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 방서 밤새워”… 경북 실종자 가족 방치 언제까지 [밀착취재]
예천군 대처 미흡 지적도
“복사 붙여넣기 수준 재난 문자만”
“살아만 계세요···. 얼른 돌아오세요···.”
전날 집중호우로 실종된 가족을 애타게 기다리며 비통에 잠긴 실종자 가족들이 또 다른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족의 실종 소식을 듣고 옷가지도 챙길 겨를 없이 사고 현장으로 달려왔으나 식사는커녕 몸을 뉠 공간도 안내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실종자는 모두 예천 주민으로 확인했다. 3명은 매몰됐고 5명은 물에 휩쓸렸다. 관계 당국은 2413명을 현장에 투입해 구조와 수색 등을 벌이고 있으나 비가 그쳤다 내리기를 반복하는 궂은 날씨에 수색은 더딘 상태다.
폭우로 숨지거나 실종된 예천 주민은 귀농·귀촌 가구가 많다. 따라서 이들 가족은 사망과 실종 소식에 전국 각지에서 모이고 있다. 예천군 은풍면에서 만난 한 가족은 실종 가족의 무사 귀환을 빌며 수색 현장을 떠나지 못했다. 하천을 바라보며 눈물을 훔치는 모습도 보였다. “어머니가 식음을 전폐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에요.” 실종자의 가족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전날 이들은 근처 모텔 방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고 했다.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직접 모텔 예약을 하고 편의점 간편식으로 허기만 달랬다고 했다. “어제 실종된 가족을 찾으려고 예천으로 넘어왔는데 아직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어요. 현장을 이래저래 뛰어다니고 있는데 몸도 마음도 너무 지칩니다.” 그는 등을 돌리며 눈물을 훔쳤다.
실제로 이날 오전 찾은 예천문화체육센터 이재민 대피소는 전기와 수도가 끊기거나 집이 파손된 주민만 머물 뿐 실종자 가족은 없었다. 현장 관계자에게 ‘실종자 가족은 어디에 머무냐’고 묻자 “잘 모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예천군 역시 “실종자 가족과 관련해선 따로 연락처라든지 상황을 확보하지는 않고 있다”고 답했다. 가장 많은 실종자가 발생한 행정복지센터도 “실종자 가족에 대해선 현재까지 파악한 바는 없다”고 말했다.
폭우로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한 예천군의 대처가 미흡했다는 지적은 이뿐만이 아니다. 효자면에서 만난 한 주민은 울분을 터트렸다. “같은 내용의 재난 문자만 수십통 왔는데 산사태 피해 우려 지역을 알려주거나 대피소 안내는 전혀 없었다니까.” 그는 휴대전화로 온 ‘안전 안내 문자’ 목록을 보여줬다. 액정 속을 들여다보니 행정안전부와 산림청, 한국수자원공사, 경북도, 예천군 등으로부터 골고루 안전재난문자가 들어 와있었다.
이틀 동안 28개의 재난 문자가 쌓였는데 주민은 예천군에서 보낸 안전 안내 문자를 확대해 보여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것 봐요. 거의 같은 내용인데 이미 주민 모두가 아는 뻔한 말만 늘어놓고 알맹이가 없어. 재난 문자라고 볼 수 있나요.” 주민이 보여 준 문자에는 ‘산사태 경보 발령. 산림·급경사지 등 위험지역 주민은 대피장소 또는 안전지대로 대피하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이 글은 토시만 조금 바뀐 채 8~9통가량 쌓여있었다.
산사태가 발생한 지 17시간 동안 어떤 조치도 받지 못한 채 고립된 마을도 있었다. 전기와 수도가 끊긴 탓에 마을 주민은 빗물을 받아 쌀을 씻고 촛불에 의지한 채 선풍기 없이 밤을 지새웠다. 한 마을 주민은 “전날 산사태가 나고 행정복지센터에 6~7통의 전화를 걸었는데 연결조차 안 됐다”면서 “주민이 장대비를 맞으며 삽을 들고 수로를 파 급류를 막고 노인과 아이를 대피시켰다”고 말했다.
예천군은 대규모 인명 재해가 발생한 폭우는 처음이라 대처가 미흡했다고 인정했다. 예천군 관계자는 “정신없이 현장이 돌아가다 보니 놓친 부분이 있을 수 있다”면서 “면단위로 실종자 가족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고 연락이 닿지 않는 가족은 경찰과 협의해 정보를 확보한 뒤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예천=배소영 기자 sos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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