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김정은 휴대폰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블랙베리 휴대폰을 애지중지했다. 스스로 “중독돼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오바마폰’의 백악관 입성은 쉽지 않았다. 무선통신이 보안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2009년 당선인 시절 인터뷰에서 오바마는 “참모들이 내 손에서 블랙베리를 빼앗으려고 계속 기회를 보고 있다. 나는 계속 투쟁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오바마는 도·감청 방지 장치로 특수 제작한 블랙베리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산 스마트폰을 은연중에 보여주곤 했다. 자국의 기술 경쟁력을 과시하려는 계산된 행동이었다. 반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부터 보안 등을 이유로 개인 휴대폰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휴대폰 사용 모습이 처음 공개된 것은 2018년이었다. 평남 양덕군 온천관광지구를 시찰하면서 누군가와 통화하는 사진이었다. 이후 김 위원장이 방문하는 현장 테이블에는 담배·재떨이와 함께 휴대폰이 종종 보였다. 기종도 수시로 바뀌었다. 지난 3월 신형 미사일 사격 훈련을 참관할 때는 흰색 일체형 스마트폰, 지난 12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 시험발사 현장에선 위아래로 접히는 최신형 폴더블 스마트폰이었다. 중국산인지 북한이 개발한 것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김 위원장은 2012년 집권 이후 정보기술(IT)을 집중 육성했다. 자체 이동통신사를 설립했고, 국가정보통신망으로 데이터 서비스도 한다. 북한은 2013년 첫 스마트폰 ‘아리랑’을 생산한 이후 신제품을 계속 출시한다. 대부분 중국산 부품을 조립·생산하는 방식이지만 “오늘날 손전화기(휴대폰)는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기호품”(조선중앙TV)이 됐다. 2017년 유니세프와 북한 중앙통계국 공동조사에서 북한 전체 가구의 69%, 평양에선 90%가 휴대폰을 보유한 것으로 발표됐다.
국가 정상이 타국의 타깃이 될 수 있는 휴대폰을 일부러 노출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혹시 김 위원장은 휴대폰 사진으로 국제사회에 대화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려는 것일까. 그랬으면 좋겠다. 윤석열 대통령이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먼저 연락하면 더 좋겠지만.
안홍욱 논설위원 a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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