규범’이기도 하다. 특히 헌법의 최고규범성은 헌법을 위반한 권력기관에 대한 탄핵이나 위헌법률심판과 같은 헌법재판 혹은 국가대표기관인 대통령이 취임에 즈음하여 행하는 헌법준수 선서 등으로 확인되며, 공통규범으로서 헌법이 갖는 위상은 서로 다른 꿈을 꾸며 정치적 투쟁을 이어가는 여당과 야당 모두 자신을 헌법정신의 표상인 양 내세우며 헌법을 근거로 상대를 질타하는 현실을 통해서 일상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따라서 헌법제정은 주권에 기대어 정치체의 기본질서를 결단하고 공동체에서 발생한 다양한 갈등과 충돌을 근본적으로 성찰 및 조정할 수 있는 최고 심급을 구축하는 것인바, 이를 정치공동체가 기억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제헌절이 우리에게 경사스러운 날로 기념될 수 있는 이유는, 혁명을 통해 신민(臣民)에서 주권자로 거듭난 후 주권적 승리의 영구적 지탱을 위하여 통치권자로부터 쟁취해 낸 전리품과도 같은 규범이 헌법이기 때문이다. 이는 대한민국헌법이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제정된 헌법임을 밝힌 헌법 전문(前文)과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한 헌법 제1조 제2항 및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한 헌법 제10조를 통해서도 간파할 수 있겠지만, 시공간을 막론하고 통치권자에 맞서 주권의 위엄을 내보인 혁명정신이 제헌정신의 요체임을 통해서도 뒷받침된다. 실제로 1789년 프랑스혁명은 프랑스공화국 헌법(1791년)을, 1917년 러시아혁명은 러시아연방공화국 헌법(1918년)을 성립시켰고 영국의 식민 지배에 맞선 독립혁명의 결과가 1788년 발효된 미합중국 헌법이며 1948년 7월 17일 공포된 우리 헌법 또한 일제 식민 지배에 항거한 해방혁명의 성취다. 따라서 헌법은 현실의 변화무쌍과 구체적 삶의 현장에서 입법권·행정권·사법권 등과 같은 모든 통치권을 순치시켜 권력적 차원에서는 주권을 구현하고 권리적 차원에서는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우리들의 도구, 즉 통치권을 겨냥한 주권자의 무기로 현실에서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만큼은 국가기관의 음흉과 무능을 폭로하고 남용과 교만을 꾸짖으며 무책임과 자의성을 규탄하면서, 통치권에 항거하여 성공적으로 권력을 찬탈한 혁명정신을 계승·재현하는 주권자들의 큰 잔치로 보내는 것이 좋겠다. 특히 대통령 윤석열도 국회의장 김진표도 대법원장 김명수도 자칫하다가는 처형당한 찰스 1세와 루이 16세, 내쫓김 당한 이승만, 살해당한 박정희, 감옥 간 전두환·노태우·이명박, 탄핵당한 박근혜와 같은 선배 통치권자들의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벌벌 떨도록 그래서 그들이 스스로 권력 행사를 성찰할 수 있도록, 허수아비에 그들의 이름을 써 붙여 화형식이라도 거행해 볼 일이다. 헌법을 구현해야 할 수단인 국가기관이 헌법을 도구로 자신의 권력 강화에 급급한 세태와 헌법에 순치되어야 할 권력자가 헌법정신의 표상처럼 으스대며 헌법으로 주권자를 겨냥하고 있는 부조리를 조금이라도 태워버릴 수 있는, 그러한 제헌절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헌법 국가의 교양 있는 구성원이라면, 통치권자의 장신구로 전락한 관제 제헌 기념식만큼은 걷어치워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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