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작은 날갯짓… 오래된 마을을 깨어나게 하다

김재근 선임기자 2023. 7. 16.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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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규암 '자온길 프로젝트' 추진 박경아 대표
세간 박경아 대표는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의 옛집을 리모델링하여 책방과 공방, 카페, 레지던스, 공연 및 전시공간을 잇따라 열었다. 사진=김영태기자

지난 8일 저녁 충남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 '이안당'에서 가수 이지형의 공연이 열렸다. 토이의 객원보컬로 활동했던 이지형은 히트곡 '뜨거운 안녕' 등의 히트곡을 불렀다. 팬들은 백제 고도 한켠의 고즈넉한 마을에서 수준 높은 공연을 즐겼다.

이안당은 백년 가까이 된 옛집을 리모델링한 공간이다. 양조장 주인이 살았던 가옥을 멋스럽게 살려 숙박과 식사, 공연과 워크숍 등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창조해낸 것이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백마강(금강) 건너편 규암리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한 여성이 낡고 오래된 마을의 옛집들을 리모델링하여 책방과 공방, 카페, 식당, 숙박, 전시 및 공연공간 등을 열었고 이러한 흐름이 마을재생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고풍스런 한옥을 리모델링한 이안당은 숙박과 행사, 공연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사진=김영태 기자
가수 이지형의 이안당 공연 모습. 사진=세간

<옛집 리모델링 책방, 까페, 전시·공연 공간으로>

책방 세간 박경아 대표.

"부여에 있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 입학하여 학부와 석사 과정을 다녔습니다. 그때 이 동네에 처음 왔는데 그게 인연이 돼 6년 전부터 빈집을 사서 책방과 카페 등을 시작했습니다."

박 대표는 전통미술공예 작가로 천연염색과 자수, 침선, 매듭, 디자인 등이 전문 분야다. 서울 인사동과 삼청동, 파주 헤이리에서도 작업실과 아트샵을 운영하고 있다. 여러 작가들과 함께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 상품을 전시하고 판매도 한다.

"서울에서 공방과 아트샵을 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처음에는 한달 임대료가 100만원이었는데 얼마 뒤 사람들이 몰리니까 1000만원으로 치솟았습니다. 장사가 아무리 잘돼도 공예작가들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됐습니다."

원도심이 재개발되거나 상권이 활성화되면 집값과 임대료가 올라 원주민과 상인들이 다른 곳으로 밀려나는 폐해를 혹독하게 겪은 것이다. 이때 그는 대학시절 가봤던 부여군 규암리를 떠올렸다. 오래된 마을이지만 역사와 문화, 정겨움을 잘 간직한 동네였다.

규암리는 백제고도 부여읍의 금강 건너편에 있는 마을이다. 과거에는 금강하구 장항에서 이곳을 거쳐 강경과 공주, 부강(세종시)까지 배가 드나들었다. 수운의 중심지로 점포와 숙박업소가 즐비했고, 요정과 극장, 백화점까지 있었다. 그러나 부여읍이 커지고 육상교통이 발달하면서 상권이 쇠퇴했다.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빠져나가면서 빈 가게와 빈 집이 급증했다.

박 대표는 규암리를 오히려 기회의 공간으로 봤다. 공예작가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작업과 판매를 모두 할 수 있는 곳으로 여긴 것이다.

독립 책방 세간의 외관은 옛날 모습 그대로이다. 사진=김영태 기자
이안당은 한옥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사진=김영태 기자

<공간과 세간살이 부수지 않고 최대한 활용>

그가 이곳에서 처음 문을 연 곳이 '책방 세간'이다. 80년 된 담배가게를 리모델링하여 책방과 카페로 만들었다. 점포와 살림집을 고쳐 서가를 배치하고 커피와 음료를 팔기 시작했다. 대들보와 기둥, 서까래, 출입문 등을 그대로 살리고 집주인이 사용했던 옛날 계산대도 재활용했다.

박 대표가 운영하는 책방과 회사 이름이 '세간'이다. 세간은 살림에 쓰는 온갖 물건을 뜻하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삶의 자취가 담긴 세간살이를 소중하게 보전, 활용한다는 뜻에서 회사 이름도 세간으로 정했다고 한다.

그는 '자온길 프로젝트'라는 목표 아래 지인들의 투자를 받아 10여 채의 빈집과 땅을 매입·임대하여 다양한 공간을 조성해나가고 있다.

양조장 주인이 살았던 한옥은 옛집의 멋스러움을 살려 숙박과 워크숍, 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재창조했다. '이안당'이라고 명명한 이 집은 실력파 가수들이 즐겨 찾는 공연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바로 옆의 '자온양조장'은 예전의 양조장을 활용한 주점이다. 술도가의 골격을 그대로 두고 내부를 소박하고 말끔하게 새단장하여 분위기 있는 술집으로 탈바꿈시켰다. 지역에서 만든 맥주와 와인, 막걸리 등을 판매한다.

요정이었던 옛집은 '수월옥'이라는 카페로 변신했다. 전통 소반에 전통 찻잔, 비단방석에 앉아 예스럽게 차를 마실 수 있다. 도예가가 만든 청화백자와 분청사기, 청자도 구경할 수 있다.

옛날 국밥집은 '웃집'이라는 전통 섬유공예 공방으로 거듭났다. 작가가 자연염색과 규방공예를 하는 곳으로 직접 강의를 듣고 숙박도 할 수 있다.

오래된 담배가게를 고쳐 책방과 카페로 운영하고 있다. 사진=김영태 기자

<보고, 먹고, 꿈꾸며, 천천히 걷는 곳으로>

'자온길 프로젝트'는 규암마을을 '보고, 먹고, 사고, 꿈꾸며 천천히 걷는' 동네로 재창조하는 사업이다. 전공인 전통공예를 기반으로 현대인들의 감성과 정서에 잘 맞는 공간으로 리모델링하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에 힘입어 동네에 활기가 돌고 젊은이들이 들어와 창업을 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카페가 10곳이나 되고, 여러 개의 음식점이 새로 문을 열었다. 민간의 노력이 자연스럽게 도시재생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박 대표가 신경을 쓰는 것 중의 하나가 홍보이다. 인근의 롯데리조트와 협업하여 패키지상품을 판매하고, 유명작가들이 만든 도자, 섬유, 그림, 옻칠공예, 액세서리, 영상, 사진도 판다. '세간TV'라는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유명가수를 초청하여 공연도 열고 있다. 김장훈, 재주소년, 홍이삭, 토마스 쿡, 브로콜리너마저, 강아솔, 예빛 등이 이곳에서 팬을 만났다.

부여군도 규암리 일원에 공예마을을 추진하고 있어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청년공예인들이 창작·전시·판매를 하도록 창작클러스터를 조성, 운영 중인 것이다. 지난 4월에는 '123사비 공예마을'을 개관했다. 옛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청년작가와 지역주민에게 창작센터와 커뮤니티, 레지던스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비전과 안목, 추진력을 가진 박경아 대표의 시도를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다. 시골집을 리모델링하여 소박한 창작 및 주거공간을 갖고자 하는 사람은 물론 카페와 식당, 레지던스 등을 운영하려는 창업가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젊은 세대가 옛마을을 자산으로 하여 스타트업을 시작한 것도 흥미롭다. 도시(마을) 재생사업을 추진하는 지자체와 정부의 벤치마킹 대상으로도 가치가 높다.

규암리는 경관도 빼어나고 백제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이다. 강가에 수북정이라는 아름다운 정자가 있고, 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왕이 앉으면 저절로 따뜻해졌다는 자온대라는 바위가 있다.

박 대표는 낡고 오래된 마을에 따뜻함을 불어넣고 있다. 역사와 문화,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잠자고 있는 동네에 봄날의 온기를 더해 희망의 새싹을 틔우고 있는 것이다.

박경아 대표는 낡고 오래된 옛마을을 오히려 소중한 자산으로 여기고 있다. 사진=김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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