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에 잠긴 대한민국…대통령도 與대표도 부재 중
대통령실 “그 시간 아니면 우크라 방문 기회 없을 것 같았다”
방미 김기현 대표도 귀국길…“막대한 피해 못 막아 송구”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전국 곳곳에 집중호우로 피해가 속출하는 가운데 재난 컨트롤타워 부재 지적이 다시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방문으로 순방 일정이 연장되며 귀국이 늦어졌고, 국정 운영의 한 축인 여당 대표 역시 방미 일정으로 한국에 없었기 때문이다. 80년 만에 기록적인 폭우로 수도권 피해가 컸던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시 비 피해가 속출하며 윤석열 정부의 재난 대응 능력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3년 만에 최대 규모 호우 인명 피해 발생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지난 9일부터 16일 오전 11시까지 호우로 인한 사망·실종자는 모두 43명이다. 중대본 발표 이후 충북 오송 지하차도 수색작업이 이어지며 시신 2구가 추가로 인양되고, 경북에서도 호우 피해 사망자가 2명 더 늘었다. 이에 따라 올해 호우로 인한 사망·실종자는 47명으로 지난 2020년 피해 규모(46명)를 넘어섰다. 수색이 진행 중인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 피해자들이 추가로 발견되면 사망자 등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피해 상황이 속속 집계되는 가운데 재난 컨트롤타워가 제 역할을 했는지 여부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이 전격 결정되고 귀국이 늦춰지면서 대응이 적절했냐는 지적이다.
순방 일정 중 윤 대통령의 호우 관련 메시지는 지난 13일 처음 나왔다. 당시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한덕수 국무총리와 통화해 "재난 상황에서는 다소 과하리만큼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호우 상황은 지난 14일부터 심각해졌다. 14일 밤이 지나고 15일 새벽이 되자 충북 괴산댐은 43년 만에 월류했고,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는 오송 지하차도는 물에 잠긴 상태가 됐다.
尹, 수해 상황 심각해지자 이틀간 세 차례 대책 지시
이에 호우 관련 윤 대통령의 지시가 나온 건 15일 오후 4시경, 우크라이나 현지 시각 오전이었다. 이미 사망·실종자 숫자가 30명이 넘은 상황이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도착하자마자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 및 대처 상황에 대해 보고받고 한 총리에게 "군·경 포함 정부의 모든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 재난에 총력 대응해달라"고 지시했다.
이후 호우 관련 메시지는 연이어 나왔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상회담 종료 직후 서울 중대본과 화상으로 수해 피해 상황을 점검했고, 폴란드 바르샤바로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참모들과 집중호우 대응 긴급 상황 점검회의를 열었다고 추가로 공지했다.
이어 16일(현지 시각) 4시50분경에는 폴란드 현지에서 중대본과 화상으로 연결해 집중호우 대처 점검회의를 주재했다고 대통령실은 밝혔다. 우크라이나 도착 직후 '총력 대응'을 주문한 것을 시작으로 15∼16일 이틀 동안 모두 세 차례 집중호우와 관련한 대책을 지시한 것이다. 인명 피해가 늘어나면서 '늑장대응' 논란이 커지자 적극적으로 나선 모습이다.
수해로 인한 피해가 커지는 가운데서도 예정에 없던 우크라이나 방문을 결정한 데 대해서도 대통령실은 16일(현지 시각) 설명에 나섰다. 폴란드 바르샤바 현지에서 기자들과 만난 대통령실 관계자는 '국내 상황을 고려해 우크라이나 방문 취소를 검토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 시간이 아니면 우크라이나를 방문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고 밝혔다. 이어 "대통령이 지금 당장 서울로 뛰어간다고 해도 그 상황을 크게 바꿀 수는 없는 입장이기에, (수해 상황을) 수시로 보고를 받고 하루에 한 번 이상 모니터링을 했다"고 설명했다.
국정 운영의 한 축인 여당의 수장도 한국에 없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10일 5박7일 일정으로 미국으로 출국했다. 미 백악관·정부 관계자, 상·하원 의원들을 만나 올해 70주년을 맞은 한·미 동맹의 강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김기현 대표도 미국서 귀국길…野 "우크라서 화상 지시만"
방미 일정을 마무리한 김 대표는 현재 귀국길에 오른 상황이다. 그는 15일(현지 시각) 자신의 SNS에 "5박7일 간의 미국 출장 일정을 마무리했다"며 "북핵 위협으로부터의 우리나라 안전보장과 재편되는 국제질서 속에서의 경제시장 확보, 재외동포 지위향상 등을 위해 의미있는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되지만, 본국의 폭우 피해 소식으로 마음이 무겁다"고 적었다.
그는 "폭우로 수십 명의 인명이 사망·실종 상태이고, 산사태·도로침수·농지와 주택침수·댐 범람·급류사고 등으로 인한 피해가 속출했다는 보도를 접하니, 침울하기 짝이 없다"면서 "지난해 여름 '물폭탄' 수해 이후 많은 분들께서 대비를 해온 것으로 알고 있지만, 막대한 피해를 좀 더 철저히 막을 수 없었던 점, 매우 송구스럽다"고 사과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러면서 "저도 한 시라도 빨리 귀국하기 위해 최대한 빠른 항공편을 수소문해 비행기를 타려고 지금 LA공항에 도착했다"며 "귀국하는 대로 보다 상세한 상황을 파악해 최대한 신속하고 충분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알렸다.
정부여당의 컨트롤 타워가 부재한 상황에 대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강하게 질타했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지난 5월 G7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자국에 홍수 피해가 심각하자 조기 귀국해 사태 수습을 진두지휘한 바 있다"며 "그런데 대통령이 귀국 일정을 연기하면서까지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꼬집었다.
김태년 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SNS에 윤 대통령을 겨냥해 "당장 귀국해도 모자랄 판에 우크라이나에서 화상 지시만 했을 뿐"이라며 "현장에서 진두지휘해야 할 재난 컨트롤타워의 수장들이 대통령의 지시를 받겠다고 모니터 앞만 지키고 있으니 이번에도 사후약방문식 대처에 급급하다"고 날을 세웠다.
이날 오전 중대본과 화상 회의에서 "경찰은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저지대 진입 통제를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해달라"고 지시한 윤 대통령은 오는 17일 귀국하는 대로 중대본 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호우 피해 상황에 대한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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