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는 봤나? ‘아기공룡 둘리’ 떼창…250의 뽕에 취한 밤 [고승희의 리와인드]
2015년부터 찾아온 ‘뽕’의 집대성
익숙한 뽕짝에 더해진 EDM의 힙
개인의 기록과 정서가 담아낸 보편성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쿵짝 쿵짝 쿵짜자 쿵짝’. 네 박자의 ‘뽕짝’ 리듬이 정체성을 드러내다가도 어느 순간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기이한 장면들이 70분 내내 연출됐다. 찬란한 오색 조명 아래로 모습을 드러낸 프로듀서 250(이오공, 본명 이호형). 공연이 절정을 향해갈 때쯤, 난데없이 등장한 서정적인 키보드 선율이 공기를 바꿨다. ‘빙하 타고’로 시작하는 익숙한 소절이 술래잡기 하듯 튀어나오자, 객석에선 이내 함성이 터졌다. 머뭇거리던 관객들은 하나 둘 박수를 쳤고, 이내 떼창으로 둘리의 친구가 됐다.
“외로운 둘리는 귀여운 아기공룡, 호이, 호이, 둘리는 초능력 내 친구~♬”
한 사람의 노스탤지어는 시대와 세대를 초월했다. “늘 보고픈 엄마를 찾아 헤매기에, 마이콜과 라면만 먹어도 슬프다”는 250의 ‘아기 공룡 둘리’에 대한 기억은 누구나 지나온 어린시절의 향수였다. 250이 품은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은 300여명의 관객 사이로 촘촘히 스며들었다.
지난 15일 토요일 밤 9시, 대한민국 공연예술의 심장인 세종문화회관이 ‘21세기 무도관’으로 변신했다. ‘뉴진스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트곡 제조기이자, 지난해 발매한 ‘뽕’ 앨범을 통해 한국대중음악상 4관왕에 오른 주인공. 프로듀서 250의 단독 공연이다. 세종문화회관의 여름 축제인 ‘싱크 넥스트’의 주인공으로 선 250의 공연은 일찌감치 314석 전석이 팔려나갔다. 세종문화회관에서 밤 9시에 공연을 한 것은 250이 처음이었다.
올 한 해 250은 해외 투어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지난달 마친 일본 투어 역시 전석 매진이라는 진기록을 썼다. ‘프로듀서 계의 BTS’이자 개인 활동으로도 음악성과 스타성을 인정받았지만, 한국의 주요 공연장에서 그의 ‘뽕’ 앨범을 온전히 보여준 것은 이날의 ‘아직도 모르시나요’가 처음이었다.
객석의 의자를 모두 떼어내고 스탠딩으로 탈바꿈한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그는 ‘뽕’ 앨범 수록곡을 기반으로 레트로와 2023년의 최신 음악 사이를 자유롭게 오갔다. DJ 믹스를 포함해 총 14곡이 70분 동안 이어진 공연의 세트리스트는 잘 짜여진 스토리텔링이 눈에 띄었다. 2015년 시작해 2022년 완성된 ‘뽕의 여정’을 들여다 보면서도, 기존 앨범의 순서를 뒤집어 250이 담은 정서를 더 가까이 느낄 수 있게 해줬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로 출발한 공연에선 250이 뽕을 찾아떠난 여정에서의 본격적인 ‘첫 작업’이라 할 수 있는 ‘이창’(2018년)이 두 번째 곡으로 나왔다. 이어 ‘레드 글라스’가 시작되자, 관객들은 서서히 몸을 풀기 시작했다. 음악과 음악 사이를 메우는 빈 공간은 클럽 음악으로 채워졌다. ‘뽕’은 변주의 변주를 더했다. 최신의 음악 감각을 더한 선명한 사운드는 ‘뽕’과 EDM이 추구하는 각각의 소리를 분명히 들려줬다. 그러면서도 귀에 거슬리지 않는 안정적인 사운드의 조화를 만들어냈다.
탄탄한 피처링 군단의 등장은 이날 공연에서 또 다른 하이라이트였다. 색소포니스트 이정식의 연주는 끈적한 뽕 블루스의 감성을 공연장에 뿌렸고, 묵직하고 끈끈한 사운드 뒤로 투명한 실로폰 음색을 닮은 사운드가 이어졌다. 다양하고 생생한 소리의 조합으로 지루할 틈이 없는 사운드의 향연이었다. 특히 핑거스냅처럼 내달리는 뽕의 리듬이 더해질 땐 현란한 조명까지 어우러져 혼이 쏙 빠졌다. 변칙적인 불협 화음이 만든 이질적인 감성에 기타리스트 한성철의 연주가 더해진 ‘사랑이야기’가 시작되자 관객들은 몸을 가만히 둘 수 없는 지점에 다다랐다. 빠르게 내달리는 리듬과 사운드에 맞춰 조명은 시시각각 색을 달리 했다. 면도날 오차도 허용하지 않은 완벽한 합이 압권이었다. 세종문화회관에 따르면 이날의 조명 역시 250의 라이브 연주에 맞춰 실시간으로 연출됐다. 양용환 조명감독의 솜씨였다. 무려 3일간의 리허설을 통해 합을 맞춘 결과물이다.
심장을 쪼는 160BPM의 음악들은, 높은 도수의 알코올처럼 관객을 홀렸다. 대단한 몸짓이 나올 수는 없었다. “음악이 지나치게 빨라지면, 박자를 맞추기도 힘들어지기 때문”(250)이다. 그저 두 팔을 들어올려 갸우뚱 거리고 들썩이는 정도. 세트리스트의 절묘한 구성도 관객들의 몸짓 변화를 이끌어내는 일등공신이었다. 낯선 뽕의 세계에서 수줍게 헤매이다 익숙한 EDM이 짙어진 DJ 믹스셋에서 숨고르기를 했고, 점차 찐득한 뽕의 향기를 감각할 수 있도록 해줬다.
히트곡 ‘뱅버스’ 이후, 공연은 ‘뽕’ 앨범의 첫 곡인 ‘모든 것이 꿈이었네’로 향했다. 이박사의 프로듀서인 김수일이 처음으로 가창한 미발표곡은 250의 앨범을 통해 다시 태어났고, 이날의 공연에선 나운도의 목소리로 관객과 만났다. 그 뒤로 ‘아기 공룡 둘리’를 부른 주인공 오승원과 함께 한 ‘휘날레’가 붙었다. ‘뽕’ 앨범의 마지막곡이 공연에선 첫곡 바로 뒤에서 만났다. 앙코르에 해당하는 ‘춤을 추어요’는 공연의 마침표를 찍기에 적당했다. 춤을 출 수 있으면서도 슬픔을 내재한 뽕짝 음악의 정체성이 온전히 담긴 곡이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나운도의 가창도 춤을 추던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렸다.
‘뽕’과 EDM의 만남은 대중음악의 하위 장르로 치부되던 뽕에 대한 편견을 지웠다. 지난 7년의 시간동안 탐구해온 250의 ‘뽕’의 결과물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는 앞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뽕짝이면서 뽕짝이 아니어야 하고, 슬프면서도 춤을 출 수 있는 음악”이자 “오래된 사운드가 들리면서도 깔끔하고 해상도가 높은 현대식 사운드로 들리는 음악으로 만들고자 했다”고 했다. 이날의 공연이 바로 그랬다.
250의 공연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7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한 장르를 연구해온 뮤지션의 지난한 음악 세계, 그 노력 안에 담긴 개인의 정서, 가장 평범한 개인의 기록이 가진 보편성의 힘…. 공연은 저마다의 존재 이유를 가진 곡들을 통해 하나의 정서로 나아갔다. 이제는 지나와 버린 날들에 대한 그리움과 꾹꾹 눌러놓은 슬픔이 삐죽삐죽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다가도 현란한 리듬에 취해 휘발된 슬픔들이 공허를 남겼다. 2023년 찾아온 ‘뽕’의 모습이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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