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오리엔탈랜드
SK하이닉스·마이크론 추월
투자·일자리 효자 넘어
日증시 부활의 상징으로
2012년 9000엔을 밑돌던 일본 증시는 채 3년이 안 된 2015년 두 배가 넘는 2만엔을 찍었다. 일본은행(BOJ)의 돈 풀기와 상장지수펀드(ETF) 매입이라는 초강수 덕분이었다.
이쯤 되면 온 나라가 투자 열풍에 휩싸일 만도 한데, 당시 기자가 만난 상당수 일본 은행원, 회사원들은 차분하다 못해 냉담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러면서 공통적으로 덧붙인 말. "한때 3만8000엔도 넘었다. 그때 주식을 샀다 손해 본 이들이 수두룩하다."
일본 증시는 잃어버린 30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였다. 미국 경제를 따라잡을 기세로 승승장구하던 1989년 12월 닛케이지수는 3만8915엔으로 최고점을 찍은 이후 줄곧 내리막을 걸었다. 워낙 순식간에 하락한 탓에 단 한 번도 최고점 근처에 다가가지 못했다. 저출산·고령화, 디플레이션으로 국내총생산(GDP)이 중국에 따라잡혀 아시아 최강국 자리를 내준 이후에는 잊힌 숫자였다.
상황이 급반전된 것은 올해 2분기. 외국인투자자들이 660억달러(약 84조원)에 달하는 일본 주식을 폭풍 매수하면서부터다. 하루가 멀다 하고 '33년 만에 고점'을 찍더니, 급기야 버블 당시인 3만엔 후반까지 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현 지수에서 20% 정도 오르면 도달하니 불가능이라고 여길 숫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최고점이 시야에 들어오자 도쿄 증권거래소를 중심으로 "천재일우의 기회를 살리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마침 글로벌 큰손들이 중국을 떠나 자산을 재배치하고 있는 중이다. 상장사마다 PBR(주가순자산비율) 재평가와 주주 환원 방안을 찾느라 분주하다. 젊은 층의 주식 투자도 늘고 있다고 한다.
일본 증시는 한국 증시와 비슷한 점이 많다.
두 나라의 산업구조가 비슷해 시총 1, 2위에는 대표 제조업체인 도요타와 소니가 자리 잡고 있다. 키엔스, 도쿄일렉트닉, 신에쓰화학 같은 부품 소재 기업들도 상위권에 포진해 있다. 삼성전자와 LG에너지솔루션 같은 반도체 2차전지 대표 기업이 시총 상위를 굳건히 지키는 한국 증시처럼 말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서비스 업종의 두각이다. 내수 규모와 금융·외환시장 등 근본적인 격차가 있는 은행·통신 업종은 논외로 치더라도 서비스 업종에서 글로벌 수준에 오른 상장사들이 있다.
상징적인 곳이 바로 도쿄디즈니랜드 운영사 오리엔탈랜드다. 40년 전 도쿄만에 들어선 디즈니랜드에는 그동안 관광객 8억명이 다녀갔다. 이 오리엔탈랜드의 시총이 최근 10조엔(약 92조원)을 넘겨 도쿄 증시 8위에 올랐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 2, 3위인 SK하이닉스(86조원)와 마이크론(89조원)의 시가총액을 추월한 것이다.
오리엔탈랜드는 미국 본사에 로열티를 지급하고도 영업이익률이 20%를 넘는다. 디즈니 본사가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것과 딴판이다. 일자리 창출과 외국인 관광객 유치의 효자로만 인식돼 왔던 도쿄디즈니랜드가 증시 재평가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한국 증시는 시총 상위에 반도체, 2차전지, 자동차 등 제조기업들로 가득 차 있다. 미래 산업에 오랜 기간 선제 투자를 단행해 새 스타 기업이 부상한 것은 높이 평가할 일이지만, 지나친 제조업 편중은 증시뿐 아니라 경제 전반에 썩 유쾌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우리가 수십 년째 논의만 하던 서비스 업종이 반도체를 앞질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말이다.
증시는 다양한 기업의 실적이 차곡차곡 쌓여 커져 가는 곳이다. 부활하는 도쿄 증시는 한국 증시와 산업이 다양성 확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황형규 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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