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 "사업안한다 각서썼는데… 기후변화 위기겪을 딸 생각에 힘들더라고요"
거래단위 세분화해 1000원부터 개인 구매 가능한 시스템 만들어
한때 덜컥 美서 창업해 힘든 나날… "이젠 든든한 파트너 있어 힘"
탄소배출권 거래 플랫폼 '윈클' 박성훈 대표
"기후 변화는 끓는 물 속 개구리와 같아요. 당장 그 위기가 체감되진 않지만, 제 딸이 30~40년 후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너무 힘들더라고요."
박성훈(52·사진) 윈클 대표는 소비자에게 탄소배출권의 가치를 알리고 거래에 참여할 수 있게끔 만들고자 지난해 6월 뜻이 맞는 5명과 함께 창업했다. 삼성전자에서 21년 동안 모바일 신사업 담당과 블록체인 사업 총괄을 역임한 그는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모바일 서비스와 모바일 기업용 B2B(기업 간 거래) 비즈니스 전문가다.
오대균 서울대 에너지신산업 혁신공유대학사업단 객원교수가 박 대표에게 블록체인과 서비스 등을 어떻게 하면 잘 접목할 수 있을지 물어왔고, 관련 조언을 하며 생각을 같이 하게 됐다. 박 대표는 "서비스는 다 똑같다"며 "소비자와 기업을 탄소배출권을 매개로 연결시킴으로써 각각이 가진 탄소배출권 관련 이슈를 해결하자고 의견이 모아졌다"고 밝혔다.
에너지 효율관리와 신재생에너지 정책 관련 27년 경력을 지닌 오 교수가 최고탄소책임자(CCO)를 맡고, 맥킨지와 삼성전자 임원을 지낸 김주완 최고전략책임자(CSO)를 영입하면서 본격적인 팀이 꾸려졌다.
최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윈클 사옥에서 만난 박 대표는 "일반 소비자를 위한 탄소배출권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마케팅 채널로 활용하는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서비스의 콘텐츠들은 트렌드가 계속 바뀌지만 기후와 빈곤, 농업은 지속적으로 어젠다를 갖고 갈 수 있다"며 "그 과정이 어찌됐건 탄소배출권이 많이 팔리고 관련 사업이 늘어나면 결국 환경은 좋아진다"고 창업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탄소배출권을 알리기 위해선 에너지 전문가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고객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건 또 다르다"며 "그 역할을 최고경영자(CEO)인 제가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저희 타깃은 기후변화에 민감한 10~30대예요. 많은 사람들이 탄소배출권은 기업 간 거래고, 정부에서 하는 거라 일반 소비자가 알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결국 국민들이 참여하고 관심을 가져야 기후에 진정한 도움이 되거든요. 소비자를 끌어당기려면 리워드가 필요하죠. 저희 플랫폼은 쉽게 말해 기업이 ESG에 써야 되는 돈을 소비자에게 돌려주는 시스템이에요."
개인이 탄소 4.5톤(t)을 저감하려면 일회용 플라스틱 컵 이용 없이 텀블러를 346년 간 사용하거나, 비건 식단을 56년 간 유지해야 한다. 박 대표는 "일회성 캠페인이 아닌 탄소 사업 프로젝트가 활성화돼야 한다"며 "기후가 안정되는 데 가장 쉬운 길은 탄소배출권을 사서 우리가 소각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윈클은 기존 t 단위의 탄소배출권 거래 단위를 세분화해 개인도 간편하게 구매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으로, 1000원부터 구매가 가능하다. 예컨대 지난 2월 NHN은 윈클을 통해 임직원 200명과 회사 매칭 구매까지 총 200t의 탄소배출권을 상쇄했다. 성인 1인당 하루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약 35㎏임을 감안할 때 약 6000명의 이산화탄소 하루 배출량을 상쇄한 효과를 거둔 것이다.
창업한지 1년밖에 안된 스타트업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데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경력과 노하우가 결집된 이유도 있지만 박 대표의 시행착오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그는 삼성전자 통신연구소로 입사해 2년반동안 엔지니어로 일했다. 공부가 더 필요하다고 느낀 박 대표는 회사를 그만 두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이미 엔지니어로서의 커리어가 있었기에 공부에만 집중하긴 어려웠다. 닷컴이 막 생성되고 닷컴기업들이 하나둘 늘어나던 시기, 박 대표는 좋은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누군가 사줄 거란 막연한 생각에 미국에서 회사를 덜컥 차렸다. 한 번 마음 먹으면 뒤를 안돌아보는 성격이라 갖고 있던 삼성전자 주식을 모두 팔고 어머니에게도 자금을 빌렸다.
"당시 엔지니어 마인드만 있어서 프로그램 개발 외의 마케팅, 인력관리 등은 전혀 몰랐어요. 게다가 학교생활과 병행해야 했기에 학점도 안 좋아져 대학원 졸업은 간신히 했어요. 결국 회사는 친구에게 넘기고 삼성전자에 재입사했죠."
박 대표는 삼성전자에서도 비즈니스를 하고 싶어 신규 서비스 업무를 주로 해왔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엔지니어보다 서비스 솔루션 관련 일을 더 오래 하게 됐다. 그는 "첫 사업에서 쓴맛을 봤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는지 관심있게 지켜봤다"며 "그게 조직 안에서 새로운 일을 좀 더 빨리 배울 수 있었던 요인"이라고 전했다.
"처음 사업을 할 땐 식솔들을 끌고 가야되는 책임감은 있는데, 투자를 어떻게 받아 그들에게 월급을 줄지 고민하느라 무척 고통스러웠어요. 그 숙제가 항상 머리 속에 차 있었죠. 모든 과정을 지켜본 아내에게 '다시는 CEO로서 사업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썼는데 이렇게 또 대표를 맡게 됐네요."
박 대표는 CEO로서의 스트레스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같지만 함께 하는 든든한 파트너들이 있어 훨씬 상황이 좋다고 했다. 그는 "서로 의지할 수 있고 각자가 겪은 시행착오를 공유하면서 예측·준비할 수 있는 게 엄청난 힘"이라고 전했다.
"비슷한 사람들이 같은 마음으로 탄소배출권을 알리고 관련 사업을 하다보면 이 시장에 대한 사람들의 보는 눈도 달라질 거라고 믿어요. 모든 국민이 그냥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저희 회사 브랜드 가치도 올라갈 테니, 첫 번째 목표는 '계몽'입니다."
박은희기자 ehpark@dt.co.kr
사진=이슬기기자 9904s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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