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안 보이는 어떤 대법원 재판[기고/송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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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2009년 8월에 시작됐다.
이 사건의 대법원 사건번호는 '2013다'로 시작한다.
대법원은 '심리불속행기각'이라 하여 상고심에 올라오는 민사 사건 넷 중 셋은 실질적인 판결을 하지 않고 4개월 이내에 상고를 기각한다.
상고심에 올라간 지 만 6년이 되자 참다 못해 변호사와 별개로 대법원에 '사건 처리 결과 문의'라는 것을 제출한 원고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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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판결은 2021년 3월에 나왔다. 소송의 시작에서 끝까지 장장 11년 7개월이 걸린 것이다. 1심과 2심에서 거듭 감정(鑑定)을 거치느라 도합 4년이 걸린 것은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대법원에서 무려 7년 7개월이 걸렸다. 이 사건의 대법원 사건번호는 ‘2013다’로 시작한다. 사건이 대법원에 올라온 해가 2013년이라는 뜻이다. 그 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 피고 건설회사는 회사를 쪼개 지주회사를 만들었다. 피고 회사를 대리하던 로펌의 담당 변호사 중 한 명은 경력직 판사가 되는 데 필요한 햇수를 채우고 법관이 됐다.
물론 모든 대법원 사건이 이렇지는 않다. 대법원은 ‘심리불속행기각’이라 하여 상고심에 올라오는 민사 사건 넷 중 셋은 실질적인 판결을 하지 않고 4개월 이내에 상고를 기각한다. 그럼에도 이런 장기미제 사건들은 쌓인다.
‘태양반사광 사건’은 상고심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의 7년 7개월 동안 전원합의체로 넘어간 적도, 공개변론이 열린 적도 없었다. 결론도 2심과 같았다. 아무리 국내 최초 판례라지만 7년 넘게 걸릴 일은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사건 당사자들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언제 끝날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는 점이다. 상고심에 올라간 지 만 6년이 되자 참다 못해 변호사와 별개로 대법원에 ‘사건 처리 결과 문의’라는 것을 제출한 원고도 있었다.
지금 대법원에는 이 ‘태양반사광 사건’의 기록에 도전 중인 또 다른 사건이 있다. 바로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교수를 피고인으로 하는 명예훼손 형사 사건이다. 그의 유무죄를 논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 사건이 대법원에 올라간 지 5년 8개월이나 지났음을 환기하고 싶다. 1심 무죄, 2심 유죄로 판단이 엇갈린 사건이기는 하다. 사안의 민감성도 안다. 그래도 상고심 5년 8개월은 해도 너무했다. 1년만 더 가면 임진왜란보다도 길어진다. 피고인이 무죄라면 하루빨리 파기환송해서 다시 판결받게 할 일이고, 유죄라도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은 피고인에게 6년 가까이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게 하는 ‘희망고문’이야말로 가혹한 ‘형벌’ 아니겠는가.
두 달 남짓 지나면 새 대법원장 임기가 시작된다. 이런 상고심의 현주소를 직시하고 상고심 제도를 개혁하는 것이야말로 다음 대법원장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보수나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상고심 개혁에 관한 대안이 준비된 차기 대법원장과 그 대안을 입법으로 뒷받침하는 차기 국회의 협력이 절실하다.
송영훈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입법정책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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