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신과 의사는 후쿠시마에서 공포마케팅을 본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2023. 7. 17.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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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오염수로 온 나라가 난리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시험 결과를 자신의 입장에 따라 해석하며 진실 여부를 판단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방사능 농도가 높다는 사고 이후 바로 방류되었던 오염수에도 2010년 이전과 2011년 사고 이후의 우리나라 해안의 방사능 수치에 차이가 없다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보고가 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발표를 근거로 보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후 그 바닷물이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몇 년 후에도 방류 당시의 6억분의 1 정도의 방사능이 돌아온다. 방사선의 영향 정도를 나타내는 단위는 mSv(밀리시버트)인데, 우리나라 근처의 바닷물을 식수로 1조년 동안 마셔야 흉부 X-ray 1번 찍을 때의 방사선 양인 0.2-0.5mSv 정도를 받는다. 방사선사의 1년에 허용되는 방사능 양이 50mSv이니 거의 영향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자연계에는 우리가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공기나 땅으로부터 나오는 방사선이나 음식이나 공기를 통해 받는 방사선이 존재하는데, 인간은 연간 2.4mSv의 자연 방사선을 받으며 살고 있다. 이 내용은 과학적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정치인과 과학자들은 후쿠시마 오염수와 관련하여 불안을 조성하는 것일까?

불안은 ‘이유 없이 막연히 나타나는 불쾌한 정서적 상태’이다. 불안은 대상이 없는 막연한 상태이지만, 공포는 그것을 일으키는 특정 상황이나 사물이 있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 나타나고 있는 국민 정서는 불안보다는 오히려 공포에 가깝다. 현재 불안을 조장하는 것은 공포 마케팅이다.

공포를 느끼면 인간은 두 가지 반응 중 하나로 나타난다. 급성 스트레스 반응의 하나로 그 대상과 싸움을 하거나 도망을 하는 둘 중 하나를 하게 된다. 미국의 생리학자 월터 캐넌이 처음으로 언급한 바로 싸움-도피 행동(fight or flight)이다. 이 반응으로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고, 심장 박동 수와 혈압이 올라가며 호흡도 빨라진다. 즉, 교감 신경이 극단적으로 활성화된 상태인데, 만성피로, 우울, 면역력의 감소, 그리고 두통, 천식, 소화불량 등 각종 신체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몸과 마음은 큰 상처를 입을 수 있다.

인지적 관점에서 보면 불안이나 공포는 인간의 이성적 판단에 영향을 준다. 공포를 느끼게 하는 핵심적인 뇌 부위는 ‘편도(amygdala)’인데, 편도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미래 발생할 일들에 대한 예측을 부정적으로 하는 경향이 심해진다. 불안이나 공포스러운 상황에서는 합리적인 판단이나 예측보다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판단을 더 많이 하게 된다. 현재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에 대한 과도한 불안이나 공포심 조장은 사람들이 실제로 나타날 수 있는 미래의 결과보다 더 부정적인 예측을 하게 만든다. 국민의 상당수가 오염수 방출을 반대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행위는 의도적으로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는 것이다. 개인이 합리적 판단을 하더라도 상당수의 국민이 반대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결정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불안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 방사능이 몸에 해로운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은 방사능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고, 어느 정도 있느냐인 것이다. 방사능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모두 해로운 것은 아니며, 그 정도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단순히 방사능의 유무에 의해 해악이 결정되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모두들 국민들의 불안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번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는 과학적 내용을 정치화한 것이 문제이기도 하지만, 이를 국민들에게 잘 설득하지 못한 탓이기도 하다. 아무리 과학적으로 맞는 사실이라도 국민 감정을 이해하고 설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헌법’ 위에 ‘국민정서법’이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지 않은가? 이제라도 차분히 이 문제를 살펴보고, 온 나라가 불안과 공포의 쓰나미에 휩쓸리기보다는, 국가나 국민을 위해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은지 곰곰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우리는 국민들에게 불안을 조장해서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예를 이미 광우병 사태에서 경험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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