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언저리’에 있던 두 남자의 만남 [김배중 기자의 볼보이]
“(오)현규 형하고 자주 연락을 주고받았다. 다음 월드컵 때는 우리가 주축이 돼보자는 이야기도 하고 그랬다(웃음).”
이번 시즌을 앞두고 양현준(21·강원)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카타르 월드컵 16강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던 때라 자연스럽게 월드컵 이야기도 나눴다. 지난해 K리그에서 8골 4도움을 기록한 양현준은 K리그 영플레이어상, 대한축구협회 영플레이어상을 휩쓸었고 9월 A매치를 앞두고 처음 A대표팀에 소집되기도 했다. 한국축구를 이끌 ‘미래’로 월드컵을 경험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없지 않았지만 결국 최종 26인에 들지는 못했다. 그랬던 양현준으로부터 오현규(22·셀틱)가 언급됐고 자주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오니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있었다.
월드컵 엔트리 26명 안에 못 든 건 오현규도 마찬가지였지만 양현준보다는 처지가 나았다. 지난시즌 수원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정규리그 36경기에서 13골을 넣은 오현규는 안양과의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수원을 강등 위기에서 구해냈다. 급성장한 모습과 페널티 박스 안에서 보인 파괴력 있는 모습은 파울루 벤투 감독의 눈을 사로잡았다. 카타르 월드컵 출국 직전 치러진 아이슬란드와의 평가전에서 오현규는 골을 넣었고, ‘27번째 태극전사’로 카타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경기 당일 선수단과 그라운드에 있지 못한다는 걸 제외하고 오현규는 카타르에서 선수단과 함께 훈련하는 등 동고동락할 수 있었다.
양현준으로서는 23세 이하(U-23) 및 A대표팀에서 함께 훈련하며 친해진 ‘현규 형’이 카타르에 가있다는 게 신기하고 부러울 따름이었다. ‘정식 국가대표’ 신분이 아니라 때때로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오현규도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이가 필요했다. 여러 이해관계들이 맞아떨어지며 K리그의 미래로 불린 두 영건들은 많은 대화를 주고받았고, ‘다음은 우리가!’라는 결론을 내렸다.
둘의 ‘카타르 결의’가 결실을 맺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강원은 15일 유튜브 방송을 통해 “양현준을 셀틱으로 이적시키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김병지 강원 대표이사가 직접 출연해 이를 밝혔고 계약서에 대표이사 자격으로 사인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함께 출연한 양현준도 “팀이 어려운 시기라서 마음이 무겁기도 하고, 설레고 기쁘기도 하다. 응원에 보답하는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양현준의 새 소속팀 셀틱은 반년 전 오현규가 먼저 건너가 입지를 다져놓은 팀이다. 2022~2023시즌 ‘중반’인 1월에 셀틱에 합류한 오현규는 총 21경기에 출전해 7골을 넣으며 셀틱의 ‘트레블’(3관왕) 달성에도 힘을 보탰다. 양현준으로서는 오현규가 있음으로 새 팀에 적응할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게 됐고 오현규로서도 카타르에 이어 또 허심탄회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아군이 생겼다. 월드컵 당시 결의를 맺은 이력도 있기에 서로를 더 격려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다.
스코티시 프리미어십에서 레인저스(55회) 다음으로 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셀틱(53회)은 ‘우승을 못하면 실패했다’는 소리를 듣는 팀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선수 성장에 소홀한 팀도 아니다. 지난시즌 오현규도 팀이 리그 우승을 향해 순항을 하던 여유로운 상황에서 교체선수로 많은 기회를 얻으며 리그에서 ‘통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셀틱에서의 2번째 시즌을 앞둔 오현규는 16일 치러진 포르티모넨스(포르투갈)와의 프리시즌 경기에서도 골을 넣는 등 새 시즌 활약을 기대케 하고 있다.
유럽에 진출한 아시아선수들이 종종 팀 안팎으로 인종차별을 겪기도 하는데, 셀틱은 아시아 선수에 대한 편견, 선입견 같은 것도 없다. 한때 기성용(34·서울)과 차두리(43)가 셀틱에서 한솥밥을 먹기도 했다. 일본 J리그 요코하마 마리노스 감독을 지낸 엔제 포스테코글루 전 감독(58·현 토트넘 감독)이 지휘봉을 잡던 시절에는 ‘일본클럽’이라고 불릴 만큼 일본선수들이 많았다. 지난시즌 셀틱에는 총 5명의 일본선수가 엔트리를 채웠다. 이중 2021년 셀틱 유니폼을 입은 후루하시 쿄고(28)는 지난시즌 총 27골을 넣고 리그 득점왕과 최우수선수(MVP)를 석권한 선수로 성장했다.
한때 일본에 꽂혔던 셀틱은 오현규 영입을 계기로 한국 선수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이번 여름이적시장에서 셀틱은 양현준으로 한국선수 영입을 끝낼 기세는 아니다. K리그2 부산에서 뛰는 장신(190cm) 미드필더 권혁규(22)도 셀틱의 주요 영입 타깃으로 거론되고 있다. 권혁규가 오현규, 양현준과도 U-23 대표팀에서 호흡을 맞췄던 만큼 셋의 시너지를 기대해볼 만도 하다.
월드컵 언저리에서 다음을 기약했던 두 남자의 결의는 이제 본격적으로 발동됐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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