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우크라에 '안보지원'도 보폭 확장…대러관계 관리는 과제
(서울=연합뉴스) 김효정 기자 = 정부가 윤석열 대통령의 전격적 우크라이나 방문을 통해 안보 분야에서도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한 행보를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살상무기 지원 불가'라는 기존 원칙을 확실히 지키면서도 우크라이나 안보를 돕기 위한 여러 옵션을 모색함으로써 한국의 보폭을 확장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15일(현지시간) 키이우 회담 후 공개한 한국의 '우크라이나 평화 연대 이니셔티브'는 ▲ 안보 지원 ▲ 인도 지원 ▲ 재건 지원 등 크게 세 가지 분야로 구성됐다.
그동안 정부의 대(對)우크라이나 지원이 인도적 지원이나 재정지원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에는 '안보 지원' 분야가 비중 있게 포함된 점이 눈에 띈다.
물론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우리의 원칙이 윤 대통령의 이번 방문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방문한다면 국제사회의 기대에 어느 정도 부응하는 지원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부담이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왔었지만, 살상무기 지원은 아니라고 거듭 선을 그은 것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났을 때 무기 지원 요청이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이미 우리가 직접적인 살상무기 지원은 안 한다는 원칙을 알고 초청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 젤렌스키 대통령이 추진하는 '평화공식 정상회의'에 힘을 실어주는 등 한국이 현재 국제적 입지에서 할 수 있는 나름의 역할을 제시했다.
윤 대통령은 키이우 현지 공동 언론발표에서 "한국은 주요 개도국들이 평화공식 정상회의에 보다 많이 참여하고, 자유 연대에 동참하도록 촉진자 역할을 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군 철수와 정의 회복, 핵 안전과 식량안보, 에너지 안보 등 10개 항의 '평화공식'을 요구하며 이를 위한 정상회의 개최를 국제사회에 제안한 상태다.
이런 자국 주도의 논의 장을 마련함으로써 우크라이나는 영토 완전성 회복과 재건을 위한 국제 여론을 규합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여기에는 러시아와 여전히 관계를 유지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에 중립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개발도상국들의 참여가 중요한데, 한국이 이를 촉진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중장기적 한-우크라 방위사업 협력도 이번에 정부가 살상무기 지원을 피하면서 내놓은 옵션이다.
전쟁 이후 재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는 나토와의 상호운용성 향상을 위해 군사력을 근본적으로 재정비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 과정에서 한국이 기여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전쟁 장기화 속에서 자유진영의 결속력 약화를 우려하는 서방, 특히 미국은 한국의 역할 확대를 반길 것으로 보인다.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위원은 "전쟁 장기화로 인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안보 지원 모멘텀 약화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전격 방문은 서방의 결속력을 재정비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말했다.
다만 한국이 이처럼 우크라이나 이슈에 '적극적 행위자'로 등장하는 것은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부담을 증가시킬 수 있다.
정부는 그동안 대러 제재 등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국제 공조에 동참하면서도 러시아와의 관계를 신중하게 관리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해왔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 우리 기업들의 러시아 내 진출 상황 등을 고려해서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 13일(현지시간) 아세안(ASEAN) 관련 외교장관회의 환영 리셉션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만나 "한반도 평화를 위해 건설적 역할을 해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살상무기 지원 불가라는 원칙을 유지하는 한 러시아가 직접적인 보복 행동에 나설 명분은 제한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러시아가 향후 한국의 대(對)우크라이나 지원 상황을 봐 가면서 우리 기업에 대한 비우호적 조치나 역내 군사적 활동 강화 등 견제성 행동에 나설 가능성은 있다.
두 연구위원은 "러시아 주재 우리 기업 등에 대한 러시아 당국의 보복 조치 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대러 전략 소통을 통해 양국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kimhyo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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