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시시한 공자님?
고등학생 시절 그때는 지금보다 시간은 느렸고 공간도 넓었다. 지금이면 기차로 1시간반이면 도착할 거리도 그때는 서너 시간은 족히 걸리곤 했다. 장시간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식사, 간식, 시간을 보낼 거리 등을 신경써야 했다.
한 번은 기차에서 시간을 때울 요량으로 공자님과 제자들의 대화를 집필한 고전인 논어를 사서 기차 안에서 봤다. 그런데 그렇게나 유명한 논어의 첫 구절이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다니? 멀리서 벗이 찾아오니 또한 즐겁다? 뭔가 거창하고 신비로운 것을 기대한 나는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유명한 고전의 첫 구절이 너무 평범해서 시시하게 느낀 것이다.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지나 출가 후 우연히 공자의 가치관을 사유하다 그때의 견해가 바뀌게 됐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그리고 우리는 행복을 얻기 위해 필사적이다. 그런데 공자는 단지 배우고 익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사람이 그딴 것으로 행복하단 말인가. 얼핏 시시해 보인 인물은 쉽사리 범접할 수 없는 태산 같은 거인이 돼 있었다.
논어가 시시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는 나 자신의 안목이 시시했던 것이다. 내면의 행복을 추구하지만 요란하지 않으며, 밖으로 사람을 대하지만 이해득실을 따져 차별하지 않는다. 논어의 서두에 나오는 군자의 상은 너무 투명해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우리는 저마다 행복을 좇아 동분서주 지구를 맴돌지만 오래 묵은 저 노인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 있을 뿐이다. 요즘은 정보가 넘쳐난다. 국립도서관 수십만 배 규모의 데이터센터가 필요할 정도로 정보량이 많아졌다. 그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찾아 소비한다. 무한증식을 꿈꾸는 뇌 속의 뉴런에 이끌린 듯 본능적으로 정보를 탐한다. 그것도 축약되고 편집된 5분 미만의 영상들을 선호한다. 소설과 드라마, 영화들도 일명 고구마로 불리는 답답한 전개를 싫어한다.
이런 현상들이 문제라는 것은 아니다. 이것도 한때의 유행일 것이다. 인류의 문화도 한때는 수식과 과장이 넘치는 화려함을 추구하다가도 간결하고 절제적인 담백함을 추구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인의 가르침이라는 것은 우리가 인류라는 종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시대와 무관하게 여전히 변하지 않는 가치를 전해준다. 그것은 삶의 본질에 대한 통찰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온라인에 끊임없이 쏟아지는 새로운 정보들로 뇌 속을 가득 채우더라도 그것의 본질을 통하는 안목이 없다면 그저 정보만 가득 담은 외장하드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성인의 말씀은 대체로 간결하다. 핵심만을 좇는 것이 요즘의 트렌드이듯 성인의 가르침들도 삶의 본질과 행복의 핵심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있다. 신비로운 수식들로 가득한 경전이라도 거품을 걷어내고 보면 평범한 구절 속에 비범함을 담았다.
청년이 방황하는 것은 신념과 철학을 가질 경험이 부족한 것이고 중장년을 꼰대라고 비꼬는 것은 일반화할 수 없는 자신의 경험을 진리인 양 신봉하기 때문이다. 철학은 돈이 안 된다고 했던가. 단지 배우고 익히는 것만으로 행복을 얻는 삶을 어찌 돈으로 가치를 매기겠는가. 삶의 작은 성찰이라도 그것은 1000년을 가는 보배며 한평생 모은 재물은 죽고 나면 티끌보다 못한 것이다.
진리를 만나는 것의 어려움을 눈먼 바다거북이 넓은 바다에서 구멍 난 나무판에 머리가 끼는 인연에 비유하거나 아침에 도를 얻어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한다. 인터넷에는 없는 것이 없다. 그래서 진리가 돌멩이처럼 굴러다닌다. 너무 흔해 별 가치가 없어 보여도 그 돌멩이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볼 눈 밝은 인연을 기다린다. 그것이 바로 무엇을 찾고 있는지 모르고 하염없이 찾고 있는 당신이 찾던 그 무엇일지도 모른다.
혜원 대한불교조계종 조계사 사회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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