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이처럼 계속 회전… 에르도안은 과연 이번 NATO 최대 수혜자일까
돌변해 스웨덴 나토가입 승인… “푸틴 등지고 바이든 포옹” 말 나와
반대급부로 EU가입 청신호·美 F16전투기 도입 등 경제·안보 이익 챙겨
단기적으론 승리 평가 많지만 “기회주의” 비난도… 튀르키예 미래 주목
지난주 리투아니아 나토 정상회의의 주인공은 단연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대통령이었다.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줄곧 반대하다가 돌연 수용했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회원국들은 놀라면서 반색했다. 호사가들은 에르도안이 갑자기 푸틴을 등지고 바이든과 포옹했다며 입길에 올렸다.
7월 초까지만 해도 달랐다. 에르도안은 반(反)튀르키예 쿠르드 인사들을 보호하는 스웨덴을 지금껏 얼마나 공격했던가. 스웨덴 극우 정파의 코란 소각 시위로 이슬람권의 반발이 이어지던 차였다. 에르도안은 핀란드의 나토 가입은 허락할지언정, 스웨덴만큼은 안 된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었다. 이 와중에 갑자기 입장을 바꾼 것이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급변침의 포석을 한 것일까?
첫째, 무엇보다 경제 위기가 심각했다. 친서방 노선 복원이 긴요했다. 작년 인플레이션이 80%에 육박했다. 리라화(貨) 가치는 사상 최악으로 하락, 에르도안의 전통적 지지 세력인 빈곤층부터 삶이 피폐해지고 있다. 선거 앞두고 금리 인하 및 확장 재정의 포퓰리즘으로 수렁에 빠진 경제다. 지금 정상화하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는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경고가 지속되고 있다. 미국 및 유럽과의 경제 협력을 통해 위기를 돌파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상회의 이후 튀르키예 국민의 유럽 비자 자유화 검토 및 유럽연합과의 자유무역협정 확대 추진 소식이 전해졌다.
둘째, 국내 정치 지형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5월 대선에서 드러난 민심이 만만치 않았다. 에르도안은 신승(辛勝)했다. 다수 여론조사 결과가 야당 후보의 당선을 예측했었다. 결선투표에서 52:48로 승리했지만 반대하는 국민이 거의 절반에 이른다. 압승했던 2018년 대선 분위기와는 판이했다. 경제 위기 및 지진 대응 책임론 때문이었지만 국정 노선과도 연관이 있다. 특히 도시 및 해안 선거구는 야권 성향으로 친(親)유럽 노선을 지지한다. 여론은 점차 이쪽으로 기우는 추세다. 스웨덴 나토 가입 허용을 조건으로 에르도안은 유럽연합 가입 가속화라는 반대급부를 약속받았다. 전통적 지지층에 더하여 이제 반대파를 위무해서 정치적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의지가 읽힌다.
셋째, 중동의 지정학적 상황도 변수다. 그간 유럽보다는 중동에 역점을 기울이며 이른바 동진 정책을 펴던 에르도안이었다. 3월 10일, 사우디와 이란의 국교 정상화로 역내 지각 변동이 일어나는 중이다. 사우디와 이란 갈등의 틈을 노려 3각 세력균형을 꿈꾸던 튀르키예였다. 실제로 카타르와 손잡고 중동에서 군사적 관여도 조금씩 확대해왔고 시리아와 리비아 등 분쟁 지역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던 터였다. 그러나 중동 내 미중 경쟁의 격화와 갑작스러운 중동 데탕트로 인해 튀르키예의 운신 폭이 좁아지는 국면이다. 이에 다시 전통적 유럽 외교 노선의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모양새다.
넷째, 미국 변수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에르도안과 회담한 바이든은 이를 ‘역사적 만남’이라 평가했다. 불과 두어 달 전까지만 해도 껄끄러운 사이였다. 튀르키예 대선 때 백악관은 내심 에르도안의 낙선을 바랐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동맹국이면서도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모스크바와 긴밀히 소통하는 에르도안이 편할 리 없었다. 인권 문제도 껄끄러웠다. 그러나 이번 회의에서 에르도안은 미국의 안보 지원을 다시 확인했다. F16 전투기를 비롯, 기존 80여 대에 달하는 항공기의 현대화 업그레이드 키트까지 제공받을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돌발 행보로 고민하던 미국은 모처럼 반색했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뚜렷한 외교 치적이 없어 고민하는 바이든에게는 꽤 매력적인 성과다. 에르도안은 스웨덴 카드를 활용, 미국으로부터 이익을 얻어내는 게임을 했다. 에르도안에게 공을 들이던 러시아의 푸틴은 한 방 맞은 느낌일 것이다.
에르도안은 금번 나토 정상회의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 유럽연합 가입 청신호를 얻어 국내 반대 여론을 희석시킬 수 있었다. 경제 위기 타개를 위한 숨통을 열었고, 미국의 안보 지원도 가시화했다. 완강하게 버티면서 나토의 절실함이 고조되자 이를 잡아채 스웨덴 가입을 지렛대로 이익을 챙겼다. 물론 러시아에 불리한 전황이 서서히 드러나자 기회주의적으로 재빨리 편을 바꾸었다는 비아냥도 없지 않다.
에르도안의 변신은 한가지 인상적인 소회를 남긴다. 국시처럼 내세워 온 이슬람의 가치도 국익 앞에서는 결국 뒤로 밀린다는 것이다. 코란 소각 논란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을 받아들인 에르도안의 결심은 낯설면서도 자연스럽다. 이념과 가치가 국익 앞에서는 필요에 따라 하부 단위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권위주의 행태와 인권 탄압 논란이 여전함에도 불구하고 바이든은 에르도안의 손을 잡았다. 중국과 러시아가 이끄는 현상 변경 세력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중간 지대 국가들을 품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미국이 다시 사우디에 공을 들이는 까닭이다.
튀르키예의 미래 행보에 관해 평이 갈린다. 혹자는 에르도안이 다시 서방의 품으로 돌아왔다고 분석한다. 내외 환경과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튀르키예는 앞으로 미국, 유럽과 함께하지 않을 수 없다는 평가에 착안한다. 반면 어떤 이들은 에르도안의 행보를 발레의 피루엣(Pirouette·한쪽 다리를 중심축으로 팽이처럼 회전하는 동작)에 빗대기도 한다. 한 발을 축으로 다른 발을 전략적으로 치열한 계산 끝에 움직이는 피벗(pivot)과는 달리 끊임없이 입장을 바꾼다는 의미다. 상황에 조응하며 이익을 추수(追隨)하는 태도를 마냥 비난할 수는 없다. 유연함은 분명 유익한 덕목이다. 그러나 잦은 입장 선회는 신뢰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단기전에서는 혹 승리할 수 있으나 궁극적 승리는 어렵게 만든다. 에르도안은 앞으로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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