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이트] 비극의 대한민국, 영아살해와 저출생

남재현 2023. 7. 16.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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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의 한 텃밭에서 갓난아기의 유골이 발견됐습니다.

40대 여성이 구속됐습니다.

낳은 지 일주일된 딸을 살해하고 묻은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정OO /'영아 살해' 피의자] <딸 살해 혐의 인정하십니까?> <출생신고 왜 하지 않으셨습니까?>

엄마는 경제적으로 어려워 키우기 힘들었다고 진술했습니다.

[이웃 주민] "혼자 사는 여자니까 참 살기가 빈곤하죠. 아들이 고등학교 다니는데. 딱하긴 딱해요."

이번에는 2~30대 부모가 함께 구속됐습니다.

지난해 9월 생후 5일 된 아기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자고 일어났더니 아기가 죽어 있었다고 했습니다.

경찰 50여 명이 대규모 수색에 나섰지만, 시신을 찾지 못했습니다.

경찰이 추궁하자 아기를 살해했다고 털어놨습니다.

결혼을 안 했는데, 출산 사실을 부모가 알면 헤어지라고 할까 봐 그랬다고 했습니다.

[경찰 관계자] "살해한 걸 이제 벌 받을까 봐 그랬겠죠. 살해한 걸 자백하기에는 바로."

출산 기록은 있지만, 출생 신고가 안 된 아이들.

경찰이 수사 중인 사라진 아기들은 전국적으로 1천 명에 육박합니다.

34명은 이미 숨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가운데 11명은 친부모가 살해한 것으로 의심됩니다.

형법은 영아살해죄를 따로 두고 있습니다.(251조)

치욕을 은폐하기 위해, 또는 양육할 수 없음을 예상해 영아를 살해한 경우 적용됩니다.

[승재현/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영아살해죄, 매우 끔찍한 범죄죠. 산모가 아이를 살해한 범죄입니다. 하지만 산모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돌릴 수 없는 범죄입니다. 왜냐하면 사회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여러 요소가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분명히 국가가 이 아이의 생명을 지킬 수 있었는데 그걸 국가가 방기하고 내버려둠으로써 발생한 사회적인 문제, 그게 지금 발생하고 있는 영아살해죄입니다."

◀ 이휘준 ▶

안녕하십니까, 이휘준입니다.

태어나자마자 출생 신고도 안 된 채 사라진 아기들. 이렇게 많을 줄 몰랐습니다.

정부가 이번 주에 조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오늘 스트레이트는 아기를 버리는 부모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책임을 따져봅니다.

남재현 기자 나와 있습니다.

남 기자, 이번 수사가 예방접종 관리 시스템에서 시작된 거잖아요?

◀ 남재현 ▶

그렇습니다. 감사원이 이 시스템을 들여다봤더니, 태어나자마자 예방접종은 맞았는데 출생신고가 안 된 아기들이 2천 명 넘게 드러났습니다.

시스템이 만들어진 게 2015년이니까 그전에 얼마나 많은 아기들이 사라졌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 이휘준 ▶

그렇게 조사가 시작됐는데, 살해당한 아기들이 줄줄이 드러나고 있는 거군요?

◀ 남재현 ▶

수사가 계속되면 아마 더 늘어날 것 같습니다.

중요한 건 지금도 아기들이 버려지고 있다는 겁니다. 아기들이 어디로 가는지 따라가 봤습니다.

◀ VCR ▶

늦은밤 서울의 한 주택가 골목길.

한 여성이 커다란 짐가방 2개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하얀 이불로 감싼 아기를 안고 있습니다.

건물 벽에 설치된 작은 문을 열고 아이를 넣은 뒤 다시 닫습니다.

아기를 '베이비박스'에 두고 여성은 사라졌습니다.

아직 캄캄한 새벽.

누군가가 공사 자재들 사이에 아기를 두고 갔습니다.

아기를 감싸 안아 구조했지만, 결국 숨졌습니다.

바로 옆에 베이비박스가 있었습니다.

[이종락 / 주사랑공동체 이사장, 베이비박스 운영] "(엄마가) 잘 몰랐대요. 기능을 잘 몰랐대요. 그냥 베이비박스가 있으면 아이를 보호하는 줄만 알고 그렇게 갖다 놓고 바로 갔다고. 그날이 비가 와서 추웠어요. 참 안타깝죠."

이 교회가 운영하는 베이비박스로 오는 아기들은 해마다 100명이 넘습니다.

생모는 20대가 절반으로 가장 많습니다.

10대도 10% 가까이 됩니다. (2022년 기준, 10대 9.4%, 20대 51.9% 등)

10명 중 7명은 결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비혼모입니다. (68.9%)

[황민숙/주사랑공동체 위기영아보호상담지원센터장] "10달 동안 힘들었을 텐데 잘 지켜줘서 감사하다고 말씀을 드리고 그동안 누구한테도 지지받지 못 하고 너무 힘들었을 텐데 이제 걱정하지 말라고. 그러면 엄마들이 엄청 울거든요."

교회에는 5명의 아기가 있었습니다.

상황판에는 아기들 이름이 없습니다.

번호로만 분류됩니다.

가장 최근에 들어온 여자 아이는 2089번.

베이비박스 문을 연지 13년만인 지난해, 2천번을 넘어섰습니다.

번호 옆에는 위탁, 입양, 시설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앞으로 아이들이 갈 곳입니다.

시설은 보육원을 말하고 위탁은 엄마가 곧 다시 데려갈 거라는 뜻입니다.

[황민숙/주사랑공동체 위기영아보호상담지원센터장] "이 엄마는 처음에 본인이 데리고 가려고 그랬는데 지금 그런 상황이 안 돼서 지자체랑 상담하고 있어요."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놓고 간 26살 엄마를 만났습니다.

아이를 갖고 6개월이 돼서야 알게 된 임신.

남자 친구는 떠났습니다.

누구 하나 축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임수미(가명) / 비혼모] "아기 아빠도 싫어했고 아직 제가 나이가 어리기도 하고 부모님도 그때 몸이 좀 편찮으셨어서 얘기를 하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용기를 내 혼자 산부인과 병원을 찾았지만 미혼이냐는 질문에 마음이 무너졌다고 했습니다.

[임수미(가명) / 비혼모] "그냥 여쭤보셨을 것 같은데 그때 막 시선이 집중되니까 그것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그 시선이 그래서 그 뒤에 병원을 못 갔어요."

비혼모라는 낙인이 찍힐까봐 병원 기록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고 합니다.

임신 8개월만에 갑자기 산통이 찾아왔고, 출산도 집에서 혼자 했습니다.

[임수미(가명)/ 비혼모] "<탯줄도 끊고 해야 되는데 이런 건 어떻게 하셨어요?> 다 찾아서. 인터넷 찾아보고 어떻게 해야 될지 보고 그렇게 하고 나서."

갓난 아기와 함께 좁은 방에서 지냈던 5일은 막막함 그 자체였습니다.

[임수미(가명) / 비혼모] "무인도에 떨어진 느낌인데 당장 애는 울고 있지 솔직히 너무 두렵고 무섭고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 당장 이 상황도 이런데 내가 나중에 가서도 나중, 나중, 나중 돼서도 아기를 잘 키울 수 있을까?"

그래서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맡겼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자꾸 눈에 아른거렸습니다.

아기를 보러 3번 찾아갔습니다.

그러다 한 달 만에 직접 키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임수미(가명) / 비혼모] "한 달 동안 많이 연락도 많이 해주시고 사진도 많이 보내주시고. 아기를 막상 낳으면 그 엄마의 마음이 진짜 다르거든요. 그 마음도 물론 많이 컸지만 여기서 많이 정말 마음을 많이 바꿀 수 있게 해주셨어요."

베이비박스는 그나마 낫습니다.

인터넷으로 불법 거래가 되는 아기도 많습니다.

수미 씨도 베이비박스에 가기 전 인터넷으로 입양 방법을 알아봤습니다.

아기를 대신 키워주겠다는 댓글이 많이 달렸습니다.

취재진이 그 중 한 명에게 연락해 봤더니, 자기가 대신 키워주거나 입양 기관을 연결해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단속을 피하는 방법까지 알려줬습니다.

[인터넷 입양 상담] "그러니까 입을 맞추든가. 아는 동생인데 그 동생이 와서 집에 몸조리하러 왔었는데 키우기 힘들어서 놔두고 가버렸다."

불법 입양을 미끼로 돈도 뜯기고 협박 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전문 브로커는 피하라는 조언도 합니다.

[인터넷 입양 상담] "'신이 이거 불법 입양한 거 다 신고한다' 이렇게 협박하고 막 그래."

하지만 이런 인터넷 상담은 모두 불법입니다.

입양특례법은 허가받은 입양기관을 통해서만 입양을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베이비박스로 온 아기들이 가장 많이 가는 곳은 보육원입니다.

경기도의 한 보육원.

갓 태어난 아기부터 18살까지 모두 31명의 아이들이 있습니다.

원장은 잘 키우려고 애를 쓰긴 하지만 보육원이 최선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박명희/아동양육시설 신망원 원장] "'가정으로 가는 것만큼의 더 좋은 대안은 없다'라고 생각을 해요. 물론 그러지 못할 때 여기서 저희가 잘 키우는 게 차선이지만 그게 이제 최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거죠. 아무리 저희가 노력을 해도."

지금도 3살과 11살 아이가 입양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박명희/아동양육시설 신망원 원장] "그냥 엄마라고 부르고 아빠라고 부르는 상대가 있다, 그게 다죠. 그거 외에는 저는 없는 것 같아요. 그게 호칭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존재잖아요 존재. 엄마라는 존재, 아빠라는 존재."

입양 아동의 인권 보호를 규정한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은 태어난 가정에서 키우는 것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헤이그 국제아동 입양협약>

그게 어렵다면 국내 입양, 그것도 어려우면 그 다음이 해외입양입니다.

보육원 같은 시설은 권장 사항에 아예 빠져 있습니다.

북유럽 같은 복지국가들에는 보육원 같은 장기 보호시설이 거의 없습니다.

미국도 보육원으로 가는 아동이 극히 드뭅니다.

[변미희 / 백석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미국은 한 100년 전부터 가정위탁을 강조를 했고 그룹홈이나 시설 같은 경우에는 청소년이나 또는 특별한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만 입소하는 걸로."

하지만 한국은 다릅니다.

베이비박스 아동들 중 65%가 보육원으로 갑니다.

엄마가 다시 데려가는 경우는 22%, 입양은 13%에 불과합니다.

전국 보육시설에 머물고 있는 아동은 2019년 기준 1만 1천 명이 넘습니다.

[김지영/전국입양가족연대 사무국장] "시설은 뭐냐하면 민간 보육 시설이거든요. 민간에다가 책임을 다 떠넘겨버리고 국가는 그냥 나 몰라라 해버린 거죠, 사실상. 왜? 그게 행정적으로도 너무 편하거든. 더이상 행정적으로 이 아이를 핸들링할(다룰) 이유도 없고. 그러니까 그냥 관행적으로 시설로 해서 끝내버린 거예요."

◀ 이휘준 ▶

베이비 박스에만 한 해 100명이 넘는 아기들이 들어온다니 정말 많네요.

◀ 남재현 ▶

베이비박스 수가 많지는 않습니다. 전국에 두 곳밖에 없습니다.

작년 1년 동안 발생한 보호조치 아동은 2천200명이 넘는데요. 학대가 1,100여 명으로 가장 많았는데 비혼 부모나 혼외 출생도 250명이 넘습니다. (보건복지부 2022 보호대상아동현황)

◀ 이휘준 ▶

아기를 두고 가는 게 쉬운 선택은 아닐 텐데 원인이 뭡니까? 원인을 좀 알아야 저런 일을 막거나 줄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 남재현 ▶

대부분은 키울 형편이 안 될 만큼 가난하거나 사회적 편견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정부의 지원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아기를 키우고 있는 비혼 엄마들을 만나봤습니다.

◀ VCR ▶

서울 서대문구의 한 비혼모 생활시설입니다.

갈 곳 없는 비혼모 15명이 아기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26살 김지우 씨는 돈이 없어서 아이를 입양보냈다, 2주 만에 다시 데리고 왔습니다.

[김지우(가명) / 비혼모] "우선적으로는 돈이 없어서요. 혼자 키우는 것도 인식도 아직 그렇기도 해서 입양을 그렇게 보냈는데."

처음에는 막막하기만 했지만, 시설의 도움을 받으면서 조금씩 자신감을 얻고 있습니다.

분유와 기저귀가 제공되고 매주 5만 원씩 식비도 나옵니다.

[김지우(가명) / 비혼모] "만약에 밖에 살면서 애 혼자 키웠으면 진짜 힘들었을 텐데 여기서 되게 많이 도와주셔서 '아기 다시 보내야겠다' 그런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본 거 같아요."

하지만 내년에는 여기서 나가야 합니다.

시설이 부족해 2년까지만 머물 수 있습니다.

[김지우(가명)/ 비혼모] "그게 제일 부담이에요. 집 구하는 돈이 저한테는 큰돈이다 보니까. 그걸 모으기도 조금 힘들고. 나가서 살려면 또 공과금 이런 것도 다 제 부담이잖아요."

비혼모 생활시설은 전국에 63곳.

그런데 비혼 출산은 해마다 6천여건.

정부나 지자체 시설이 부족하다 보니 그 공백을 민간단체들이 메웁니다.

서울 강서구의 한 주택.

활동가들과 함께 아기용품을 들고 찾았습니다.

태어난 지 6개월 된 아기가 자고 있습니다.

20대 수빈 씨가 도와달라며 간밤에 아기를 안고 이 집을 찾아왔습니다.

가진 건 10만 원이 전부였습니다.

[이수빈(가명)/ 비혼모] "다 힘든데 그래도 애 보면서 애 웃고 이러면 다시 괜찮아지고 좋아지는 것 같아요."

당장 분윳값도 없어 주민센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퇴짜를 맞았다고 합니다.

담당 공무원은 비혼모는 긴급복지지원법 지원대상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중한 질병도, 학대도, 실직도 아니어서 지원할 수 없다는 겁니다. <긴급복지지원법>

[주민센터 직원] "제가 이거 다 찾아보고 다 이거 보고 했거든요. 학대도 어쨌든 해당이 안 되고, 또 실직도 해당 안 되고."

하지만 지방자치단체 조례를 보면, 임신, 출산 6개월 이내로 생계가 어려워도, 취학 전 아동 양육으로 생계가 어려워도, 긴급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주민센터 직원] "<이렇게 돼 있어요.> 여기 있구나, 이거구나."

전국 거의 모든 지자체가 이런 긴급지원 제도를 갖고 있지만, 정작 공무원들이 잘 모릅니다.

수빈 씨는 긴급지원금 103만 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긴급지원제도는 같은 사유로 2년에 한 번만 받을 수 있습니다.

네 살과 세 살짜리 두 아이를 혼자 키우는 22살 대학생 엄마.

소득이 전혀 없습니다.

기초생활수급비와 부모급여를 합쳐 매달 230만 원을 받지만, 늘 빠듯합니다.

[두 아이 엄마 (대학생 비혼모)] "보험료 나가고 또 여러 가지 전기요금, 수도요금, 가스비 그런 거 나가고 생활용품 사고 장보고 하면 어느 순간 돈이 없더라고요."

호텔 조리 전공을 살려 일자리를 찾아보려 해도, 엄두가 안 납니다.

아이 봐줄 사람이 없습니다.

[두 아이 엄마 (대학생 비혼모)] "돈을 조금씩 모으려고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일을 해보는 게 좋겠다 했는데 막상 그렇게 쉽게 되지는 않아요."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일을 해야 하는데, 아이 봐줄 사람이 없어 일을 못하는 상황.

가난한 비혼모들이 겪는 악순환입니다.

[두 아이 엄마 (대학생 비혼모)] "애들은 온전히 저만 바라봐 주잖아요. 그거 때문에 온전히 내 편이 생기고 가족이 생기고 그런 것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아요."

한부모 가정의 아동 빈곤율은 47%.

일반 가정의 4배나 됩니다.

최근 5년간 벌어진 영아 유기와 살해 사건, 58건을 모두 모아 분석해 봤습니다.

범행 이유는 '경제적 이유'가 39%로 가장 많았습니다.

주위와 가족에게 알려질까 두려워 범행을 저지른 경우도 30% 가까이 됐습니다.

출산 장소는 화장실이 51%로 가장 많았습니다.

차 뒷좌석과 공원, 길에서 아이를 낳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낳았다는 사람은 8%에 불과했습니다.

[김미애 / 국민의힘 의원] "영아살해죄 가해자가 대부분 산모잖아요. 범죄자로 또 만들어야 되죠. 그래서 저는 그게 숫자가 불과 얼마 안 돼도 1%만 돼도 큰 거고. 이분들을 법의 보호 체계 안으로 국가 보호 체계 안으로 넣어야 된다. 그렇게 해줘야 되죠."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

독일은 지난 2014년 '신뢰출산제'를 도입했습니다.

[독일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 홍보 영상] "여성은 신분노출 없이도 의학적으로 안전하게 출산을 할 수 있습니다."

산모의 익명 출산을 보장하고 출생정보는 16년 동안 국가가 봉인합니다.

이 제도의 핵심은 익명이 아니라 안전한 출산입니다.

독일은 전국에 1,500개 이상의 임신갈등지원센터를 두고 있습니다.

출산과 양육 상담을 해주고, 각종 지원도 주선해줍니다.

[김예원 변호사/ 장애인권법센터 대표] "그게 핵심이에요. 그래서 직접 양육이 자신없던 사람이라도 용기를 내서 자기가 낳은 아이를 출산할 수 있도록 결국 친생 부모와 함께 아이가 안전하게 자라날 수 있는 그 토대를 만들기 위해서 이 익명 출산제라는, 신뢰 출산을 도입한 거예요."

독일에서는 지금까지 5백 명 넘는 산모가 신뢰출산제를 통해 안전하게 아이를 낳았습니다.

◀ 이휘준 ▶

정부가 이 문제에 너무 무관심한 거 아닌가 싶습니다.

◀ 남재현 ▶

그렇습니다. 조금 이따 다시 살펴보겠지만, 다른 선진국들은 비혼 출산과 육아에 대해 우리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국가 차원에서 충분한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 이휘준 ▶

정말 키울 사정이 안 된다면 입양이라는 수단도 있잖아요. 한때 우리나라는 해외 입양이 너무 많아서 고아수출국으로 비난까지 받았었는데 지금은 좀 어떻습니까?

◀ 남재현 ▶

여전히 해외 입양 많습니다. 재작년 우리나라는 해외 입양 세계 5위였습니다.

◀ 이휘준 ▶

세계 5위요? 아. 부끄러운 기록이네요.

◀ 남재현 ▶

상위 20개 나라를 봤더니 잘 사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합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 선진국인 한국이 아직도 아이들을 해외로 보내는 건지 취재했습니다.

◀ VCR ▶

두 형제를 두고 두 딸을 입양한 50대 여성.

셋째 딸이 너무 예뻐서 동생을 또 입양했습니다.

[김 ○○ / 자녀 2명 입양] "(셋째 딸이) 성인이 되면 아무래도 저희들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고 오빠들도 굉장히 나이 차이가 많이 나니까. 의지할 만한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입양은 쉽지 않았습니다.

국내 최대 입양기관인 홀트에 1년 사이 3번이나 입양을 신청했습니다.

내건 조건도 까다롭지 않았습니다.

셋째보다 어린 동생이면 되고, 성별도 혈액형도 따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계속 "아이가 없다"는 답만 돌아왔습니다.

[김 ○○ / 자녀 2명 입양] "'1년이 될지 2년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물어봤더니 베이비박스에 혹시 아이를 데리고 오면 입양기관 통해서 자기들이 절차를 밟아줄 수 있다."

정말 아이가 없었을까?

아닙니다.

지난해 홀트에는 입양 대기 아동이 매달 평균 80명 넘게 있었습니다. (87명)

그런데도 왜 연결해주지 않은 걸까?

홀트 측은 친모가 임신 중 음주나 흡연을 많이 했거나, 건강상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라 연결하기 어려웠을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홀트아동복지회 직원] "아동 의료 문제라든지 친생부모 배경이라든지 이런 부분이죠. 대부분."

하지만 지난 2019년부터 3년 동안 입양된 아동 1천3백여 명 가운데 건강 이상으로 등록된 아동은 10%뿐이었습니다.

[김윤정 / 변호사, 전 서울가정법원 판사] "해외 입양을 보낸다라고 했을 때 다 신체적인 핸디캡(장애)이나 지능적인 핸디캡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시지만 대다수의 사례는 사실 그렇지가 않다라는 거죠."

해외입양은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전쟁 고아를 구하겠다고 시작됐습니다.

외국인이 사진만 보고 아이를 고르면 입양기관이 절차를 진행하는 '대리입양제도'가 60년 동안이나 이어졌습니다. (1953년~2013년)

해외 입양은 1980년대 정점을 찍습니다.

1985년 한 해에만 8천8백 명이 해외로 입양됐습니다.

그해 태어난 아기의 1.3%나 됐습니다.

'고아 수출국'이라는 해외 언론의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뉴욕타임스 1988년 "Babies for Export")

많이 줄긴 했지만, 한국은 여전히 세계 5위 아동수출국입니다.

2021년 227명을 해외로 보내, 콜롬비아, 인도, 우크라이나, 태국에 이어 세계 5위를 기록했습니다.

2020년에는 세계 3위였습니다.

[신필식 / 입양연대회의 사무국장] "한국이 지금 초저출산 국가가 된 지도 오래됐고 지금 태어난 아이들이 모자란 상황에 한국이 계속 해외 입양을 보내고 있다는 거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고 저희가 비교를 해봤을 때도 우리와 같은 수준의 국가가 보내는 나라는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다시 생각해봐야 되는 일이고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외 입양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뭘까?

홀트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했던 노혜련 교수는 수수료 때문일 거라고 말합니다.

입양기관들이 수수료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해외입양을 선호한다는 겁니다.

[노혜련 /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전 홀트 근무] "해외 입양기관에서는 업무도 적으면서 경제적인 이득은 훨씬 더 큰 사업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국내보다는 해외 입양을 선호하게 되죠."

국내 입양 수수료는 1인당 270만 원.

전부 정부가 지원합니다.

반면 해외 입양 수수료는 기관마다 다른데 많게는 2만 달러, 2천5백만 원이나 됩니다.

해외에서 아이를 입양하는 부모가 냅니다.

국내 입양보다 10배를 더 받는 셈입니다.

[노혜련 /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전 홀트 근무] "사실 해외 입양이 국내 입양보다 업무도 훨씬 적어요. 그러니까 거의 서류로 부모를 준비하고 심사하고 사후 관리하고 이런 일은 다 해외에서 하잖아요."

입양기관들은 해외 입양은 시간이 더 오래 걸리기 때문에 기저귀, 분윳값, 인건비가 더 들고, 해외입양으로 오히려 적자를 보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입양기관들이 해외입양에 공을 들였던 이유는 정부 공문서에서도 확인됩니다.

1988년 보건사회부가 청와대에 보고한 문건.

당시 허용된 입양 수수료는 1,450달러였는데, 입양기관들이 이것과 별도로 3~4천 달러의 알선비를 추가로 받는다고 적시했습니다.

뒷돈을 챙긴 겁니다.

또 다른 정부 문건에는 해외로 입양 보낼 아기들을 구하기 위해, 입양기관들끼리 경쟁을 벌인 얘기도 나옵니다.

병의원과 조산소에 금품을 돌려, 인신매매 기관으로 전락했다고 돼 있습니다.

[OO 조산원 원장] "아기 보내준 그 기관에서 시찰을 시켜줘서 미국 갔다왔다는 소리는 한 번 들었어요. '얼마나 애를 보내기에 미국까지 가서 시찰을 하고 오나' 그 생각을 그때 잠시 하기는 했어요."

[황준협 / 변호사(해외입양 관련 소송 대리인)] "그때 당시에 보건복지부에서 (입양기관) 허가를 했는데 허가 취소를 하든가 이런 조치가 이뤄졌어야 되는데 그런 부분들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건 사실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용인하고 방조를 하고 묵인을 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거죠."

1974년, 두 살 때 덴마크로 입양간 크리스틴 씨.

입양 서류에는 부모가 없다고 돼 있어 자신이 고아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5년 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자신에게 엄마가 있었다는 걸 처음 알게 됐습니다.

누군가가 서류를 조작해, 자신을 고아로 둔갑시켰던 겁니다.

[크리스틴 킴 닐슨 / 덴마크 입양]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저는 제 친엄마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40년을 살아왔어요."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 친부모가 있는데도 호적을 조작해 고아로 만든 사례들이 줄줄이 확인됐습니다.

친부모가 있으면 입양 절차가 복잡하니, 고아로 조작한 겁니다.

[전민경 변호사 / 민변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 "입양 수수료 같은 거를 훨씬 더 많이 벌 수 있으니까 최대한 빠른 방법을 생각했던 것 같고. 그리고 그때는 아마 입양인들이 다시 본인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한국에 돌아온다거나 자기 부모를 찾는다거나라고 하는 생각은 입양기관에서 굳이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해외로 나간 아이들의 상당수는 학대에 시달렸습니다.

3명 가운데 1명은 신체 학대, 8명 가운데 1명은 성적 학대를 받았다고 답했습니다. (국가인권위)

지금까지 해외로 나간 아이들은 정부 공식 통계로만 17만 명.

입양기관들은 뒷돈도, 서류 조작도 없었고 수수료 때문에 해외입양에 치중한 적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2019년 UN의 권고로 불법 해외 입양에 대한 국제 조사가 진행 중입니다.

스웨덴과 덴마크, 노르웨이 등 8개 나라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지난 2021년 가장 먼저 1차 조사를 끝낸 네덜란드는 한국 아동의 입양 과정에서 조직적인 범죄가 있었다고 결론냈습니다.

[게이오르 프릭스 / 네덜란드 입양조사위원회 총책임자] "한국의 경우는 보고서를 인용하면 서류들에 근거가 없었어요. 서류들이 조작이 된 거죠. 그리고 사기와 부패가 있다는 것도 발견했고요. 그런 것들이 기록이 됐고 이런 것은 구조적, 체계적인 규모였습니다."

◀ 이휘준 ▶

몇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외 입양의 후유증이 계속 남아 있는 거네요.

◀ 남재현 ▶

물론 좋은 환경에서 자라서 장관도 되고 스포츠 스타가 되는 성공한 분들도 많죠.

하지만 고아로 조작돼서 팔려나가고 학대당한 입양인 앞에서 국가가 정말 책임을 다했는지 반성과 고백이 필요해 보입니다.

◀ 이휘준 ▶

영아 살해도 그렇지만, 해외 입양도 또 시설로 보내지는 아이들도 줄이거나 막을 방법이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비혼 부모도 아기를 잘 키울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 남재현 ▶

맞습니다.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살펴보면, 한국이 얼마나 이 문제를 무관심하게 방치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 VCR ▶

비혼모 유튜버로 활동 중인 38살 한보영 씨.

4년 동안 만난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 아이가 생겼습니다.

남자친구와는 헤어졌습니다.

비혼모라고 눈총받거나 동정받는 게 싫어서, 혼자 아이 키우는 모습을 당당하게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한보영 / 비혼모(유튜브 '한씨로이' 운영)] "충분히 혼자서도 아이를 건강하게 키울 수 있다는 거를 앞으로 한 해 한 해 하면서 기록해 보고 싶었어요."

힘을 얻었다는 다른 비혼모들 연락을 받을 때 보람도 느낍니다.

[한보영 / 비혼모(유튜브 '한씨로이' 운영)] "실제로 미혼모인 어린 친구들이 제 영상 보고 '수술을 하지 않겠다'라고 이런 메시지 오는 분도 있고요."

한국의 비혼 가정 출산율은 3% 정도입니다.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요?

OECD 평균은 41.9%입니다.

아기 10명 중 4명은 비혼 가정에서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김영철 /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이런 비혼 출산을 소위 감행을 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사회적 자살에 가까운 그런 행위다라고 지금 볼 수 있는 거죠. '낙태를 하든지' 아니면 원하지 않더라도 혼인신고를 해서 '기존의 제도'에 내가 타협해서 들어가든지 이 두 개의 선택만이 남아있다 라고 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는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은 부부가 10쌍 중 6쌍이나 됩니다.

마티유와 셀린 씨도 지난 1월 딸을 출산했습니다.

한 집에 세 식구가 살지만 결혼은 생각도 안 해봤습니다.

[셀린 페레아르 / 프랑스 비혼 부부] "우리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달라질 게 전혀 없습니다. 쉬잔(딸)을 위한 지원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랑스는 1999년 비혼 부부도 법적으로 보장해주는 '팍스'라는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결혼을 했든 안 했든, 모든 혜택을 보장받습니다.

아이를 낳으면 양육 수당도 받고, 결혼하지 않아도 입양을 할 수 있습니다.

세액공제 같은 세금 혜택도 혼인 가정과 똑같습니다.

결혼과 다른 건 결혼은 양측이 합의해야 이혼이 가능하지만, 팍스는 한쪽이 취소하면 무효가 되고 법적인 기록이 남지 않는다는 겁니다.

마티유 씨 부모도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마티유 고데 / 프랑스 비혼 부부] "우리 부모님은 결혼을 안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난 한 번도 자라면서 그것 때문에 문제가 된 적은 없었어."

팍스 제도가 도입된 이후 프랑스는 유럽연합 국가들 가운데 합계출산율 1위를 한 번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합계출산율은 작년 기준 1.79명.

우리보다 2배 이상 높습니다.

[ 셀린 페레아르 / 프랑스 비혼 부부] "친구들 모두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가졌습니다. (아이를 가진) 비슷한 연령대의 30~40대의 친구들 중에 결혼한 사람은 없어요."

덴마크에서는 비혼모도 가난하지 않습니다.

한국과 어떻게 다를까?

다른 재산 없이 한 달에 100만 원을 버는 24살 비혼모를 기준으로 비교했습니다.

먼저 임신.

한국은 100만 원짜리 임신부 바우처를 딱 1번 지원하지만, 덴마크는 임신 12주부터 출산 때까지 매달 213만 원씩 지원합니다.

아이를 낳으면 한국은 생계급여와 아동양육비, 아동수당 등 매달 137만 원을 줍니다.

덴마크는 사회부조와 아동청년수당, 아동양육비, 아동보조금 등 매달 340만 원, 한국의 2.5배를 줍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이 지원금을 다 받으려면 일주일에 4.3시간 이상 일해야 합니다.

자립을 유도하는 겁니다.

덴마크 한부모 가정의 아동빈곤율은 9.7%.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낮습니다.

반면 한국은 10명 당 5명이 태어날 때부터 빈곤을 경험합니다.

[신경아 /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아이를 낳아서 키울 수 있는 경제적인 그런 부담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비혼 출산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건 그 개인들이 책임을 질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엄두를 못 내는 거죠."

비혼 출산을 바라보는 사회 인식은 달라지고 있습니다.

결혼하지 않고 자녀를 가질 수 있냐고 물었더니 반대 의견이 많았지만, 20대, 30대, 40대는 10명 가운데 4명이 그럴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38~39%)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87명.

비혼 출산율이 OECD 국가 평균만큼 오른다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1.1명으로 올라갈 거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허민숙 / 국회 입법조사관] "계획을 했든 또는 그렇지 않았든 아이를 가지고선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있는 모든 부모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이 아이를 잘 키워 낼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조금 노력하면 충분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상황이 되어야지만 저희가 그렇게 고심하고 있는 저출산의 문제도 해결에 물꼬를 틀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계속 드러나고 있는 영아 살해.

보호시설로 보내지는 아이들.

여전히 너무 많은 해외 입양.

그리고 세계 최저 수준의 합계출산율.

우리를 선진국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최슬기/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저는 사실 저출산 측면에서보다 인권 측면에서 비혼 출산을 인정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개인의 선택이고요. 그리고 스스로 그것이 자기의 삶에서 더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이다라고 생각을 하신 거고요."

◀ 이휘준 ▶

저출생 재앙과 영아 살해의 비극이, 우리 사회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아기와 부모의 인권을 제대로 보호하고 있는 건지, 다시 묻게 됩니다.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다음 주에 찾아뵙겠습니다.

남재현 기자(now@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replay/straight/6504259_289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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