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깜짝 방문’, 사려 깊은 결정이었나
윤석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방문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의 참석 후 폴란드를 거쳐 귀국할 예정이던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육로로 비밀리에 우크라이나에 들어갔다. 11시간 동안 체류하며 전장을 둘러보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다. 윤 대통령은 회담 후 “‘생즉사 사즉생’의 정신으로 우리가 강력히 연대해 함께 싸워 나간다면 분명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이라며 안보·인도·재건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은 미국과의 관계를 빼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미국은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동맹국들에 우크라이나 지원 동참을 요구해왔다. 한국은 무기 직접 지원을 제외한 군사장비 지원 등을 해오고 있다. 미국을 비롯해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의 정상이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연대를 과시했다. 윤 대통령은 앞서 리투아니아에서 열린 나토 회의 등 국제 무대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유와 인권의 연대를 역설해온 만큼 우크라이나 지원을 더 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껴왔다.
윤 대통령이 외교에서 가치를 중시하기로 한 것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한국이 외교 정책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중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국제정치 여건상 말과 행동의 간극이 클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이 전장까지 방문했다면 논리적으로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위해 무기를 지원해야 하지 않느냐는 서방의 요구에 할 말이 없어지게 된다. 나아가 대통령실은 전후 재건 시장의 가치가 엄청나다며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라도 현시점 우크라이나 방문이 정당하다고 했다. 전쟁터에서 사람이 죽어가는데, ‘젯밥’에 관심이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방문을 추진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 거짓말이 되자 방문의 의미를 부풀리려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이 발표한 ‘윤석열-젤렌스키 장학금’도 뜬금없다. 세금으로 대통령 이름을 붙인 장학금을 만들겠다는 발상에 공감할 시민이 얼마나 있을까.
더 큰 문제는 미국, 서방과의 관계에 몰두하느라 중국, 러시아와의 거리는 더 멀어진다는 점이다. 당장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에 대한 러시아의 반발이 예상된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한·중관계 복원에 나섰지만, 윤 대통령의 행보로 인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 방문이 이 모든 요소를 고려하고 이뤄진 사려 깊은 결정인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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