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제헌절에 제안하는 ‘한국형 대통령제’ 개헌
1987년 헌법과 대통령 5년 단임제는 독재시대와 절연하고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만연해 있던 권위주의 문화를 바꾸며 민주주의의 발전을 견인했다. 권위주의 정부가 주도하던 관치경제와 사전검열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자, 글로벌 기업이 등장하고 문화산업이 세계적인 영향력을 갖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은 세계 10위 수준의 경제대국이자, 국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민주국가이다.
하지만 대통령 5년 단임제가 야기하는 각종 병폐들은 정치 수준을 갈수록 저하시키고 있다. 5년마다 교대하는 집권세력이 정치권력을 악용해 경제적 이익을 얻는 구조는 사라질 기미가 없다. 정권교체는 자신의 득점이 아닌 상대의 실점으로 이뤄지니, 야당은 권력을 되찾고자 대통령의 발목만 잡으려 한다. 반면 대통령과 여당은 승자의 오만함에 도취돼 야당을 국정운영의 동반자로 인정하지 않고, 힘으로 누르기 일쑤다. ‘팬덤정치’ 경향이 강해지면서 양대 정당은 갈등의 정치를 극대화해 강성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다.
게다가 무능한 대통령들은 우리 사회가 당면한 어려움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이 국정의 모든 상황과 쟁점을 파악해 최선의 대책을 제시할 것이란 환상은 이제 버릴 때가 되었다. 대통령 1인이 복잡다단한 사회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관통하는 혜안을 갖긴 힘들다. 이는 유능한 참모들이 보완해야 하는데, 측근과 자기 진영 사람만 발탁해선 불가능하다. 심지어 단임제 대통령은 미래를 위해선 절실하나 인기가 없는 장기 과제를 뒤로 미루고, 5년짜리 사업만 몰두한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초래하는 온갖 폐해들이 과거의 가장 중요한 문제라면, 대통령의 무능은 미래의 가장 심각한 난제가 될 것이다.
상대 진영에 대한 혐오를 조장해 표를 얻으려는 술책이 난무하고 지도자들의 무능을 방조하는 현재의 정치 시스템을 개조해 정치가 소임을 다하려면, 개헌이 필요하다. 1987년 중진국 초입에 개정했던 헌법의 한계를 인정하고, 선진국에 맞는 헌법으로 바꿀 시점이다.
그동안 축적한 경험을 살리면서, 결점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헌법 개정을 해야 한다. 대통령제의 장점인 강한 리더십으로 국정과제를 완수할 수 있는 여건을 집권 초기에 제공하되, 대통령을 적절하게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 여야의 극단적 대립을 막기 위해선 야당이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유연한 제도가 필요하다. 정치는 선악 대결이 아니다. 초당파적 협력과 타협의 정치는 국가적 과제를 신속하게 해결하는 원동력이자, 인재풀을 넓히는 밑바탕이 될 수 있다. 급변하는 시대에 대통령이 무능하면, 임기를 5년씩 보장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4년 중임 대통령제로 변경하고, 의원의 절반을 집권 직후 선거에서, 나머지 절반을 중간선거에서 선출하는 것을 제안한다. 국민은 2년마다 실시하는 총선에서 대통령과 국회를 통제할 수 있다. 국회는 총리추천권을 갖고, 총선에서 여당이 이기면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국정을 이끌지만, 야당이 승리할 경우 연립정부를 구성할 수 있는 권력구조를 도입해야 한다. 인구구조 변화, 국제정세의 격변, 기후위기, 신기술 등이 가져올 미증유의 과제를 정치가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형 대통령제’ 개헌이 절실하다.
김정현 전북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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