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향칼럼] 세대 갈등

2023. 7. 16.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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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부모는 울타리가 아니고
자식은 미래가 아닌 ‘불통 사회’
부모세대의 잣대로 재단말고
불확실한 청년의 삶 응원해야

적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적의 행위를 이해하고, 그 행위의 스텝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있다. ‘적’이라고 썼으니 그 이해는 공격을 위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이해’하다 보면 최소한의 연민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것은 우리 안의 적개심을 인간애로 바꾸는 연습이기도 하다.

적도 아닌데 적이 되어 버린 세대와 세대가 있다. 청년 세대와 노년 세대, 이 세대 갈등은 우리 사회에서 엄청난 분열의 에너지로 작동하고 있다. 부모 세대가 청년 세대를 낳았건만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청년 세대는 부모 세대를 생존의 부담, 나아가서는 걸림돌로까지 생각하는 듯하다. 반대로 부모를 봉양하고 가족을 지키는 일이 자신을 지키는 일이라 생각해 온 부모 세대는 끝없는 경쟁에 지치고 지친 청년 세대의 한숨과 화를 공격으로만 느끼며 함께 화를 내고만 있는 것 같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수치상으로는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이 연금개혁이다. 평균수명이 70세였을 때 기획한 연금을 평균수명이 84세가 되어도 똑같이 받는다면 그것은 분명 미래 세대의 부담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젊은 세대는 부모 세대가 안정적으로 받는 연금을 자신들의 미래를 훔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이제 자식에의 의존을 꿈꿀 수도 없이 각자도생해야 하는 부모 세대는 연금개혁을 최소한의 안정성을 도둑맞는 일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세대 갈등은 가족 내에서도 만만치 않다. 가족을 위해 살았던 부모 세대는 ‘효도’라고는 1도 없는 청년 세대에게 섭섭하고,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는 일이 불가능하거나 갑갑한 청년 세대는 부모를 밀어내거나 저항하는 일이 자연스럽다. 이제 더 이상 늙은 부모는 울타리가 아니고, 성장한 자식은 미래가 아니다. 우리는 불통의 사회를 살고 있는 것이다. 함께 살아도 함께 살지 않고, 관계가 있어도 관계의 의미가 갈등인 힘든 사회를. 어디서부터 꼬인 것일까.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했던 말 중에 마음속에 새긴 말이 있다. “자기 방식으로 세상을 살되 타인을 존중하라.” 실제로 자기 방식으로 살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을 존중할 줄도 모른다. 자기 방식으로 사는 일도 쉽지 않은데 왜 우리는 남의 방식을 틀렸다고 공격하다 미움으로 얽혀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일까?

세상은 정말 빠르게 변해 가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부모 세대가 청년 세대였을 때의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교육관, 직업관, 성 역할, 가족관 등 많은 면에서 청년 세대와 부모 세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다. 더 이상 우리 사회는 아버지의 방식, 어머니의 방식을 배우는 것이 힘이었던 전근대 사회가 아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밀란 쿤데라는 그런 의미에서 선구자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우연’의 의미에 천착한 그는 역사란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라고 했다. 그 역사 위에 집을 짓고 있는 삶도 지극히 가벼운 시대인데, 그런데 대한민국의 ‘성공’을 이끈 부모 세대는 ‘성공 신화’의 무게를 왕관으로 삼고, 그 방식이 이미 콤플렉스가 된 줄도 모른 채 청년 세대를 그 잣대로 가르치고, 재단하고, 충고하고, 통제하려 하면서 스스로 벽을 만들고 있는 것 같다.

그대는 먹은 맘 없이 자주 아이들과 밥상을 함께하는가? 마음을 나누는 가장 좋은 방법은 먹은 맘 없이 함께 밥을 먹는 일이다. 그런데 현실은 부모의 잔소리 때문에 되도록 부모와 함께 밥을 먹지 않는다는 학생들이 제법 있다. 밥이 아니라 잔소리를 먹게 해서는 안 된다. 밥상머리에서는 취업 얘기, 성적 얘기, 잘잘못을 따지는 얘기 말고 공감의 말, 축복의 말, 감사의 말이 많았으면 좋겠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 채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는 세상에서 지금 우리의 청년 세대는 이정표까지 스스로 마련하며 세상과 부딪쳐 자신의 길을 개척해야 하는 세대다. 그들이 묻지 않는 이상 모르는 척, 못 본 척, 못 들은 척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청년 세대가 듣도 보도 못한 세상에서 자기 이야기를 잘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축복해 주는 일일 뿐이다. 그래야 마음이 열리고 소통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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