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태에 묻히고 급류에 쓸리고···사망·실종자 12년來 최악
대피자 8852명, 경북 2581명 최다
사고위험에 5000여명 못 돌아가
도로붕괴 등 공공시설 피해 215건
축구장 2만여개 규모 논밭 잠겨
안동 하회마을 등 국가유산도 파손
13일부터 나흘째 쏟아진 폭우로 전국이 ‘물폭탄’을 맞았다. 전국 각지에서 산사태와 지하 차도 침수 등이 잇따르면서 사망·실종자만 50명에 육박하고 있다. 아직 7월 중순인데 사망·실종자는 12년 만에 가장 많은 수준을 기록했다. 게다가 축구장 2만 1000여 개에 해당하는 농지가 침수되는 등 농작물 피해도 급증하는 추세다. 산사태 등 우려가 커진 데 따라 대피한 주민 6000여 명은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16일 오전 11시까지 집중호우로 인한 사망자는 33명(경북 17명·충북 11명·충남 4명·세종 1명)으로 잠정 집계됐다. 중대본 발표 이후 오송 지하 차도 차량 15대 침수 사고(오송 지하 차도 침수 사고) 현장에서 시신 2구가 추가 인양되고 경북 지역에서 호우 피해 사망자가 1명 늘면서 총사망자는 36명으로 늘었다. 경북 9명과 부산 1명 등 실종자 10명까지 포함하면 집중호우에 따른 사망·실종자는 46명에 달한다. 현재 수색 작업이 진행 중인 오송 지하 차도 침수 사고 피해자들이 추가로 발견되면 사망자 등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여전히 7월 중순으로 장마 기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호우 사망·실종자 수가 12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는 점이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태풍·호우로 인한 인명 피해는 122명이다. 태풍 호우 사망 실종자는 2013~2018년까지 한 자릿수를 기록했다. 2015년에는 1명도 없었다. 하지만 2019년에는 18명으로, 또 2020년에는 46명으로 급증했다. 2021년에는 단 3명이었으나 지난해에는 30명까지 치솟았다.
전국에 쏟아진 폭우로 산사태 등 사고 위험이 커지면서 13개 시·도 90개 시·군·구의 7866명이 대피했다. 사전 대피 주민은 경북이 2362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충북(2321명)·충남(2027명)·경남(203명) 순이었다. 전국 대피 주민 가운데 6182명은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나흘째 이어진 폭우에 농작물 피해 규모도 급증했다. 주로 피해를 본 작물은 벼(9410㏊)와 콩(4661㏊)으로 농작물 침수 피해 규모만도 1만 5120㏊에 달했다. 이는 축구장(0.714㏊) 2만 1000여 개에 해당하는 크기다. 또 139.2㏊ 규모의 농경지도 유실되거나 매몰됐다. 도로와 옹벽 등 공공시설 피해도 273건 발생했다. 하천 제방 유실이 49건으로 가장 많았고 도로 파손 유실(32건)과 토사 유출(19건), 사면 유실(19건), 침수(13건), 옹벽 파손(5건) 등이 뒤를 이었다. 주택이 침수(33채)되거나 파손(15채)되는 등 사유 시설 피해도 124건에 달했다. 국가유산 피해도 잇따랐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이날 11시 기준 국가지정문화재에서 피해가 발생한 사례는 31건에 달한다. 사적이 16건으로 가장 많았고 천연기념물·국가민속문화재에서 각각 5건이 발생했다. 명승(3건)과 보물·국가등록문화재(각 1건) 등에서도 피해 사례가 나왔다. 전남 영광에서는 고려 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보물인 영광 신천리 삼층석탑 주변 석축 약 10m가 무너졌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자 국가민속문화재인 안동 하회마을에서는 최근 며칠간 이어진 거센 비로 가옥 4채의 담장이 파손돼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경북 명승 문경새재의 경우 배수로 일부가 유실됐고, 봉화 청암정과 석천계곡은 하천이 범람해 주변 가로등·조명·난간 등 시설물 일부가 피해를 본 것으로 조사됐다. 또 학교와 교육 기관 39곳이 운동장 침수, 담장 일부 붕괴, 펜스 파손 등 피해를 봤다.
올해 장마 기간 피해가 큰 데는 ‘극한 호우’라고 할 정도로 많은 비가 쏟아진 데다 빗물이 땅속으로 들어갈 여력이 없어지면서 산사태 등이 발생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일각에서는 기후변화로 극단적 기상 현상이 잦아지면서 경험하지 못한 형태의 재난이 발생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천재지변’이 갈수록 더 극심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만큼 인위적인 사전 대책 또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면 이미 지난해 8월 중부지방을 강타한 이례적인 집중호우로 많은 피해가 발생했고 정부가 이를 고려해 철저한 사전 대비를 약속해 왔다는 점에서 관리 소홀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올해에도 극한 호우가 일찍부터 예고됐으나 참사를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행정안전부 등 정부의 재난 관리에 허점이 있었다는 것이다.
안현덕 기자 always@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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