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정원 확대→필수의료 해결 인식 벗어나야"
의료자원 적절 배분 해법과 함께
10년 뒤 내다보고 데이터 산출
TF 통해서 의사 증원 확정해야
지방에 전문의 유인책 마련 필요
수련의 공공의원 근무 의무화
의료법 11조 활용해 도입하길
“반복되는 응급실 뺑뺑이 사망 사고의 핵심은 필수의료를 담당할 의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겁니다. 수십 년간 의료 자원이 적절하게 배분되지 못한 데서 비롯된 문제들을 풀어야 하는데 의대 증원이라는 답을 정해놓고 직역 단체와 힘겨루기만 하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죠.”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16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보건복지부가 지역 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마저 든다”며 “보여주기식 행정이 아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교수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책임연구원, 한국보건교육건강증진학회 회장 등을 거치며 지역사회 보건 분야에 정통한 학자다. 제1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 수립과 전국 보건소 금연클리닉을 정착시키는 데 핵심 역할을 담당했고 보건교육사 국가자격증 제도 설계 등 국가 건강 정책의 기틀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이 교수는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당장 아이가 아플 때 데려갈 병원이 없다는 현실에 애태우는데 복지부는 문제가 터지면 그제야 협의체를 만들고 과거에 내놓았던 정책을 답습하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탄식했다. 정부는 필수의료와 공공보건의료 분야 의사 인력 부족 등 의료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올 1월부터 의사 단체와 의정협의체를 가동하고 있다. 특히 2006년부터 18년째 3058명으로 묶여 있는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고 예고했지만 반년이 지나도록 몇 명으로 늘릴지에 대해서조차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최근에는 의사 인력 확충 문제를 법정 기구인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중심으로 논의한다는 정부 방침을 두고도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실정이다.
이 교수는 “의정협의체에서 특정 주제를 논의할 수는 있지만 그 결정이 정부 정책을 구속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공급자뿐 아니라 소비자·전문가들이 법적 근거가 있는 정부위원회에 참여해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의료계 주장대로 자칫 의사 인력이 과잉 배출될 경우 불필요한 의료 서비스가 남발될 소지가 크다. 문제를 풀겠다고 선택한 의대 정원 확대가 가까운 미래에 부작용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전문가에 의해 적정 의사를 산출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최근 의대 정원 확대 근거로 제시되는 데이터들은 보사연 출신인 그가 보기에도 부실한 점이 많다.
이 교수는 “의대 정원을 늘려도 교육·수련 기간을 고려하면 10년은 지나야 효과가 나타난다”며 “10년 뒤 상황을 내다보고 수식을 산정해야 하는데 한국개발연구원(KDI), 보사연 데이터는 현재 상황을 기준으로 적정 의사 수를 산출했다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애당초 불완전한 수식을 놓고 ‘의사 수가 부족하다’ ‘아니다’라는 식으로 기 싸움을 벌이는 셈이니 가뜩이나 민감한 의사 단체가 순순히 설득될 리 없다는 얘기다.
그는 “전문가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적정 의사를 정확하게 산출한 다음 보정심을 통한 정책적 논의가 이뤄져도 충분하다”며 “복지부는 의대 정원 확대 논의에서 벗어나 무너져 가는 지방 병원에 전문의를 유인하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법 11조 1항에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보건의료 시책에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면허를 내줄 때 3년 이내의 기간을 정해 특정 지역이나 업무에 종사할 것을 면허의 조건으로 붙일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이를 적용해 3년 차 수련의가 의무적으로 공공의원에서 최소 주 3일 이상 진료를 담당하도록 제도화하자는 게 그가 내놓은 해법이다. 방문진료예약제를 도입해 공공의원들이 환자 가정을 방문하도록 하는 게 단기간 지방 의료 공백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봤다.
그는 “우리나라는 1980년대부터 농어촌 의료 취약 지역에 군 복무를 대신하는 공중보건의사를 배치하고 있는데 의료 질과 서비스 지속성에 문제가 있다”며 “이러한 불평등을 해소하려면 민간 의료 기관이 부족한 지역에 설치된 보건지소를 공공의원으로 전환하고 농어촌특별기금을 활용해 보건지소의 의료 시설과 장비를 보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국립대병원 또는 지방의료원이 공공의원의 위탁 운영을 맡고 중앙정부가 전액 비용을 지원해야 한다. 실제 호주는 유사한 방식으로 공공의원을 민간 의사에게 개방하고 있다. 그는 “농어촌 지역에 거주한다는 이유만으로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해서야 되겠느냐”며 “전 국민이 헌법에 보장된 건강권을 보장받기 위해서라도 복지부가 하루빨리 문제 해결 의지와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경진 기자 realglasses@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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