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월요일] 말라버린 사랑

허연 기자(praha@mk.co.kr) 2023. 7. 16.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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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지금 높새바람같이는 잘 걷지 못하는

몸이 하나 있고

높새바람같이는 살아지지 않는

마음이 하나 있고

문질러도 피 흐르지 않는 생이 하나 있네

이것은 재가 되어가는 파국의 용사들

여전히 전장에 버려진 짐승 같은 진심들

당신은 끝내 치유되지 않고

내 안에서 꼿꼿이 죽어가지만,

나는 다시 넝마를 두르고 앉아 생각하네

당신과 함께라면 내가, 자꾸 내가 좋아지던

시절이 있었네

-이영광 作 '높새바람같이는' 중

건조한 바람이 사랑까지 말렸나 보다. 하지만 미라처럼 마른 사랑은 변질되지 않고 영생을 이어간다.

피가 도는 사랑보다 미라가 된 사랑이 더 오래가는 거 아닐까. 어차피 사랑은 결국 다 추억이니까. 당신과 함께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좋아지던 그 시절을 기억하는 일. 그것이 진정한 사랑일지도 모른다. 기름기와 피가 빠져나가고 기억으로만 남은 사랑. 그래서 영원한 사랑.

[허연 문화선임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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