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격지 뚫고 항공·기차·육로로"…윤 대통령 우크라 왕복 27시간(종합)
'무박 3일' 극비 여정…"지금 아니면 기회 없어 방문 결정"
(서울·바르샤바=뉴스1) 최동현 나연준 기자 = "러시아의 불규칙한 폭격과 드론 공격이 이어지는 루트였다. 기차가 흔들려서 마시고 있던 음료수가 엎어지기도 했다."
첩보물을 방불케하듯 극비리로 진행됐던 윤석열 대통령의 '무박 3일' 우크라이나 방문 여정이 16일(현지시간) 공개됐다.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다녀오기 위해 항공기와 육로, 기차편을 오가며 왕복 27시간의 강행군에 나섰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이날 폴란드 바르샤바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갖고 "지난 14일 저녁에 항공기 편, 육로 편, 기차 편 세 가지를 섞어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까지 가는데) 편도 14시간 걸렸다"며 "돌아오는 데는 13시간이 소요됐다"고 전했다.
김 차장은 "현지에서 체류한 시간은 11시간으로, 체류 시간에 비해서 몇 배로 이동한 시간이 훨씬 길고 험난했는데도 불구하고 여러 요소를 고려해서 어려운 결정을 내렸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방문 루트는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등 주요국 정상들이 우크라이나를 비밀리에 방문할 때와 비슷한 동선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안보상 이유로 구체적인 루트는 공개되지 않았다.
현직 대통령이 우리 파병군이 주둔하지 않은 전시국가를 방문한 것은 최초다. 현재도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이 이뤄지는 우크라이나 중심부로 향하는 일정인 만큼, 윤 대통령의 방문 사실은 그 자체가 극비리에 부쳐지며 철통 같은 보안 속에서 진행됐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서쪽 국경 중 가장 안전한 폴란드 접경지를 선택했다"며 "러시아의 불규칙한 폭격과 드론(무인기) 공격이 이어지는 곳이었고, 노후화된 철도 노선과 설비 때문에 기차가 자주 흔들려서 마시고 있던 음료수가 엎어지기도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김 차장은 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직접 방문을 결단한 배경에 대해 "몸소 눈으로 현장을 확인할 때 구체적인 상황을 평가할 수 있고, 피부로 느끼면서 무엇을 필요로 하고 어떤 협력을 할 수 있는지 정확히 식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도 윤석열 정부의 가치외교, 책임외교의 실천 기조가 아시아를 넘어서 유럽, 그리고 글로벌 현안에 대해서 입체적으로 글로벌 차원에서 긴밀하게 연대한다는 명분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순방 계획을 연장하면서까지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것에 대해 "그저께(14일) 저녁 그 시간이 아니면 우크라이나를 방문할 기회는 전쟁 끝날 때까지 없을 것처럼 보여 결심해야 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전날(15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당도했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110분간 정상회담을 통해 안보·인도·재건 지원을 포괄하는 '우크라이나 평화 연대 이니셔티브' (우크라이나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기로 했다.
우크라이나 이니셔티브는 △평화공식 정상회의 개최 △군수지원 확대 △식량·에너지 안보 협력 강화 △인도적 안전 장비 지원 확대 △재정 지원 확대 △우크라이나 아동 심리 치료 지원 △경제협력기금(EDCF) 및 공적개발원조(ODA) 지원 △교육 프로그램 지원 △윤석열·젤렌스키 장학금 설립 등 9가지다.
김 차장은 '우크라이나 이니셔티브'를 추진한 배경에 대해 "(지난 5월) 일본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으로부터 '대한민국이 향후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차장은 지뢰 제거기 등 인도적 안전 장비 지원을 더 확대할 계획을 밝히면서 "군수물자 지원을 보다 확대하고, 더 나아가서 중장기적으로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방위산업 협력을 계획하고 구상하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차전지와 전기·배터리 자동차 생산, 금속 제련, 통신·디지털 분야 등 대한민국 기업의 '직접 투자'를 요청했다고 한다.
김 차장은 "이번에 우크라이나는 이차전지, 전기 자동차 생산, 금속, 제련 분야까지 우리 기업의 직접 투자를 요청했다"며 "따라서 폴란드와 재건 양해각서(한-폴란드 우크라이나 재건 협력 MOU)를 체결했지만, 장기적으로는 광산, 공급망, 인프라와 관련된 자동차, 차세대 배터리, 통신·디지털 분야까지 우리 기업의 직접 투자를 원하고 있었다"고 했다.
한편 윤 대통령은 한-우크라이나 정상회담에 앞서 키이우 인근 부차시 학살 현장과 민간인 주거지역으로 미사일 공격이 집중됐던 이르핀시를 돌아봤다. 정상회담 및 공식 오찬 후에는 키이우 시내 소피아 성당을 둘러보고 국립아동병원에서 부상 치료 중인 어린이들도 만났다.
대통령실은 이 밖에도 현지 박물관 방문, 양국 정상 부부간 친교 시간 등이 예정됐었지만, 국내 집중호우에 따른 피해 확산을 고려해 일부 일정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당장은 한국 대통령이 서울로 뛰어간다고 해도 집중호우 상황을 크게 바꿀 수 없는 입장이었다"며 "(호우 상황을) 하루에 한 번 이상 계속 모니터 했다"라고 했다.
다른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순방 내내 국내 호우 상황에 대한 고심을 한시도 늦춘 적이 없다"며 "순방과 민생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최선을 다해 순방에 임했고, 국내 상황도 동시에 전력을 다했다"고 말했다.
dongchoi8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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