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요. 애를 낳으라고요? [세상읽기]

한겨레 2023. 7. 16.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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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2018년 9월27일 오후 서울 성북구의 한 산부인과 신생아실 카트가 비어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세상읽기] 윤홍식 |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소셜코리아 운영위원장

얼마나 더 떨어져야 정신을 차릴까. 합계출산율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니다. 감당할 수 없는 경제위기가 덮친 것도 아니다. ‘여성 한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인 합계출산율이 지난해 0.78명에서 올해는 더 떨어져 0.73명에 근접할 것이라고 한다. 이대로 가다간 0.6명대가 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기이한 일은 인구학자들이 상상하지도 못했던 수준까지 합계출산율이 떨어지는 동안, 한국 사회는 승승장구했다는 것이다. 1990년대 들어서며 성장률이 낮아지긴 했다. 하지만 한국 경제는 1997년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도 계속 성장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코로나 위기가 한창인 2021년 7월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변경했다. 19세기 이래 지난 200년 동안 한국인이 오매불망 소망했던 세계 일류 국가가 되는 꿈이 마침내 이루어진 것이다. 경제만이 아니다. 한국 문화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인이 누리는 대세 문화가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세계사를 다시 써야 할 정도로 대단한 성취를 이룬 한국인데, 정작 이 나라에 사는 젊은 세대는 아이를 낳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정부가 말한 것처럼, 2006년부터 2021년까지 “저출산 대응에 약 280조원을 투입했으나, 정책 수요가 높은 임신·출산·돌봄 등 아동·가족에 대한 직접 지원이 부족”했기 때문일까? 예산을 직접 지원에 쓰면, 젊은 세대가 아이를 낳을까?

‘이런 정책을 이렇게 하면, 합계출산율이 이만큼 오른다’는 연구들이 널려 있다. 어떤 전문가는 합계출산율이 낮아진 원인이 결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니, 결혼의 장애 요인을 완화하면 젊은 세대가 출산할 것이라고 한다.

정말 그럴까? 한국 사회의 극단적인 초저출생 현상은 주거비용을 낮추고 좋은 일자리를 늘리고, 일과 생활 간 조화를 지원하는 정책을 통해 완화할 수 있는 정도를 이미 넘어섰다. 결혼과 출산에 장애가 되는 요인을 제거해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생각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진짜 이유를 보려 하지 않는 것이다. 몇가지 출산장려 정책을 통해 출산율을 높이는 직접적 성과를 얻고 싶겠지만,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벼가 빨리 자라지 않는다고 벼의 싹을 잡아당겨 벼를 말라 죽게 하는 것’과 같다. 한국 사회는 이미 아이를 즐겁게 낳고 키울 수 없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싹을 잡아당기는’ 정책 몇개에 돈을 더 쓰고 평가 방식을 바꾼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어리석은 짓이다. 역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많은 정책을 추진했지만, 출산율이 더 낮아지고 정부의 저출생 대응 정책이 세간의 조롱거리가 된 이유이다.

여성이 아이를 낳으면, 경력이 단절되고 독박육아를 해야 하는 것이 명백한데도 대통령은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회이다. 성평등은 정부 논의에서 사라졌고 돌봄이 소중하다며, 돌봄을 값싼 외국인 노동자로 해결하겠다는 사회이다. 그사이 한국은 26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성별 임금 격차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엄마가 되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어디 이뿐이랴. 한국 사회는 중고등학생 때 공부를 안 하면, 평생 죄인처럼, 차별과 저임금을 감내하며 살아야 하는 사회이다. 나의 노력만큼이나 내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어쩌면 더 중요한 사회이다. 모든 청년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좋은 일자리는 열에 한두명밖에 찾을 수 없는 사회이다. 청년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 자식에게 흙수저를 물려주고 싶지 않다.” “금수저를 위한 노예를 공급하지 않겠다.” “헬조선은 나만 겪으면 된다.”

이런 사회에서 2006년부터 2021년까지 15년 동안 연평균 국내총생산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예산을 쓰고 출산율이 오르지 않는다고 투덜거린다. 상식이 있는 정치인, 학자, 관료, 언론인이라면 민망해하고 부끄러워해야 한다.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합계출산율이 더 떨어져야 할지도 모른다. 때때로 세상은 곧 망할 것 같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하지 않으면,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뭐라고요. 애를 낳으라고요?” 0.78명을 낳은 것도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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