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 비극’ 1년 달라진 게 없다···무너진 재난 안전, 왜?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집중호우로 충청·경북·전북 등 중부 지방을 중심으로 산사태와 지하차도 침수 등으로 인한 인명피해가 커지고 있다. 이번 호우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가 공식집계한 사망·실종자는 16일 오후 6시까지 모두 46명에 이른다.
극한호우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짧은 시간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지고 있지만 이같은 비는 사전예고됐고, 특히 지난해 태풍 힌남노로 인한 큰 피해 발생 후 정부가 철저한 대비를 약속했음에도 이번 비 피해를 제대로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정부·지자체의 재난 관리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컨트롤타워와 실행기관 간의 괴리 등 관련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에 침수사고가 크게 발생한 충북 오송의 궁평2지하차도의 경우 사고 수시간 전에 이미 인근 하천에 홍수경보가 발령됐다. 붕괴되면서 범람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하천 제방의 경우 ‘공사 중’인 상태였다. 행정안전부 중심으로 꾸려진 중대본은 이번 집중호우를 앞두고 수차례 관계기관에 “산사태·급경사지 등 붕괴우려지역에 대한 예찰 강화와 해안가 저지대 침수, 하천범람 등에 대비하여 사전통제와 주민대피를 적극 실시할 것”을 지시했다. 이 같은 지시가 제대로만 이행됐어도 이번 사고는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이같은 지시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건 컨트롤타워와 실행기관 사이의 괴리 때문이다. 재난상황의 컨트럴타워인 중대본은 ‘산사태 우려 지역에 대한 예찰을 강화하라’, ‘침수 피해가 우려될 경우 차량 통행을 제한하라’는 방침을 정하고 실행 주체인 해당 자치단체에 이를 지시한다.
그런데 ‘산사태 우려 지역’에 대한 구체적 기준이나 어떤 상황일 경우 ‘침수 피해가 우려된다’고 판단해야 하는 지에 대해선 따로 기준을 주지 않는다. 해당 지자체가 판단할 몫이라는 것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지역별로 지형과 위험요소가 다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기준을 설정하기 어렵다”며 각 자치단체가 상황에 맞게 위험 기준을 설정하고 위험 정도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작 이를 스스로 판단해야 할 자치단체의 경우 전문성이나 역량이 부족한 곳이 많다. 재난 업무가 일상적인 업무가 아닌 데다 담당 인력도 턱 없이 부족하다. 가령 지난 15일 산사태로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경북 예천 효자면 백석리와 감천면 벌방리는 예천군이 지정·관리하던 산사태위험지역 66곳에 해당되지 않았다. 궁평2지하차도의 경우 해당 지자체는 지하차도 자체의 침수수위만 살폈을 뿐 인근 하천의 범람 위험은 계산에 넣지 못했다.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관리학과 교수는 “재난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될 경우 가장 중요한 건 재난 협력기관들끼리 정보를 공유하고,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이라며 “이번 수해는 정황상 재난 대응 체계가 무너져 발생한 인재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나 지자체가 시설이나 장비 확충 위주의 대책에만 기댄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폭우로 강남역 일대가 물바다가 된 이후 당국은 순간 배수용량을 늘리기 위해 ‘대심도 빗물터널’ 공사를 추진 중이다. 그러나 완공은 일러야 오는 2027년이다. 당장 지난 13일 서울 강남역 도로에선 한때 물이 발목까지 차오르는 등 지난해와 비슷한 상황이 재현됐다. 해당 자치단체는 우기를 앞두고 최근 빗물받이 청소 횟수를 늘렸으나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주변 쓰레기들이 폭우에 떠내려가 빗물받이를 순식간에 막았던 것이다.
문현철 한국재난관리학회 부회장은 “새로운 제도와 시설 마련도 중요하지만 이미 존재하는 제도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게 먼저”라고 했다. 그는 이어 “자치단체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 부여한 응급조치, 통행금지, 교통통제, 대피명령 등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며 “또다시 시설·장비탓으로 또 넘어가려 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강정의 기자 justic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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