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Y 간판’ 따려 교차지원… 미래 월급엔 별 도움 안된다? [송민섭의 통계로 본 교육]

송민섭 2023. 7. 16. 19: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교차지원 문이과생 취업 후 임금 비교
고교 이과생이 문과계열 대학 진학
취업 1년 뒤 월 228만5000원 받아
이공계열전공 253만9000원比 적어
“적성 불일치 등 여파 노동시장 영향”

253만9000원 대 228만5000원.

오늘은 퀴즈로 이야기를 풀어 가겠습니다. 위 금액은 둘 다 일반고에서 이과였던 학생이 4년제 대학을 다닌 뒤 취업에 성공해 1년 뒤쯤 받는 월평균 소득입니다. 하나는 평범하게 이공 계열 대학을 나온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대입 정시에서 교차지원에 성공해 인문·사회 계열을 전공한 경우입니다. 어느 것이 교차 지원한 고교 이과생 출신의 월급일까요? 정답은 228만5000원입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발간하는 계간지 ‘노동정책연구’ 최신호에 게재된 논문 ‘전공 교차지원의 노동시장 성과 분석’(고은비·송헌재)에 나온 내용입니다. 연구진은 2010∼2019년 ‘대졸자직업이동경로조사’를 활용해 최근 10년간 대학졸업자 9만2078명의 취업 여부 및 소득 수준을 추적했습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들이 쉬는 시간을 맞아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초조사결과에 따르면 이 기간 일반대 졸업자의 취업 비율은 60.7%이었습니다. 상용직 근로자로서 월평균 소득(임금)은 240만6000원(2015년 물가 기준)입니다. 2021년 기준 일반대 졸업자 정규직 비율은 61.5%, 월평균 임금은 226만1000원(이공 계열 233만4000원, 인문·사회 계열 197만2000원)이라는 통계청 지역별고용조사 결과와 큰 차이는 없습니다.

연구진이 주목한 부분은 고교 이과생의 인문·사회 계열과 문과생의 이공 계열 대학 진학이라는 교차지원이 노동시장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냈느냐입니다. 교차지원은 2002년 고교 1학년 대상 7차 교육과정 도입 이후 대학별로 허용이 됐습니다. 문·이과 통합을 주된 목표로 하는 2015 개정 교육과정(2015년 9월 고시)에 따른 2022학년도 대입부터 급증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쳇말로 이과생의 ‘문과 침공’이 교차지원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일례로 2022학년도 서울대 인문·사회 계열 정시 최초 합격자의 44.3%는 수능 수학에서 ‘미적분’이나 ‘기하’를 선택한 이과생이었습니다. 2023학년도에선 그 비중이 51.6%로 늘었습니다. 자유전공학부의 경우 100% 이과생이었고, 경제학부는 74.3%, 사회학과 60.0%, 역사학부마저 50.0%였습니다.

이과생들이 교차 지원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학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입니다. 수능은 응시 집단의 평균과 표준편차를 조합한 표준점수로 서열을 매깁니다. 국어의 경우 ‘언어와 매체’, 수학은 ‘미적분’ 평균이 다른 선택과목에 비해 높게 형성됩니다. 미적분을 선택한 이과생이 수학에서 4점짜리 문제 하나를 틀렸더라도 확률과통계를 선택해 만점을 받은 문과생과 표준점수가 같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선택과목 간 수능 점수 유불리가 극명하다 보니 지난해 수능에서 수학 1등급대의 점수를 거둔 학생의 경우 국어 점수가 3∼4등급대이더라도 중앙대, 한양대, 심지어 서울대에 합격한 경우가 생겼습니다.
대입 지원생들이 보다 높은 서열의 대학 간판을 따려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한국이 학벌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출신 대학에 따라 사회·경제적 위치가 어느 정도 보장됩니다.

연구진은 “학벌주의에 따른 대학 서열화가 공고한 한국 환경에서 학생들이 적성보다는 대학 간판 때문에 교차 지원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진단합니다. 대입 과정에서 이과에서 문과 계열로 환승한 대학생들의 적성 불일치 정도나 대학 생활 만족도가 떨어지다 보니 그 여파가 졸업 후 노동시장에서도 이어지더라는 분석 결과입니다.

사족인데, 이 논문을 읽고 난 뒤 개인적으로 고민에 빠졌습니다. 기자로선 “의대 지원자 태반은 부모 욕심 때문”이라는 의사 친구 푸념이 솔깃한데, “좋아하는 과목보다는 잘하는 과목을 선택해야 한다”는 중학교 진로담당교사 조언이 마음에 걸려서입니다. 교육개혁보다 노동개혁이 우선이라는 한 기관장의 진단도 머릿속을 맴돕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