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싸우며…죽지 않고 맞서는 방법 [6411의 목소리]
[6411의 목소리]
노주희 | 방송창작자·전 애플 콜센터 상담사2023년 6월21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출발한 운구 행렬은 서울경찰청 앞과 세종대로를 거쳐 모란공원 장지로 향했습니다. 정부의 노조 탄압 속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분신 항거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죽음으로 결백을 증명하고자 했던 그를 51일 만에 하늘로 떠나보내는 자리였습니다. 부고를 들은 순간부터 마지막 가시는 길까지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함께 눈물짓고 행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사연 속에 수많은 우리의 사연이 녹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단지 ‘더 나은 노동환경을 만들기 위해’ 애쓴 죄로 먼저 떠나야 했던 그의 사연은, 제가 겪은 일처럼 괴롭고 슬펐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노동하지 않고 살아가는 일생은 없다. 우리는 누구나 노동자다.’ 양회동 열사 추모집회에서 그의 죽음에 관심을 호소하던 한 학생의 말입니다.
저 역시 수십년간 노동자로 일해왔습니다. 계약서도 없이 일을 시작해 개편에 따라 민들레 꽃씨(갓털씨)처럼 떠도는 방송작가라는 본업무가 있었습니다. 정권에 따라 치우친 방송을 강요하는 윗사람들, 인사권을 앞세워 임금을 떼먹고 쉽게 해고하고 성희롱을 일삼던 피디들, 그들 눈치를 보며 후배 작가를 밤낮으로 부리던 메인 작가들. 프리랜서라는 사용자 편의에 따른 지위 안에서 근무시간도, 급여도, 해고도 그들 마음대로였습니다. 대한민국 노동자라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줄 알았던 근로기준법은 딴 나라 얘기였습니다.
그런 불안정한 고용구조 속에 있었기에 다른 일을 해야 하는 때가 많았습니다. 물건을 포장하고 옮기는 물류 노동자였다가 화장품 용기를 만드는 공장 노동자가 됐고, 김밥을 마는 시장 노동자였다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공부방 교사가 됐습니다. 애플 콜센터 상담사이기도 했네요. 이 경우 법적으로 확실히 노동자였지만, 여전히 근로기준법은 멀리 있었습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되지 않는 조항이 많은데다, 노동자 신고에만 의존하는 관리감독 체계 안에서 사장들은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며 불법을 당연시했기 때문입니다.
하청에 하청을 거치는 불법도급, 산업재해와 직장 내 괴롭힘, 성희롱과 임금 미지급, 노동자 및 노조 탄압, 부당해고 등 ‘6411의 목소리’가 저와 제 동료의 일상적이고 원초적인 근무환경 속에 눌려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1년 넘게 부당해고 문제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상대는 세계적인 기업인 애플의 하청업체 콘센트릭스서비스코리아(유), 중앙노동위원회, 노동부입니다.
회사는 2018년 상담사노조를 탄압해 와해시킨 사건으로 사회적으로 비난받은 바 있습니다. 이후 노조 간부를 대거 해고하고 어용노조를 세웠습니다. 그런 속에 저는 수습사원으로 입사했고, 아니나 다를까 한 동료를 상대로 관리자가 개입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를 저지하려 했던 저는 다음 타깃이 됐습니다. 회사에 신고하자 회유하는 척하면서 뒤로 가해자몰이를 했고 주도면밀한 방법으로 해고했습니다. ‘이 회사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한번도 발생한 적 없다’고 전면 부정하고 ‘평가점수 미달’이 유일한 해고 사유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유일한 해고 사유에 수많은 결점과 오류가 있는데 해고가 정당할 수 있겠습니까.
회사가 애초 제시한 평가 수식이 엉터리라 그들이 제시한 점수를 도출할 수 없는데도 도출했다고 우기기에 근거 자료를 제출하라니까 1년째 회피 중입니다. 그 점수마저 조작해 낮춘 사실도 노동위원회 공방 과정에서 드러났습니다. 또한 다수의 점수 미달자가 팀장 권한으로 불공정하게 통과된 것을 해당 직원의 직접 발언이 담긴 녹취록으로 증명했습니다. 그러나 중노위는 ‘서류를 조작했을지라도’ ‘다른 사람이 불공정하게 합격했을지라도’라며 결정적인 증거들을 무력화하고 회사를 감싸주기에 급급합니다.
법원에 소를 제기한 저에게 회사는 얼마 전 변호사를 선임했다는 소식을 들려주었습니다. 서울대학교를 거쳐 서울중앙지법 등의 부장판사를 역임한 변호사. 정당한 해고가 명백하다면서 홀로 싸우는 저를 상대로 전관을 포함해 변호사를 넷이나 선임한 이유가 뭔가요. 이들은 또 어떤 일을 벌일까요. 저는 어떻게 싸워야만 이들로 인해 갈가리 찢긴 인간으로서 존엄과 명예를 되찾을 수 있을까요. 죽지 않고 맞서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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