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호우' 예고에도 되풀이된 참사…재난관리 허점없었나(종합)
예방보다 복구 중심·부처 '따로따로'·예산인력 부족 문제
정부 제도개선 느리다는 지적도…"물막이판 빨리 설치해야"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계승현 기자 = 연일 쏟아지는 집중호우로 경북과 충북을 중심으로 산사태와 지하차도 침수 등으로 인한 인명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번 호우로 인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가 공식 집계한 사망·실종자는 지난 9일부터 16일 오전 11시까지 모두 43명이며 그 뒤로도 피해가 추가 집계되고 있다.
'극한호우'라고 할 정도로 많은 비가 한꺼번에 쏟아져 빗물이 땅속으로 들어갈 여력이 없어진 상황에서 산사태 등 큰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분석된다.
일각에서는 기후변화로 극단적 기상 현상이 잦아지면서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형태의 재난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기도 한다. '천재지변'이라는 것이 갈수록 더 극심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만큼 인위적인 사전 대책 또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지난해 8월 중부지방을 강타했던 이례적인 집중호우로 많은 피해가 발생한 바 있고, 정부 역시 이를 고려해 '철저한' 사전 대비를 약속해 온 데다, 올해 역시 비슷한 형태의 '극한호우'가 일찍부터 예고됐는데도 참사를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정부 재난관리 허점 지적이 또다시 나올 수밖에 없게 됐다.
특히 운행 중인 차량 15대가 물에 잠긴 오송 지하차도 침수사고의 경우 사고 경위가 하나둘씩 드러나면서 결국 '인재'였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사고 당일인 15일 오전 4시10분 인근 미호강에 홍수경보가 내려졌고 오전 6시 30분에는 경보 수준보다 높은 '심각' 수위까지 도달해 금강홍수통제소가 관할 구청에 교통통제 등이 필요하다고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행정당국의 교통통제는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오전 8시40분 미호천교 인근 제방이 무너지면서 하천물이 순식간에 지하차도로 쏟아져 들어왔다.
사고 당시 찍힌 블랙박스 영상에는 지하차도로 물이 세차게 흘러 들어오는 와중에도 양방향으로 차량이 진출입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차량 통제만 제때 이뤄졌더라도 끔찍한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는 '통탄'이 흘러나오는 이유다.
일부 전문가는 우리나라의 재난 관리가 피해 복구 중심으로, 예방시스템이 잘 작동하지 않는 문제가 여전하다고 지적한다.
산사태 전문가인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이날 연합뉴스 통화에서 "지자체 재난관리기금의 30%는 예방에, 70%는 복구에 쓰는데 선진국은 70%를 예방에, 30%를 복구에 쓴다. 우리는 산사태도 그렇고 너무 복구 위주"라고 말했다.
이 전 교수는 재난을 예방하려면 위험 실태부터 잘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국적으로 산사태 위험을 관리해야 할 지역을 100만곳으로 추정하면서, 이 가운데 규모가 큰 10% 정도만 관리되고 있다고 했다.
이 전 교수는 재난관리주관기관인 산림청이 지정한 산사태 취약지역이나 행정안전부가 관리하는 급경사지 수가 각각 몇만개 수준에 불과하다면서 "10년 동안 산사태 인명사고가 난 데를 거의 다 가봤는데 대부분 정부에서 위험지역으로 지정하지 않은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산사태 인명피해를 줄일 대책으로는 2m 높이의 철근 콘크리트 보호벽을 세울 것을 제안했다.
그는 통합적인 재난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짚었다.
산사태의 경우 이탈리아는 정부 통합기관에서 관리하지만, 한국은 산림청과 행안부, 국토교통부 등 부처가 따로따로 관리한다면서 "국무총리 산하에서 통합 관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원철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는 재난 예방 예산과 현장 재난 관리 인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은 예방사업이 끝나면 향후 10년간 일어날 확률적 손해의 16배를 막아준다고 평가하는데 우리는 금전출납부처럼 접근해서 예산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안전 불감증'도 문제로 꼽으면서 "우리 국민이 겁이 없다. 하천에 물이 찼는데 산책하는 사람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호우를 계기로 재난안전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 등 정부의 재난 예방과 대응이 적절했는지를 놓고도 책임론이 제기될 수 있다.
지난해 지하주차장 인명사고 등 호우 피해 이후 정부가 제도개선책을 내놨지만, 실행이 더디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작년에 물난리 겪고 나서 물막이판(차수판)을 보급하고 있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것 같다. 제작이나 예산 지원 절차를 정부와 지자체에서 간소화해서 신속히 준비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원철 교수도 "차수판은 높이 30㎝짜리도 효과가 있다. 빨리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6월 27일 기준 침수 우려 반지하주택 3만3천697개 가구 가운데 물막이판을 설치한 가구는 36%인 1만2천12곳뿐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설치를 원하지 않는 가구를 빼고 희망 가구에는 설치가 거의 끝났다고 설명했다.
행안부가 지난 2020년 3명이 숨진 부산 초량 제1지하차도 침수 사고를 계기로 침수 우려가 있는 지하차도에 원격 자동차단 설비를 구축하는 사업을 확대한다고 밝혔었는데, 이번에 큰 인명피해가 난 오송 지하차도에는 차단설비가 설치되지 않은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충북도는 지난 6월 말 행정안전부로부터 7억원의 교부세를 배정받았으며 올해 중 차단기를 설치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정부나 지자체에만 재난관리를 맡길 수는 없다면서 주민 참여를 강조했다.
이수곤 전 교수는 "산사태나 지하차도 침수나 주민들이 위험을 제일 잘 안다. 인명사고 난 데를 가 보면 주민들이 위험하다고 얘기했는데도 막지 못한 곳"이라면서 "위험지역은 주민들이 제일 잘 아니 정부와 국민이 합동으로 실태를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원철 명예교수도 "재난관리는 공공영역에서 할 일이 있고 주민 개인이 할 일이 있다. 주민들도 재난관리 주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y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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