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줄이는 대신 일하는 과정 늘린다… 관료제 본능 [김태경의 시선]
관료화된 조직의 비효율성 꼬집은 '파킨슨의 법칙'
일거리가 많아져 추가로 일손이 더 필요한게 아니라 남는 직원이 생기면 불필요한 업무단계 파생하게 돼
20세기 노동관으론 닥쳐올 거대한 변화 물결에 질식
"세계의 노동자들이여, 여러분은 인생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그 유명한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을 패러디한 이 문구는
'도시에서 빈둥거리기'라는 책에 나오는 재기발랄한 문구로 유명세를 탔다.
리즈베켓대학교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교수인 스티브 매케빗은 이 책에서 그동안 금기시됐던 중요한 논쟁을 촉발했다.
왜 어떤 사람들은 오랜 기간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고서도 조직 내에서 높은 연봉과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였다.
자문가로 수년을 보낸 스티브 매케빗은 많은 회사에서 고위경영자들의 행동을 관찰한 결과 한가지 공통적 패턴을 발견했다.
그들은 할 일이 그다지 많지 않은데도 각종 회의와 출장이 포함되는 프로젝트를 양산해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부풀렸던 임금체계에 걸맞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출장과 회의를 발명해야 했다.
진실을 말하는 순간 해고라는 공포가 엄습할 수 있어서다.
■'파킨슨의 법칙'이 부리는 마술
조직 운영에 관한 가장 매혹적인 이론 중 하나인 '파킨슨의 법칙'도 이를 입증하는 중요한 인식도구다. 파킨슨의 법칙은 영국의 해양사학자 시릴 노스코트 파킨슨이 발견했다. 1955년 '이코노미스트'에 이 법칙을 소개하면서 "일은 그것의 완수에 허용된 시간을 채우도록 늘어났다"고 외쳤다. 모든 조직에 공통적 관료제의 무한한 확장능력을 특정한 것이다. 그가 밝힌 사례는 가히 관료제의 무한 확장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입증하는 사례로 꼽힌다.
군에서 장교로 복무했던 그는 복무 경험을 토대로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대형군함이 62척에서 20척으로 줄면서 장교 수는 31%까지 감소했는데도 기지에서 일하는 인력은 오히려 40%가 증가했다. 특히 행정팀은 78%까지 급증했다. 이치로 보자면 관리조직의 규모가 줄어들어야 정상인데 오히려 관리자 수는 점점 더 많아졌다. 이런 현상은 정부의 다른 부처에서도 비슷하게 관찰됐다. 여기서 그는 유명한 법칙을 생각해냈다. 만일 사람들에게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10시간이 주어진다면 그들은 10시간을 사용하고 똑같은 일에 25시간이 주어지면 25시간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해당 직원들이 게으르거나 의도적으로 속이려는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달성해야 하는 업무는 써야 하는 시간에 비례해 중요성이 증가하고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조직 내에서 잉여인간으로 취급받기 싫은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아무리 많은 시간을 줘도 직원들은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다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쁘고 덜 바쁜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아주 적게 일하면서도 바쁘게 보낼 수 있는 것이다.
■"바쁜 척해야 살아남는다"
요즘 관행처럼 굳어진 인사말로 '바빠'라는 말도 이 같은 현상을 반영한다. 바쁘거나 그런 척해야 조직 내에서 중요한 사람으로 인정받거나 잉여인력으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강박증이 노동자들의 심리구조를 형성한다. 물론 조직 운영이 이런 식으로 돌아가면서 암암리에 이런 심리 특성을 형성하는 것을 무시할 수 없지만 말이다.
파킨슨의 법칙은 노동시간을 지금껏 획기적으로 줄이지 못한 중요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사무실에서 누가 얼마나 빨리 일하고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조직이 원하는 결과치만 생산해내면 되기 때문이다. 업무 과정이 어떤지는 측정하거나 평가하기에 꽤 애매하다.
이제 조직생활에서 바쁘지 않다는 건 금기다. 후기 산업시대 이후 우리는 자동화 기계화 등으로 업무가 대폭 줄어들었지만 늘 바쁘다. 아니 바쁜 척해야 한다. 자유시간을 특권으로 간주하던 시대가 끝나고 일에서 특권이 나오는 시대로 이동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19세기에는 빈둥거림이 일종의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는 표시였다면 20세기는 산업자본가와 자산가들이 늘어나면서 사회 분위기가 바뀌었다. 열심히 일하는 풍토가 사회적 지위의 척도로 떠올랐다. 새로운 상류층의 바쁜 삶은 점차 '성공'과 '진보'의 동의어가 됐다. 할 일이 많아서라기보다 바쁘다는 것이 '명예의 새로운 징표'로 작용한 결과다.
20세기에 노동은 고귀하고 신성한 무엇이었다. 1950년대부터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여가시간보다는 일할 권리에 초점을 맞춰왔다. 노동해방을 외칠 뿐 정작 중요한 노동에서의 해방은 빠트렸다. 진보진영이 깔아놓은 노동해방은 여전이 노동에서의 해방보다는 노동자의 권리와 생산력과 비례한 노동관을 만들어 노동자를 계속 노동하는 존재로 고착화하는 데 기여했다. 물론 노동자들의 권리 향상이라는 긍정적 효과도 창출했지만 권리라는 것에 주안점을 두다 보니 고착화된 노동관 형성에 암묵적으로 기여한 것이다.
노동을 바쁜 것이 좋고 도덕적이라는 생각은 가짜노동을 낳는 합리화 중 하나다. 계속 일하다 보면 언젠가는 더 많은 자유시간이 후식처럼 주어질 것이라는 미몽에 붙들렸다. 이런 맥락에서 경제학자들이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노동시간과 생산성의 비례관계도 의심스러운 건 마찬가지다.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수백만명의 사람이 대부분의 시간을 가짜노동을 생각해내느라, 즉 바쁜 척하느라 노동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안을 보여주지 않는 합리화의 덫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기업도 빠져든 관료제 유토피아
기업들은 명령 하달식에 관료적이며 복잡하고 몸이 무겁고 보수적이다. 공공기관에 비해 자유롭게 사고하고 현대적이고 효율적이며 능률적인 조직을 갖췄다며 뽐내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감독 관리 경영직에 고용되고 있는 추세가 그렇다. 미국 거대기업들은 공룡기업으로서 내부조직을 관리하고 유지할 엄청난 규모의 관료제를 가동시키고 있다.
넷플릭스는 지난 2009년 갑자기 각 현장의 인사담당자 대부분을 정리했다. 사람들을 직장에 붙들어매도록 기능하는 팀을 없앤 것이다. 그 대신 맡은 일을 잘해나가면 되도록 여건을 변화시켰다. 대부분의 회사가 극소수가 일으킬지도 모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사방침을 규정하고 시행하면서 끝없는 시간과 비용을 소모하는 것과는 달랐다. 다만 직원이 회사와 잘 맞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후한 퇴직금을 줘 내보내는 방식을 택했다. 넷플릭스가 전 세계 시장을 석권한 비결 중 하나로 꼽힌다. 관료제에 짓눌려 창조와 혁신의 문제에 씨름하느라 에너지를 낭비하는 다른 기업과 다른 길을 택한 결과다.
이런 현상은 최근 불어오는 '긍정성 문화'를 조장하는 주요 매개체다. 이제 사람들은 비판을 두려워하기보다 남들과 연결되지 않을지를 걱정한다. '아니요'보다 '네'라는 긍정성의 문화가 확산되면서 남들에게 관심을 얻으려 갈망한다. 더 이상 필경사 바틀비가 "하지 않기를 선호하겠습니다"라는 발언은 설자리가 없다. 긍정성의 범람은 적어도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던 문제를 폭발시키고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여지를 아예 지워버린다. 우리는 점점 새로운 일을 더 많이 하도록 유도되고 더 피상적으로 업무에 몰두한다.
나열된 업무 목록이 끝도 없이 늘어나는 효과만 불러온다. 영혼은 부정을 정면으로 들여다보고 거기에 거주할 때만 성립한다. 반복되는 잘못된 관행이나 태도를 제어해야 할 경우에도 부정성은 효과를 발휘한다. 표피성의 업무와 보이는 성과에 치중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만일 부풀어 오른 조직에 아무도 비판하지 않고 지적하지 않는다면 조직이라는 풍선은 계속 커지고 무의미한 가짜노동이 만연하는 사태를 예방할 수 없을 것이다. 고위층은 고위층대로 자기 생존을 위해 쓸데없는 회의와 프로젝트를 남발할 것이고, 그 밑의 직원들은 그러한 과제를 수행하는라 연신 바쁜 척을 하며 그들만의 생존기술을 발휘할 것이다. 부풀어오르는 풍선을 바늘로 찔러 헛된 바람을 빼지 않는다면 폭주하는 긍정성의 파티를 끝낼 수 없다. 오롯이 바쁜 척하는 노동자들이 뒤집어써야 하는 불공정한 결과만 초래할 것이다. 가짜노동은 회사와 조직이 보상을 주는 뒤틀린 거울방에 의해 유지될 뿐만 아니라 일하는 사람의 자존감과 자아상에 깊이 뿌리 내려 유지되기에 웬만한 도전에 꿈쩍하지 않는다.
그동안 유지돼 온 노동방식은 이제 변해야 한다. 20세기에 형성된 지금의 노동관으로는 앞으로 닥칠 변화의 물결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명백하다. 관료주의와 문서 더미에 질식하는 대신 노동의 일정 부분을 휴가와 여가시간으로 대체해 자신만의 깊은 성찰시간을 갖게 하는 노동관의 혁신이 시급하다. 출퇴근 시간을 변함없는 진리로 계속 간주할 경우 노동자의 자존감과 육체는 종이와 더불어 소멸할지도 모른다.
ktitk@fnnews.com
Copyright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최현욱, 장난감 자랑하다 전라노출…사진 빛삭
- 남편상 사강, 4년만 안방 복귀…고현정 동생
- "눈 떴는데 침대에 피가 흥건"..토니안, 정신과 증상 8가지 나타났다 고백 [헬스톡]
- 이재명 유죄에 비명계 뜬다…민주 균열 가속화
- '8번 이혼' 유퉁 "13세 딸 살해·성폭행 협박에 혀 굳어"
- "치마 야하다고"…엄지인, 얼마나 짧기에 MC 짤렸나
- 영주서 50대 경찰관 야산서 숨진채 발견…경찰 수사 착수
- "조카 소설, 타락의 극치" 한강의 목사 삼촌, 공개 편지
- "엄마하고 삼촌이랑 같이 침대에서 잤어" 위장이혼 요구한 아내, 알고보니...
- "딸이 너무 예뻐서 의심"…아내 불륜 확신한 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