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광암 칼럼]일타강사보단 특별감찰관이 필요하다
하지만 ‘종점 변경 의혹’ 해소엔 한계
줄 이을 ‘의혹 공방 늪’에서 탈출하려면
특별감찰관 임명 서둘러야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한 ‘원안’이나 ‘민주당 수정안’보다는 ‘국토부 대안’이 편익이나 기술 면에서 우월하고 지역 주민들의 기대에도 부응하는 안이라는 게 이 강의의 요지다. 주장의 구체적인 뼈대는 크게 세 줄기다.
첫째, 노선 변경 의견을 처음 제시한 것은 전문 엔지니어링 업체이며, 이 업체에 관련 용역을 발주하는 절차는 문재인 정부 시절에 이뤄졌다. 또한 이 업체가 대안을 국토부에 처음 보고한 것은 자신이 국토부 장관에 취임한 지 불과 3일 뒤의 일이라고 원 장관은 설명한다. 국토부 대안은 실질적으로 이전 정부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취지다.
둘째, 전문가들의 검토에 따르면 도로 설치의 가장 중요한 목적인 교통량 흡수 측면에서 예타 원안보다 국토부 대안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환경이나 문화재 보호, 마을 보존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도 ‘국토부 대안’이 월등하다고 원 장관은 설명한다.
끝으로 국토부 대안의 종점에 김건희 여사 일가의 땅이 있다고 해서 특혜라고 할 수는 없다고 원 장관은 강조한다. 서울∼양평고속도로 종점은 진출입로가 없는 분기점이어서 땅값을 끌어올리는 호재가 아닌 데다, 일가 땅도 이미 ‘1980년부터 갖고 있던 땅’이라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조회수나 댓글 반응을 보면 일단 원 장관이 일타강사로서의 ‘이름값’을 높이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지지층 일각에서는 ‘제2의 한동훈’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하지만 원 장관의 특강이 특혜 의혹 해소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의문이다. 거의 모든 쟁점에 대해 국토부·여당과 민주당 간에 반론과 재반론이 오가며 공방은 확산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김 여사 일가가 ‘1980년부터 갖고 있던 땅’이라는 대목에 대해서는,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일가 소유의 땅이 2005년 이후 매매를 통해 취득됐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강력한 반론에 부딪힌 상태다.
여야 공방은 그렇다 치자. 무엇보다 유튜브 특강에서처럼 일도양단식으로 설명이 가능한 내용이라면 그동안 원 장관이 보여준 ‘오락가락 행보’는 대체 무엇이었는가 하는 궁금증이 남는다. 원 장관은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국민적인 의혹을 사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강상면 종점안’에 대해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달 3일 기자간담회에서는 ‘늘공’ ‘어공’ 비유까지 해가면서 실무진의 ‘정무 감각 부재’를 질타했다. 그러다가 6일 뜬금없는 전면 백지화 카드를 던졌다.
여야 공방의 비용을 고스란히 국민에게 떠넘긴 ‘고속도로 사업 전면 백지화’는 어떤 논리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원 장관은 “민주당이 정치 공세를 계속할 것이기 때문에 이 정부 임기 안에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민주당이 의혹 제기를 하는 정책, 사업마다 건건이 백지화로 대응할 셈인가.
민주당이 김 여사를 최고의 ‘정치공세 소재’로 삼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앞으로 제2, 제3의 ‘종점 의혹’이 나올 것이다. 우상호 의원은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던 지난해 8월 “우리들 입장에선 김건희 여사가 계속 사고를 치는 게 더 재미있다”는 ‘속내’를 내비친 적이 있다. 대통령 주변의 비위를 감찰할 ‘특별감찰관’ 임명과 관련해서 “야당 입장에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이라는 발언을 부연하면서 나온 말이다.
여당이 김 여사를 둘러싼 의혹과 정치 공세의 늪에서 헤어나는 길은 우 의원의 말속에 실마리가 있다. 윤 정부 출범 이후 1년 이상 비어 있는 특별감찰관 자리를 서둘러 채워야 한다. 대통령 주변의 비위를 상시적으로 감찰하는 특별감찰관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어지간한 의혹은 국민에게 먹혀들지 않는 ‘백신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부수적인 효과를 떠나 대통령 주변에서 비위가 자랄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본질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일타강사가 와도 ‘건드릴수록 커진다’는 의혹의 속성을 바꿔 놓을 수는 없다. ‘고속도로 종점 의혹’이 해소되기를 기다리지 말고 지금이라도 특별감찰관 임명을 서두르는 게 좋다.
천광암 논설주간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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