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시럽급여' 논란, 보수신문이 불 지피고 힘 보태
조선일보, 국민의힘 법 발의 당일 "실업급여 하한액 낮춰야"
매일경제, '시럽급여' 논란 터지자 "본질 안보고 말꼬리 잡기" 두둔
[미디어오늘 윤수현 기자]
정부·여당이 실업급여 하한액 축소·폐지 방안을 논의하면서 “시럽급여”라고 말해 파문이 일고 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원장이 일부 실업급여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있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달콤한 보너스란 뜻으로 '시럽급여'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시럽급여' 논란, 나아가 정부의 실업급여 개편 논의를 보면 보수신문의 문제제기와 함께 시작됐다. 또 보수신문은 실업급여 논란이 불거지자 국민의힘에 힘을 보태고 있다.
실업급여 개편에 불을 지핀 것은 조선일보·문화일보 등 보수신문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5월26일 사설 <월급보다 더 주는 실업급여, 누가 일하려 하겠나>를 내고 “실업급여 수령자의 28%가 재직 때 받은 세후 급여보다 더 많은 금액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며 “실업급여가 구직을 견인하는 본래 취지를 살리려면 실업급여 하한액과 최저임금 연동을 끊거나, 하한액을 최저임금의 60% 정도로 낮춰야 한다. 고용 인센티브와 직업 훈련을 강화하는 등 근로 의욕을 높이는 '일하는 복지'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문화일보 역시 5월25일 사설 <월급보다 많아진 실업급여, 전면 재설계 불가피하다>를 통해 “퍼주기식 실업급여 제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하한선 인하, 지급 횟수 제한 등 전면적 재설계가 시급하다”고 비판했다.
같은 시기 여당은 실업급여 손보기에 나섰다.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5월26일 실업급여 하한액 규정을 폐지하는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또 정부·여당은 지난 11일 실업급여 하한액 폐지 검토에 나섰다. 박대출 정책위원장의 “시럽급여” 발언은 이 과정에서 나왔다.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는 12일 실업급여 관련 공청회를 열었는데 박대출 위원장은 “일하는 사람이 더 적게 받는 기형적인 현행 실업급여 구조는 바뀌어야 한다”며 '시럽급여'라는 말을 꺼냈다.
고용노동부 차관 역시 “일하며 얻는 소득보다 실업급여액이 더 높다는 건 성실히 일하는 다수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노동시장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점에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문제”라고 했다.
그러자 보수·경제지들은 '시럽급여'라는 말에 주목하고 관련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주장에 힘을 보탠 것. 파이낸셜뉴스는 13일 <달콤한 '시럽' 실업급여 개혁 시급하고 절실하다> 사설에서 “실업급여가 근로의욕을 떨어뜨리고 나랏돈을 빼 먹는 주범이 된 것이다. 실업급여가 달콤한 '시럽급여'가 되고 있다는 자조 섞인 말도 나올 정도”라며 “문재인 정부가 2019년 고용보험법을 개정해 수급 기간과 기준액을 늘린 게 결정적인 이유”라고 했다.
서울신문은 14일 <쉬면서 더 받는 실업급여, 지급 기준 고쳐라> 사설에서 “실업급여가 부정 수급자들 사이에서 달콤한 보너스라는 '시럽급여'로 불릴 정도로 악용되고 있다니 성실히 일하는 근로자로서는 부아가 치미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시럽급여'라는 말은 실업급여를 받는 구직자, 나아가 실업급여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일부 사례를 가지고 전체 제도 자체를 공격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실업급여 제도는 불안정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2월 발표한 <실직 전 고용 안정성에 따른 실업급여 수급 및 재취업 행태> 보고서에 따르면 불안정 노동자들의 실업급여 수급률은 15.8%에 불과하다. 고용보험을 미가입하거나 근로 시간이 짧아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불안정 노동자를 위해선 실업급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지급 조건을 확대해야 하는 것이다.
또 고용노동부는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21년 8월 한국의 실업급여가 OECD 국가들과 비교해 많지 않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국의 실업급여는 평균임금의 60%지만, 독일은 순임금의 60~67%, 프랑스는 기준임금의 57~75%, 일본은 임금일액의 50~80%다.
이에 한국일보는 물론 조선일보까지 국민의힘의 발언을 비판하고 나섰다. 한국일보는 14일 <'시럽급여' 논란에 노동계·학계 “일부 개선은 필요, 약자 혐오 부적절”> 보도에서 “취재에 응한 전문가들은 최저임금으로 받는 월급보다 실업급여가 많은 일부 '역전 현상'은 개선할 필요가 있지만, 고용 안전망 확대 없는 실업급여 개편 논의는 섣부르다고 입을 모았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같은날 <“시럽급여” 할 말인가...野선동 맞설 무기가 '거친 입' 뿐인 與> 기사를 내고 “실업급여 보장이 확대되는 과정에 일부 '도덕적 해이'가 있어 이를 개혁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커지고 있는 과정에서 시럽급여라는 거친 말이 나오면서 정책 효과가 반감하는 역풍이 불었다”며 “게다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지 못해 실업의 고통을 만든 정치권에서 이런 발언이 나오자 전문가들은 '정치인들이 할 말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매일경제는 '시럽급여' 논란을 말꼬리 잡기로 규정했다. 매일경제는 15일 사설 <실업급여 본질 안보고 '시럽급여' 말꼬리 잡기; 見指忘月>에서 “당정이 공개석상에서 거친 표현을 쓴 것은 일부 실업급여 중독자의 모럴해저드를 꼬집기 위한 의도였다고 하더라도 신중치 못한 처사다. 하지만 그렇다고 말꼬리를 잡아 실업급여의 본질과 문제점을 어물쩍 덮으려는 민주당의 행태는 더 큰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라도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우대받고 재취업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보호받는 공정한 노동시장이 될 수 있도록 야당도 실업급여 대수술에 힘을 보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한겨레는 15일 사설 <'해외여행·명품 선글라스' 청년·여성 실직자 조롱한 집권당>에서 “실업급여는 노동자와 사용자가 함께 납부한 고용보험료를 재원으로 삼는다. 이를 마치 정부·여당이 적선이라도 하는 것처럼 여기고 있는 것인가”라면서 “실업급여를 받으러 온 이들의 표정과 차림새까지 거론하며 갈라치기한 담당자의 인식도 놀랍지만,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양 이를 옮기는 여당 정책위의장의 수준이 한심스럽다”고 했다. 한겨레는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면 구직 안전망을 무너뜨릴 수 있다면서 “집권 여당이 산업 현장의 고질적인 일자리 미스매칭, 대-중소기업 간 격차를 해소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는 못할망정, 힘없는 청년들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려 하고 있다”고 했다.
같은 날 경향신문은 <실업급여 덜 주려고 '시럽급여' 조롱한 여당 사과하라> 사설에서 “월급보다 실업급여가 많아 노동 의욕이 꺾인다는 인식인데, 도무지 맞는 말이 하나도 없다”며 “실업급여를 노동자들이 낭비한다는 정부 시각도 잘못됐다. 한국의 실업급여 부정수급자 비율은 코로나19 이전 1%대로 여타 선진국보다 매우 낮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부정수급이 문제라면 그들만 엄벌하면 될 일이지, 그걸 침소봉대해서 실업급여를 깎자고 덤빌 일이 아니다. 지난해 '주 69시간제'로 윤석열 정부가 맞은 역풍과 작금의 '시럽급여' 역풍이 닮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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