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한복판서 납치당한 한국 외교관…1년 8개월만에 실마리 찾다 [리뷰]
정작 갱들은 한국 외교부에 인질의 목숨값을 요구하지 않는다. 흥정은커녕 연락도 없다. 오 서기관은 중동 한복판에서 증발해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외교부 내부 회선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온다.
사람 목소리 대신 전화기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는 외교부 직원용 소통 암호였다. 해석해보니 ‘나는 대한민국 외교관 오재석입니다’란 뜻이었다. 1년 8개월 만의 급보였다.
올여름 한국영화 블록버스터 중 하나인 ‘비공식작전’이 베일을 벗었다. ‘믿고 보는 배우’ 하정우·주지훈의 쌍톱 주연에다 영화 ‘끝까지 간다’와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의 김성훈 감독의 연출작이다. 지난 13일 시사회에서 영화를 미리 살펴봤다.
‘비공식작전’은 1980년대 실제 외교관 피랍 실화를 각색해 제작된 영화다. 협상금을 들고 레바논 현지로 급파되는 이민준 사무관(하정우)은 납치범이 비선으로 요구한 500만 달러를 전달하고자 베이루트행 비행기를 탄다.
누가 적인지 누가 팀인지 확신할 수 없는 불신의 땅 베이루트. 입국도 전에 정보를 입수한 공항경비대가 이민준 현금을 강탈하려 뛰어오고 레바논에 불법체류 중인 택시운전사 김판수(주지훈)는 피로로 곯아떨어진 이민준의 가방에서 뭉칫돈을 빼내 튄다.
탈탈 털린 이민준 앞에 흙바람 일으키며 택시를 몰고 다시 나타난 김판수. 무장단체의 배반과 협잡, 들판의 들개떼까지 두 사람 목숨과 돈을 겨냥한다. 두 사람은 오 서기관을 무사히 구출할 수 있을까.
비서울대이자 외교부 ‘성골’이 아니란 이유로 승진 기회를 놓친 이민준이 당대 최고 권력 안기부장을 설득해 레바논행을 주장하는 패기는 영화 ‘비공식작전’의 호기로운 출발과 맥을 같이 한다.
영화는 정적과 굉음이 뒤섞인 죽음의 무대 레바논 흙먼지 속으로 관객을 정위치시킨다. 도미노처럼 쉴 틈 없는 빼곡한 간격으로 다가오는 재앙 때문에 인물뿐 아니라 객석까지도 어지럼증을 준다. 극한까지 사람을 몰아대다 한방에 펑 터뜨리는 김성훈 감독의 장기에는 재론이 없을 것이다.
모로코에서 3개월간 촬영한 해외 로케이션 영화인 ‘비공식작전’은 ‘모가디슈’의 몰입감을 유산처럼 물려받았다. 차체가 낄 정도의 비좁은 베이루트 골목을 질주하는 카체이싱 액션은 극장 관객만 느낄 수 있는 벅찬 감동을 허락한다.
정반대로, ‘교섭’이 보여줬던 구출작전의 비장함은 덜어냈다. 악조건 때문에 욕설 ‘X새끼’만 연발하는 하정우의 연기는 코믹해 웃게 만든다. 주지훈은 건들건들한 연기력을 중동 택시 안팎을 무대 삼아 춤추듯 보여준다.
언제 어디서 자살폭탄이 터질지 빗발치는 총탄이 어디에 박힐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 누가 적인지 알 수 없는 부정확한 공포를 해외 배우들은 날카롭게 연기한다. 한국인 배우와 외국인 배우의 이질감 없는 ‘케미’도 손색이 없다.
오재석 서기관을 연기한 임형국 배우의 연기는 특히 압권이다. 1년8개월간 어두운 독방에서 두려움과 그리움의 감정만 남은 그는 두 남자에게 구출된 직후 극한의 고통을 숨기지 못한다. 하정우는 붉어진 눈시울만으로 감정을 전한다.
어디선가 본 듯한 서사는 ‘비공식작전’ 관람의 위험한 방해 요소다. 다음 장면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후반부 몰입도가 떨어진다. 하정우 주연 ‘수리남’, 주지훈 주연 ‘암수살인’ 등 과거 주연들의 명장면이 ‘비공식작전’의 몇 장면에 겹쳐지고 포개진다.
올해 초 개봉한 영화 ‘교섭’의 흥행 부진은 인질과 관객 간 라포(rapport) 형성에 실패한 이유가 컸다. ‘비공식작전’은 양자 간 공감대를 위해서인지 단어 ‘대한민국’ ‘대한민국 외교관’을 반복한다. 외교부를 ‘1980년대 안기부의 피해자’로도 설정하지만 효과는 부족해보인다. 공무원이 약자가 아니란 걸 객석은 모르지 않는다.
또 관객은 다음 전개가 예상되는데도 배우와 감독만 모르는 ‘척’하고 연기하면서 관객을 설득하려 한다는 느낌까지 든다. 한 자리에서 뱅뱅 돌면 동일 소재로 호평받은 전작을 뛰어넘을 리 없다. 하지만 이것은 서사의 아쉬움이지 배우와 감독의 실패는 아닐 것이다.
8월 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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