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5년 차이로 한쪽은 영구정지 한쪽은 계속운전...고리 원전 가보니
계속운전 준비 중인 고리 2호기...여전히 3교대 근무
원전 10호기 7년 안에 운전 허가기간 만료
부산 기장군은 국내 원자력 발전의 역사적 장소로 꼽힌다. 1978년 국내 첫 상업 운전을 시작한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1986년까지 고리 2, 3, 4호기가 들어섰고, 2011년과 2012년 다시 신고리 1, 2호기가 상업 운전을 시작했다. '한국 원전의 시초'로 기억되던 고리 1, 2호기가 다시 전 정부와 현 정부의 원전 정책의 상징으로 주목받고 있다. 2017년 6월 영구 정지한 고리 1호기는 해체를 앞두고 있고 올해 4월 설계 수명을 다한 고리 2호기는 계속 운전을 준비 중이다. 원전 실무를 맡은 한국수력원자력은 고리 2호기를 포함해 앞으로 7년 이내 설계 수명이 다한 원전 10기의 계속 운전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원전 해체도 계속 운전도 이유는 '경제'
12일 부산 기장군 고리 1호기 터빈룸(전기 생산 최종단계인 발전기, 터빈기가 있는 장소). 말끔하게 닦인 발전기와 터빈기에 '사용 중지' 팻말이 적혀 있고 인력은 드물었지만 에어컨 같은 기계 소음은 컸다. 박웅 한국수력원자력 고리1발전소 안전관리실 실장은 "원전이 멈췄어도 냉각수를 끌어와 사용후핵연료를 식혀야 하고 (정전, 지진 등을 대비해) 정기적으로 성능 시험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기존 380여 명 직원 중 여전히 300여 명이 이곳에서 원전 해체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설계 수명이 30년인 고리 1호기, 월성 1호기는 각각 계속 운전 10년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기조에서 사회적 논란 끝에 2017년과 2019년 영구정지됐고, '즉시해체'하기로 논의됐다. 원전 설비의 방사성 물질을 자연상태에서 처리하면 60년 이상이 걸리지만(지연해체), 각종 설비를 절단해 꺼낸 후 폐기물 처리 과정을 거치면 이 기간을 4분의 1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고리 1호기의 즉시 해체 비용은 8,700억 원 선. 이 과정에서 '해체 기술'을 갖는다면 전 세계 다른 나라 원전들의 해체 과정에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계산도 있었다. 한수원 관계자는 "원전 해체 시장은 2030년 123조 원에서 2050년 204조 원으로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사용후핵연료를 원전 밖으로 꺼내야 부지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이와 관련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 논의는 국회에서 공회전 중이라 '즉시 해체'가 언제 가능할지 미지수다. 한수원 관계자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고리 1호기 즉시 해체를 결정해도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가 끝나지 않으면 부지 재활용은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설계수명 다하는 10호기는 계속운전 준비 착수
이보다 5년 뒤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 2호기는 4월 멈춰섰지만 이르면 2025년 6월 계속 운전이 가능해진다. 정부가 설계 수명이 다한 원전의 계속 운전을 추진하면서 그 첫 대상이 고리 2호기가 되면서다.
같은 날 찾은 고리 2호기 주 제어실 직원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3교대 근무 중이었다. 제어판에 나온 출력 전원은 '0메가와트(㎿)'지만 각종 안전 장치를 점검하고 2년 후 실제 출력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모상영 고리1 발전소장은 "2호기의 경우 한수원이 3월 원자력안전위원회에 계속 운전 운영 변경 허가를 신청했다"며 "규제 기관의 요구 사항에 맞춰 계속 운전 준비를 하며 '설비개선팀'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관련법상 계속 운전을 위해서는 원전 설비에 최신 기술을 활용해야 한다.
한수원 관계자는 "설비만 개선하면 새 원전 짓는 데 드는 수조 원을 아낄 수 있어 원전을 쓰는 모든 국가에서 계속 운전이 보편화한 상태"라고 강조했다. 모 소장은 "미국도 비슷한 원전에 80년 계속 운전을 신청했다"며 "해체를 하지 않으니 방사선 배출량도 낮고 적은 비용으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고리 2호기를 포함해 국내 7년 내 운영 허가 기간이 만료되는 원전은 10기, 총 설비 용량은 8.45기가와트(GW)에 달한다. 한수원은 이들 원전의 계속 운전을 추진하며 10년 동안 계속 운전할 경우 107조6,000억 원 이상의 비용을 절감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계속 운전을 하려면 고리 1호기 해체만큼이나 큰 숙제가 남았다. 사용후핵연료 등 방사성폐기물이 추가로 나온다면 이를 어디에 어떻게 보관하느냐는 문제다. 실제 이날 언론에 처음 공개한 고리 2호기 사용후핵연료 저장조의 포화율은 93.5%에 달했다. 한수원은 "연료봉 구조체의 격자 간격을 줄인 '조밀랙'을 설치하면 사용후핵연료 저장량을 지금보다 50% 정도 더 늘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만큼 폐기물이 늘어 노후 원전을 계속 활용하는 것을 두고 지역 주민들의 안전 걱정은 커질 수밖에 없다. 한수원은 "주민 의견 수렴과 설득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장=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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