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시평] 양양과 제주의 성공 공식

2023. 7. 16.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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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과 인구 느는 양양·제주
대기업 투자·국책 사업 무관
양양은 서핑, 제주는 보헤미안
라이프스타일이 로컬 문화로

지역 소멸이라는 무서운 단어를 쓸 만큼 지역 현실이 전반적으로 암담하지만, 하나 다행인 것은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선 지역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최근 언론이 주목하는 지역발전 성공 사례는 양양과 제주다. 양양은 관광객이, 제주는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지역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양양과 제주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흥미롭게도 대기업 투자, 지역 혁신 시스템, 대규모 SOC 사업 등 전통적인 지역발전 방식이 양양과 제주에서는 작동하지 않았다. 양양 접근성을 신장한 서울양양고속도로는 이미 양양이 관광지로 활성화된 후에 완성된 사업이다. 제주에서도 제주 인구 증가를 설명할 만한 대규모 대기업 투자나 국책사업이 떠오르지 않는다.

양양과 제주에 성공 방정식이 있다면 그것은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에서 찾아야 한다. 청년이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드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 두 곳의 공통된 성공 비결이다. 청년을 양양으로 유인하는 소프트웨어는 서핑이다. 국내 서핑 인구의 45%에 달하는 50만명의 서퍼가 매년 양양을 찾고, 국내 서프숍의 60%에 해당하는 70개의 서프숍이 양양에서 영업한다. 양양군은 서핑산업의 경제 유발 효과를 300억원으로 추산한다.

서핑은 다른 해양스포츠와 달리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라이프스타일 산업이다. 서핑이 지역 문화로 자리 잡으면 그 지역의 생활 문화가 바뀐다. 실제로 양양의 서퍼는 방문객에게 숙박, 장비, 강습을 제공하는 서프숍을 운영하고 바, 클럽, 햄버거, 피자, 패션, 장비 등 서핑 커뮤니티가 선호하는 업종으로 구성된 상권을 구축한다. 일부는 제조업으로 등록해 서프보드 제작에 도전한다. 양양의 서핑 상권과 브랜드 생태계는 현재 죽도해변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제주로 '이민'을 떠나는 사람도 제주가 제공하는 라이프스타일에 이끌린다. 양양과 달리 제주 라이프스타일을 한 단어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제주 이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0년대 초반부터 많이 쓰이는 단어가 보헤미안이다. 예술가 성향의 자유로운 영혼이 각박하고 경쟁적인 대도시를 떠나 제주에서 자연과 함께하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연예인 중 보헤미안 이미지가 강한 가수 이효리가 2013년 제주로 이주한 것도 제주 이주민의 보헤미안 평판에 기여했다.

제주 이주민은 디지털 노마드, 프리랜서로 일하거나 자신이 직접 만든 콘텐츠를 판매하는 공간을 창업한다. 어떤 업종을 선택하든 대도시에서와 달리 자신을 표현하고 개성을 살리는 방식으로 일을 한다. 갤러리, 미술관, 친환경 브랜드, 독립서점, 커피, 베이커리 등 제주 보헤미안이 개척한 콘텐츠는 주민과 여행자에게 로컬 문화를 제공한다. 이런 콘텐츠가 가장 많이 집적된 곳이 원도심 골목상권 탑동이다. 이곳 탑동에서 제주 로컬 콘텐츠가 아라리오뮤지엄, 제로포인트트레일, 맥파이, 끄티탑동, 포터블 등의 로컬 브랜드를 배출하는 생태계로 진화한다.

양양과 제주 성공 사례는 이처럼 서핑, 보헤미안 등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서 그 기원을 찾아야 한다. 양양과 제주가 개인의 라이프스타일로 시작된 경제활동을 로컬 문화로 만들고, 이를 골목상권 중심의 로컬 브랜드 생태계로 육성한 것이 두 도시 역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 것이다.

양양과 제주에서 교훈을 얻으려는 다른 소도시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청년과 이주민을 이들이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는 장소로 유치하고, 그곳을 새로운 상권과 산업을 개척하는 로컬 콘텐츠 타운으로 육성하는 것이 문화를 창출하는 기술사회의 지역발전 공식이다.

[모종린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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