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쾅' 천둥처럼 덮친 산사태…한순간에 한 마을 망쳤다

대구CBS 김세훈 기자,대구CBS 권소영 기자 2023. 7. 16.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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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호우로 산사태가 난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1리 마을 피해 현장. 김세훈 기자


"이 마을에 살면서 장마니 태풍이니 숱하게 겪었지만 이런 경우는 없었습니다. 가공할 만한 바윗덩어리가 마을 곳곳을 덮쳤습니다"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1리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유재선(67) 씨는 지난 밤의 악몽같은 현실에 몸을 떨었다.  

16일 극한의 호우가 빚은 산사태가 휩쓸고 간 감천면 벌방1리 마을은 하룻밤 새 아수라장이 됐다.

이날 오후 12시 반쯤 진창으로 변한 마을 초입에 들어섰지만 집도, 길도, 도랑도 터를 찾을 수 없었다. 생의 흔적이 모두 지워진 폐허 같았다.

집채 만한 바위와 나무들은 급류를 타고 산 바로 아래 민가부터 마을 입구까지 덮쳐 주민 2명의 흔적을 삼켰다.

새벽 산사태로 주민 2명 실종…애타는 가족들


3년 전 남편과 함께 경기 수원에서 귀농한 윤모(63,여)씨는 밤 사이 집에 머물다 삽시간에 덮친 토사물에 변을 당했다.

윤 씨 남동생은 "워낙 순식간이라 미처 손쓸 틈도 없었다고 한다. 최악의 경우 시신이라도 찾아 장례를 치러주고 싶다"며 "이상한 낌새를 아셨는지 구순 노모가 자꾸 전화를 하는데 받을 수도 없다. 실종 사실을 알렸다가 줄초상 치를까봐 두렵다"고 가슴을 쳤다.

16일 예천군 별방1리 노인회관에 머무르고 있는 수해민들이 울부짖고 있다. 김세훈 기자


이 마을 김모(67) 씨는 비슷한 시각 아들과 함께 집 앞에서 불어난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

아들은 소하천을 600미터 가량 떠내려갔다가 가까스로 구조됐다. 다리를 크게 다쳤지만 병원 치료도 거부한 채 애를 태우며 아버지 수색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깊은 골 사이서 발생한 산사태 순식간에 마을로 돌진

 
벌방1리 마을은 높이 516m 주마산 아래 위치한 마을이다. 13일~15일까지 사흘간 이 마을엔 201㎜의 비가 내렸다.

약해진 지반에 두 개의 깊은 골 사이에서 발생한 산사태는 순식간에 아랫마을로 돌진했다.

16일 호우로 산사태가 난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1리 마을 피해 현장. 김세훈 기자


나무와 바위와 함께 쏟아진 급류는 굽이굽이 치며 마을을 휩쓸고 갔다. 산에서 휩쓸린 바위 덕에 오히려 목숨을 건진 주민들도 있다.

서너 개의 큰 바위가 주택 앞에서 멈추면서 급류의 물길 방향이 틀어졌다는 것.

그 바위들이 급류를 막아주지 않았다면 여러 명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고 주민들은 입을 모았다.

16일 호우로 산사태가 난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1리 마을 피해 현장. 떠밀려온 바위들이 멈춘 곳에서 급류가 방향을 틀어 일부 민가는 화를 면했다. 권소영 기자


계속된 폭우로 접근 자체가 불가했던 수해 현장은 비가 소강 상태에 접어들어서야 수습 작업이 시작됐다.  

토사 제거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매몰 현장의 수색 작업은 중지됐다.

이날 오후 1시쯤 수해 현장엔 겨우 포크레인 두 대가 수해 현장의 나무와 바위를 들어내고 있었다.

소방 관계자는 "쌓인 토사물이 워낙 많아 이걸 치워야 마을 복구와 수색 작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현재 포크레인 장비 추가 반입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16일 호우로 산사태가 난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1리 마을에서 포크레인 장비 1대가 나무와 바위들을 걷어내며 복구 작업을 벌이고 있다. 권소영 기자


한 수해 주민은 "토사가 너무 쌓여서 사람 힘으로는 복구 작업을 할 수 없다"며 "진입로부터 빨리 치워야 윗쪽 마을 복구 작업을 할 수 있는데 장비가 빨리 들어오지 않아 애만 탄다"고 말했다.

현재 소방당국은 실종 여성이 급류에 휩쓸려 갔을 가능성을 열어 두고 인근 하천에서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실종 여성의 가족들은 삼삼오오 모여 수해 현장의 바위와 나무 틈새를 살폈다.

한 가족은 "혹시 매몰된 게 아닐까 싶어 현장을 확인하고 있다"며 "소방당국이 하천뿐 아니라 매몰 현장도 수색하면 좋겠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다"며 답답한 마음을 드러냈다.

스스로 복구 작업 나선 수재민들…"힘들어도 우리가 할 일"


참변을 면한 주민들은 침수된 주택 복구에 나섰다.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은 황망함을 애써 달래며 폐허 속으로 들어갔다.

잠시 비가 멎은 사이 주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복구 작업에 팔을 걷어붙였다.

16일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1리 수해 현장 복구 작업에 나선 주민들. 권소영 기자


진흙탕 속 묻힌 각종 가재들을 꺼내 흐르는 진흙물에 씻는 등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몸을 움직였다.

방마다 들이닥친 토사들을 쓸고 진흙물을 걷어내며 구슬땀을 흘렸다.

복구 작업에 손을 보탠 주민 박태근(76) 씨는 "어제는 군 부대에서 지원이 왔는데 오늘은 다른 곳으로 배정됐는지 안 보인다"며 "힘들어도 어차피 주민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국 곳곳이 물난리인데 우리 동네만 와달라고 할 수 없다"며 "지원을 와주면 좋지만 여기뿐 아니라 영주, 봉화 다 물난리로 힘든 상황이니 놀고 있는 포크레인이 없을 거다.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겠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은 내 탓 네 탓 공방 대신 상처 입은 수해민들을 보듬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박우락(63) 이장은 "바로 어제 난리가 난 마을이다. 내 탓, 네 탓으로 몰아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언론도 비판은 잠시 접어두고 실종자 수색과 복구에 힘을 모아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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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CBS 김세훈 기자 notold@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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