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급여도 ‘카르텔’인가요? [한겨레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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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급여 제도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어머니 때문이었다.
십수년 전, 대학생이던 나는 실업급여 신청 방법을 알아봐 달라는 어머니의 말에 바쁘다고 툴툴거리며 데스크톱 컴퓨터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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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한겨레 프리즘] 이승준 | 오픈데스크팀장
실업급여 제도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어머니 때문이었다. 십수년 전, 대학생이던 나는 실업급여 신청 방법을 알아봐 달라는 어머니의 말에 바쁘다고 툴툴거리며 데스크톱 컴퓨터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국가가 실직한 노동자의 삶도 보듬어준다는 사실에 놀랐다.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게 된 건 ‘실업급여’를 ‘시럽급여’라고 한 정부와 국민의힘 때문이다. “고용보험이 생겼던 목적에 맞는 그런 남자분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오시는데 여자분들, 계약기간 만료, 젊은 청년들은 이 기회에 쉬겠다고 온다.” “그리고 해외여행 간다. 샤넬 선글라스 사든지 옷을 사든지 이런 식으로 즐기고 있다.” 지난 12일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가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개최한 민·당·정 공청회에 참석한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실업급여 담당자의 발언이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의장은 다른 강연회에서 이 말을 그대로 옮기기도 했다.
덕분에 나는 ‘이상한 질문’에 사로잡혔다. ‘어머니는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가며 무슨 옷을 입었을까’ ‘형편이 어려워 보이는 모습을 보였을까.’ 청소 일을 하러 가도 언제나 곱게 화장을 하고, 단정하게 옷을 차려입고 가던 사람이었다. 그때 일을 묻고 싶지만, 몇년 전에 세상을 떠나셔서 물어볼 수가 없다.
온라인 여론의 추이를 좇는 일을 하니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온라인 커뮤니티의 반응을 살펴봤다. 13일 아침 출근길 온라인 공간에서 타오르는 ‘거대한 분노’에 졸음이 싹 달아났다. 졸지에 조롱을 당한 구직자와 잠재적 구직자의 분노는 심상치 않았다.
“실업급여 타러 가기 전까지 월급 받던 사람들입니다. 샤넬 선글라스 쓰고 가면 안 됩니까?” “자유, 자유 외치면서 본인이 받은 돈도 마음대로 못 쓰나?” “누가 보면 실업급여 1000만원 주는 줄 알겠다” “내가 일하면서 낸 돈에서 받는 건데 왜”….
정부와 여당의 시각을 최대한 ‘선해’하면 ‘현행 제도에서 실업급여가 일하고 받는 세후 월급보다 많은 상황이 일부 발생한다’→‘구직활동을 하지 않고 실업급여에 의존한다’→‘구직자는 재취업 노력에 힘을 쏟아야 한다’였을 것이다. 실업급여 담당자의 전체 발언 취지도 그렇다.
그렇다면 현행 제도를 정비하고 개선하겠다는 메시지를 강조하면 될 텐데, 왜 여성과 청년, 계약직 노동자들을 콕 집어 갈라치고, 조롱하고, 망신 주는 것일까.
이번 일도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 방식의 되풀이로 보인다. 그동안 윤 대통령의 ‘지휘’ 아래 정부와 여당은 노조, 시민단체, 교육, 언론 등을 “개혁한다”며 특정 사례를 콕 집어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카르텔’ 딱지를 붙여왔다. 문제를 도려내서 고치기보다 특정 집단 전체를 악마화시키고, 망신 주며 때리는 방식이다. 이번엔 구직자들에게도 ‘실업급여 카르텔’ 딱지를 붙이고 싶은 것일까.
이 과정에서 구조적 문제는 은폐되고, 해결해야 할 ‘진짜 카르텔’에 대한 정부의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실업급여만 해도 그렇다. 좋은 일자리가 적고 초단기 일자리가 대다수인 현실, 직장 내 괴롭힘, 갑질 때문에 도망치듯 일터를 떠나는 노동자들, 재취업이 녹록지 않은 노동시장, 장시간 노동과 산업재해 등으로 신음하는 일터, 노동법 사각지대인 5인 미만 사업장… “여자분들, 계약기간 만료, 젊은 청년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인 동시에 정부가 ‘큰 그림’을 갖고 개선해야 하는 ‘노동시장 카르텔’이다.
무조건 ‘때리기’만 하다 보니 말이 꼬이는 것은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고용노동부는 2021년 9월3일 언론보도 설명 자료에서 이렇게 밝혔다. “현재 우리나라의 실업급여 보장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등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높지 않으며, 보장성 수준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노사정 대타협(’15.9.) 등 오랜 사회적 논의의 결과임.” 정부가 바뀔 때마다 오랜 사회적 합의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사회를 우리는 언제까지 지켜봐야 할까.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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