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 할퀴는 ‘위성 열차’…진짜 별들의 몸짓은 볼 수가 없네

이정호 기자 2023. 7. 16.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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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X 인공위성 ‘스타링크’
2019년 12월 밤하늘에 뜬 오리온자리를 망원경으로 촬영한 사진 위에 천체 관측을 방해하는 선이 그어져 있다. 연속적인 점들로 표현되기도 하는 이 모습은 미국의 민간우주기업 스페이스X가 쏘아올린 스타링크 위성의 흔적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 제공

인터넷 검색창에 ‘스타링크 위성 기차(starlink satellite train)’라고 입력하면 기이한 사진이 뜬다. 밤하늘을 배경으로 여러 점이 한 줄로 늘어선 모습이다. 말 그대로 영락없는 기차 형상이다.

최근 몇년 새 지구촌 밤하늘에서 자주 목격된 이 모습의 정체는 별똥별이나 외계인의 우주선이 아니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미국 민간우주기업 스페이스X가 2019년부터 시작한 ‘스타링크’ 사업에 따라 발사된 인공위성들이다.

스타링크의 주 목적은 전 세계 어디에서든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기지국 역할을 하는 위성들을 지구 표면에서 수백㎞ 상공에 쏘아 올려 촘촘히 배치하는 게 핵심이다. 최근 스타링크는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는 우크라이나에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했다. 현재 한국 시장 진출도 추진되고 있다. 지금까지 지구궤도에 올라간 스타링크 위성은 4000여기다. 이 숫자는 계속 늘어날 예정이다.

‘스타링크 위성 기차’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희한한 볼거리이지만, 천문학자들에게는 골칫거리다. 망원경을 기껏 밤하늘로 향했더니 별빛이 아닌 인공위성 불빛이 렌즈 앞을 가로막게 됐기 때문이다. 상황은 심각하다. 유엔까지 나섰다. 지난해 2월 ‘유엔 우주공간 평화적 이용위원회(COPUOS)’ 소속 과학기술 소위원회는 스타링크로 인한 문제를 의제로 올렸다. 스페이스X는 스타링크 위성에 햇빛 가리개를 설치하는 등의 대책을 내놨다.

그런데 최근 반짝이는 빛 외에 또 다른 문제가 발견됐다. 스타링크 위성에서 ‘전파’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런 인공 전파는 외계 천체에서 지구로 날아오는 전파를 잡아내는 전파망원경에 ‘잡소리’를 형성한다. 한마디로 전파망원경에 잡힌 전파가 외계 전파인지, 위성에서 나온 전파인지 과학자들을 헷갈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천문학계가 스타링크 때문에 총체적인 난관에 직면할 가능성이 커졌다.

관측 골칫거리인 인공위성 불빛
전파망원경에 ‘잡음’까지 더해
천문학계 ‘우주 연구’ 난관 봉착

인공 전파로 ‘잡음’ 생성

독일 막스플랑크 전파천문학 연구소 등에 소속된 연구진은 최근 국제학술지 ‘천문학과 천체물리학’ 최신호에 스타링크 위성이 전파천문학에 초래하는 문제를 분석한 결과를 실었다.

연구진은 지난해 유럽 지상에 설치된 전파망원경인 ‘로파(LOFAR)’를 가동해 스타링크 위성 68기를 집중 관찰했다. 로파는 네덜란드 등 유럽 곳곳에 배치된 약 2m짜리 소형 전파망원경 2만여기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로파는 전파망원경의 군집인 만큼 렌즈가 아니라 안테나를 갖췄다.연구진이 로파로 스타링크 위성을 살펴보니 관찰 대상이 된 68기 중 47기에서 110~188㎒(메가헤르츠)의 전파가 감지됐다. 이 주파수는 전 세계 단위에서 전파 관리를 맡는 국제기구인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전파천문학계에 할당한 150.05~153㎒ 구간과 겹친다.

즉, 먼 우주에서 날아오는 것으로 오해될 만한 영역의 전파를 스타링크 위성이 내뿜고 있었던 것이다. 이래서는 과학자 입장에서 망원경이 잡아낸 전파를 연구 대상으로 삼아야 할지 말지 헷갈리게 된다. 전파천문학의 시각에선 스타링크 위성이 일종의 ‘잡소리’를 내고 있었던 셈이다. 스타링크 위성이 전파망원경 사용에 지장이 될 만한 전파를 내뿜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이론적으로 예상돼왔다. 하지만 관찰을 통해 입증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위성 내뿜는 전파 국제 규정 없어
스타링크 4만여대 확대 계획에
학계 “설계 변경 등 보호책 필요”

위성 숫자 급증 ‘우려’

전파망원경이 제구실을 하려면 인공적인 전파가 최대한 적은 곳에서 가동돼야 한다. 전파망원경이 외딴곳에 자리 잡는 일이 많은 이유다.

그런데 스타링크 위성의 등장으로 이런 ‘은신’도 소용없게 됐다. 첩첩산중에 전파망원경을 설치해봤자 지구궤도를 돌아 머리 위에 나타나는 스타링크 위성에서 벗어날 길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일을 해결할 뾰족한 방법이 현재로서는 없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막스플랑크 전파천문학 연구소 공식자료를 통해 “(위성에서 날아오는) 전파는 어떠한 국제 규정에도 저촉되지 않는다”며 “지상 전파 장비가 엄격한 규제를 받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밝혔다.

전망도 밝지 않다. 스페이스X는 스타링크 위성 숫자를 현재의 4000여기에서 2020년대 안에 1만2000여기까지 늘릴 예정이다. 향후 4만2000기까지 증가시킬 계획이다. 원웹 등 다른 기업들도 스타링크와 유사한 방식의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할 방침을 세웠다. 인공 전파를 뿜는 위성 숫자가 급증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위성 설계 변경 등 전파천문학을 보호할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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