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로 돌아오는 김혜수·염정아, 그녀들이 연기했던 여성 캐릭터 뭐뭐 있지?[TEN초점]
[텐아시아=이하늘 기자]여성 캐릭터가 주연으로 나오는 작품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비교적 최근에 와서야 여성 캐릭터가 남자 주인공의 사건을 도와주는 감초나 팜프파탈과 같은 캐릭터가 아닌 사건의 중심에 서는 인물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를 비롯한 해외의 영화에서도 여성 캐릭터가 주연을 맡는 경우는 손에 꼽힐 정도다. 다수의 유명 작품들만 하더라도 남성 캐릭터가 주연이라는 점을 심심치 않게 살펴볼 수 있다. 이 가운데 감독 류승완이 '피도 눈물도 없이'(2002)에 이어 20년 만에 여성 캐릭터가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 '밀수'를 오는 26일 선보인다. 김혜수와 염정아가 그 주인공.
사실 류승완은 이전까지 남자 캐릭터가 투톱으로 나오는 영화들을 주로 제작했었다. 2021년 개봉한 '모가디슈'에서는 김윤석과 조인성, '베테랑'(2015)에서는 황정민과 유아인, '베를린'(2013)에서는 하정우, 한석규, 류승범이 출연했다. 물론 '베를린'의 경우, 전지현도 비중이 있는 역할로 등장하지만, 하정우의 아내라는 다소 한정적인 역할이다. '부당거래'(2010)의 하정우, 류승범, '짝패'(2006)의 정두홍, 이범수, '주먹이 운다'(2005)의 최민식, 류승범, '아라한 장풍대작전'(2004) 류승범 등 필모그래피를 이 잡듯이 뒤져봐도 여성 주연의 영화는 '피도 눈물도 없이'의 전도연과 이혜영이 유일하다.
최근 들어 여성 캐릭터가 주연인 한국 영화의 존재도 심심치 않게 엿볼 수 있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화 '길복순'(감독 변성현)은 킬러이자 평범한 가정주부 길복순 역에 전도연은 극을 무게감 있게 끌고 나간다. 킬러=남자라는 공식을 가볍게 틀어 생계를 위해 그저 일로서 킬러를 하는 전도연은 강렬하지만, 엄마로서의 균형도 재치 있게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어 넷플릭스에서 공개됐던 영화 '정이'(감독 연상호) 역시 배우 김현주와 고(故) 강수연이 주인공을 맡았다.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해 폐허가 된 지구에서 내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윤정이로 변신한 김현주는 용병으로서의 단단한 내면과 엄마로서의 고민을 중심으로 잡아 호평받기도 했다.
최근 개봉을 앞둔 텐트폴 영화들 '콘크리트 유토피아', '비공식작전', '더 문', '달짝지근해:7510', '보호자' 등의 포스터에서도 5편 모두 남자 주인공이 앞장서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유일하게 '밀수'만이 여성 캐릭터를 투톱 주연으로 한 영화로 영화계에서 여성 캐릭터를 주연으로 한 영화를 찾아보기가 어려운지 한눈에 볼 수 있다. '밀수'는 바닷속에 던진 물건을 건져 올리기만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밀수의 세계를 알게 된 '춘자'(김혜수)가 해녀들의 리더 '진숙'(염정아)에게 솔깃한 제안을 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김혜수와 염정아가 극을 중요하게 이끄는 여성 캐릭터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김혜수와 염정아는 그동안 어떤 매력적이고 강렬한 여성 캐릭터로 등장했었을까?
김혜수
'타짜'(2006) 감독 최동훈 / 정 마담 역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는 대사로 유명한 영화 '타짜'(감독 최동훈)에서 김혜수는 타짜 판을 설계하는 치밀하고도 매력적인 캐릭터 정 마담을 연기했다. 2006년 개봉한 '타짜'는 가구공장에서 일하던 고니(조승우)가 우연히 화투판에 끼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당시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569만명을 기록하는 흥행을 세우기도 했다. 김혜수가 맡은 캐릭터 정 마담 역시 남자 캐릭터에게 끌려다니는 캐릭터가 아니라 돈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는 무자비한 여성 캐릭터로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발자취를 남겼다.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이 장면에서 김혜수의 연기력에 감탄사는 절로 나온다. 고니가 화투판에서 딴 돈에 불을 지르자 정 마담은 절규하면서 옷과 손으로 마구 불을 끄는 모습을 보인다. 배에서 내려 도망치는 고니를 향해 총을 겨누면서 "쏠 수 있어"라고 말하며 부들거리는 손과 눈물이 고인 김혜수의 얼굴은 '타짜'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도둑들'(2012) 감독 최동훈 / 팹시 역
영화 '도둑들'(2012)에서도 역시 김혜수는 금고 털이범 '팹시' 역으로 완벽 변신한다. 과거 마카오 박(김윤석)과 사랑하던 사이이자 지금은 배신당한 그에게 분노를 가지고 홍콩에서의 새로운 계획에 참여하기로 한 팹시. 영화 '도둑들'은 한국에서 일명 뽀빠이(이정재), 예니콜(전지현), 씹던껌(김해숙), 잠파노(김수현), 팹시가 인생의 반전을 꿈꾸며 마카오 박이 제안한 희대의 다이몬드 '태양의 눈물'을 훔치기 위해 홍콩으로 향하며 발생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김혜수는 우아하면서도 거침없는 손놀림과 후배 예니콜보다 노련한 행동으로 '역시 김혜수'라는 수식어가 절로 나오는 연기를 선보였다. 팹시라는 이름처럼 톡 쏘는 반전 매력과 언뜻언뜻 비치는 과거에 대한 향수를 표현해낸 눈빛은 잊지 못할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굿바이 싱글'(2016) 감독 김태곤 / 주연 역
김혜수가 노련하고 세련된 역할만 맡았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굿바이 싱글'에서 김혜수는 과감한 연기를 보여주는데 그것은 바로 찌라시로 인해 고통받는 톱스타 주연 역을 맡아 거짓 임신 계획을 세우는 것. 이 계획은 내려가는 인기와 믿었던 남자친구의 공개적인 배신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다. 이 작품에서 김혜수는 그야말로 코믹 연기의 정수를 보여줬다. 주연은 실제로 임신하지 않았지만 거짓된 발표로 인해서 기자들이 모여들고, 스타일리스트인 평구(마동석)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천하 태평한 모습으로 그동안 먹지 못했던 간식을 먹거나 일상을 즐기는 담대함은 김혜수의 연기로 활력을 찾았다. 명랑한 소녀 같은 캐릭터로 이전까지 김혜수에게 보지 못했던 상큼한 매력을 찾아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극 중에서 임신한 소녀 단지 역의 배우 김현수의 까탈스럽고 차가운 이미지와는 반전된 코믹한 매력의 김혜수는 놀라운 연기 변신을 보여줬다.
염정아
'장화,홍련'(2003) 감독 김지운 / 주은 역
배우 염정아는 묘한 매력으로 관객들을 사로잡는 배우다. 감독 김지운의 영화 '장화,홍련'(2003)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상대를 깔보고 무시하는 새엄마 주은 역을 맡아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고전 소설을 바탕으로 한 '장화홍련'은 두 자매 수미(임수정)과 수연(문근영)이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일본식 목재 가옥에서 새엄마 주은과 아빠 무형(김갑수)과 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뽀얀 피부의 수미는 경계심이 많고 새엄마가 자신의 엄마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생각에 주은을 극도로 멀리하고 증오한다. 이때, 염정아는 오히려 소름이 끼치는 연기로 작중을 사로잡는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찾는 수미 앞에 갑자기 나타나서 놀라게 하거나 수미의 아빠에게 이간질하고 크게 큰 두 눈의 공허한 염정아의 연기는 가히 신선하다. 과연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염정아는 혼돈을 가중하는 인물로 등장해서 열연을 펼쳤다.
'카트'(2014) 감독 부지영 / 선희 역
'카트'(2014)에서 염정아는 헝클어지고 푸석해진 머리에 거친 피부를 가진 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 선희 역으로 감탄을 샀다. 영화는 더 마트라는 대한민국 대표 마트에서 고객 서비스 만족을 위해서 웃는 얼굴로 일했던 직원들이 회사로부터 일방적인 해고 통지받으며 노조에 가입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염정아가 연기한 선희는 정규직 전환을 눈 앞에 둔 인물로 다른 캐릭터 싱글맘 혜미(윤정희), 청소원 순례(김영애), 순박한 아줌마 옥순(황정민)과는 다른 입장에 처해있다. 노조와 정규직 전환 앞에서 섣불리 판단하지 못하고 중심에서 방황하는 선희는 염정아의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 표현으로 입체적인 모습을 띤다. 더욱이 동료, 상사, 손님 사이에서 각각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염정아의 변화무쌍한 모습은 현실을 살아내는 우리들의 모습을 담아내 공감을 얻기도 했다.
'외계+인' 1부(2022) 감독 최동훈 / 흑설 역
시대극에서 염정아는 마치 그 시절 인물다운 찰떡같은 연기를 보여준다. '외계+인' 1부(2022)는 630년 고려에서 얼치기 도사 무륵(류준열)과 천둥 쏘는 처자 이안(김태리)이 신검을 찾기 위해 혈투를 벌이는 이야기다. 그 와중에 신검을 찾기 위한 두 신선 흑설과 청운(조우진), 가면 속의 자장(김의성)도 싸움에 끼어든다. 흑설은 길게 뺀 아이라인과 이마 핏줄이 보일 정도로 치켜올린 머리카락과 입꼬리의 미소가 인상적인 캐릭터다. 빠르고 강렬한 악센트를 사용하면서 극의 활력소를 불어넣는 염정아의 연기는 극의 활력소가 되어준다. 여성 도사라는 차별화된 특징과 함께 다른 도사 조우진과 티키타카 하며 주고받는 케미는 코미디를 배가하는 요소가 되다. 그동안 강하고 센 역할을 주로 맡아오던 염정아는 '외계+인' 1부에서 화려한 도술을 부리며 웃음을 자아내는 캐릭터로 변신했다.
여성 캐릭터가 주연을 맡은 작품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지만, 그런데도 최근 들어 변화된 움직임은 우리에게 또 다른 의미를 전달하는 것 같다. 무조건 여성 캐릭터를 그리려는 태도가 아닌 남녀로 한정 짓는 역할에서 벗어나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것은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하나의 숙제인 듯하다. 오는 26일 개봉하는 '밀수'는 보기 드문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인 영화다. 김혜수는 이름 석 자 그 자체로 아우라를 풍기며 한국 영화계에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라는 압도적인 흔적을 남긴 배우다. 염정아 역시 묘한 매력으로 영화의 활력소가 되어주는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여성 캐릭터를 선보인 배우다. 이 둘의 만남이 이뤄지는 '밀수'에서 여성 캐릭터가 만드는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을까. 믿고 보는 연기력의 두 배우의 조합에 긴장감과 함께 기대된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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