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발언대] 새 질문에 걸맞은 답을 갖고 있는가
프랑스에서는 정부의 연금개혁에 맞선 시위에 이어 알제리계 소년의 죽음으로 이민자들의 저항이 거세다. 이번 시위는 이민자 차별에 항거하는 성격이 크지만 두 시위를 잇는 고리에는 재생산 위기가 있다. 저출생·고령화에 뒤따르는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는 적극적인 이민자 수용 정책을 불러왔지만, 이민자들은 배제와 포섭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저임금·고위험 일자리로 내몰렸다. 그리고 프랑스의 연금개혁 추진의 배경에는 경제성장과 인구증가를 전제로 설계된 연금이 더는 지속하기 힘들다는 사정이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인데, 더 심각한 인구감소와 불평등에 처한 만큼 프랑스의 소란은 우리가 직면할 미래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여러 정책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반응이자 조치로 볼 수 있다. 그것은 이민청을 통한 적극적인 ‘외국 인력 수용’ 시도를 비롯해 국민연금·교육·노동 등의 ‘3대 개혁’, 재정준칙 법제화, 공공부문 ‘혁신’, 건강보험 ‘개혁’, 직무급제 도입, 각종 요금 인상, 실업급여 하한액 조정 등에 이르기까지 전반에 걸쳐 있다. 그 방향과 내용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국가적 재생산 위기 앞에서 성장기에 설계된 제도들이 재논의되고 재편·개혁되어야 할 상황임은 분명하다. 문재인 정부 또한, 동일한 위협 앞에서 여러 개혁의 운을 띄웠지만 사실상 유예하거나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개편하는 데 실패했다.
이렇듯 우리는 국가적 구조조정 상황에 직면해 있다. 여기서 구조조정이란 단순히 없애거나 줄이는 것이 아니라 놓인 상황과 조건을 고려한 제도적 합리화일 수도 있고, 빼고 더하는 조정의 대타협일 수도 있다. 진보운동은 어떤 대안을 갖고 있을까? 윤석열 정부에 의해 추진되는 각종 ‘개혁’을 마냥 저지한다고 위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부의 몫이니 국가가 모든 것을 책임지라 주장하면 되는 일일까? 지금의 조건을 인정하면서 지속 가능한 복지나 사회안전망 강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시장’에 모든 것을 내어주려는 정부와 싸운다고 해결될 일도 아닐 것이다. 확장재정을 통해 해결하라기엔 국가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며 세대 간 정의의 문제도 간단치 않다. 장기화하는 저성장 국면에서는 증세에 의존하는 것 또한 한계가 크다. 게다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양안 위기 그리고 북한의 위협 앞에서 군축을 통한 재원 마련이라는 주장 또한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정부의 잘못된 방향을 지적하는 건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에 모든 책임을 돌린다고 재생산 위기가 해결될 리 없고 제도 대안들이 마련될 리 없다. 철 지난 답안지를 고수하는 것도 무책임하다. 안타깝지만 서울 도심의 시위만이 날로 소란스럽다. 우리는 당연하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변하고 낡아가는 시대를 마주하고 있다. 새로운 질문에 걸맞은 답을 내리기 위한 진보운동의 성찰과 토론이 절실하다.
김건우 참여연대 정책기획국 선임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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