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시간 지나면 영화 관람객 올 거란 허망한 기대
1895년 프랑스 뤼미에르 형제가 파리의 한 카페에서 ‘열차의 도착’이라는 1분도 채 안 되는 무성영화를 상영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영화사(史)에서 최초의 영화로 기록되는 이 영화를 제작했다는 자부심이 앞섰을까, 아니면 ‘음성도 나오지 않는 이 정도 수준의 영화를 만든 건 과연 잘한 일일까’라는 후회가 밀려 왔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달리는 기차가 앞으로 튀어나올 듯한 영상에 놀라 혼비백산한 관람객들의 모습에 영화의 기술적 요소를 개선하려는 다짐을 했을까. 분명한 사실은 128년 전 이렇게 영화가 처음 등장했고, 이를 계기로 ‘편집예술’인 영화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고조된 측면이 있으며, 20세기 미국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본격화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흐름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영화는 자본과 기술이 토대가 되는 대중예술을 대표하는 장르로 산업적으로도 가장 앞서 나가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른바 ‘K콘텐츠’의 선두에 영화가 자리하고 있으며 국가적으로도 영화진흥위원회를 통해 정책적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아카데미상 작품상을 수상한 ‘기생충’ 등 한국 영화들의 경쟁력이 세계 유수의 국제영화제에서도 입증된 이후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에 ‘영화 강국’이라는 수식어가 추가됐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한국 영화가 침체의 깊은 수렁에 빠지면서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는 모습은 심상치 않다. 이것은 데이터가 확인시키고 있다.
영화 관람 데이터 플랫폼인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KOBIS)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극장 관람객수는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9년 상반기(1억931만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5천839만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한국 영화의 성적은 처참할 정도로 저조하다. 같은 기간 한국 영화의 관객 점유율은 36%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지난 5월 말 개봉한 마동석 주연의 영화 ‘범죄도시3’가 1천만명 관객을 돌파하면서 한국 영화 통계 관련 지표를 호전시키기도 했으나 이는 한국 영화 전반이 아닌 특정 영화에 국한된 일시적 현상으로 보는 게 옳다.
한국 영화의 유례없는 부진에 대해선 다양한 분석이 뒤따른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급부상한 넷플릭스 등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에 영상콘텐츠 주도권이 넘어갔다거나 ‘기생충’ 이후 관객을 사로잡을 만한 킬러 콘텐츠가 보이지 않고 있다거나, 관객의 의견과 상관 없이 지속적으로 오른 영화 티켓값 등이 발목을 잡고 있다는 식의 지적이 대체적이다. 이 가운데 어느 한 가지 이유만으로 한국 영화의 위기가 초래됐다고 보긴 힘들지만 영화계가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는 건 아닌지 성찰이 필요한 시점임에는 틀림없다.
영화의 주요 특성 중 하나가 관람이라는 소비행위를 통해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가치와 효용을 알기 힘든 ‘경험재’라고 봤을 때 영화 제작의 눈높이를 투자자나 배급사가 아닌 관람객, 즉 소비자에게 맞추는 전략의 선회는 필수적일 것이다. 지금처럼 ‘시간이 지나면 관람객들이 돌아올 것’이라는 영화계 일각의 근거 없는 기대는 희망사항 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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