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에레나가 된 순희

2023. 7. 16.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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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금 서울에 얼마나 만족하고 계십니까?" 요즘, 내가 내게 묻고 있다. 1953년 7월, 비극의 6·25가 휴전하고 당장 입에 풀칠도 어려운 시골의 청춘들이 고픈 배를 움켜쥐고 희망의 서울로 무작정 상경했다.

호롱불 등잔 밑에 실패 감던 순희는 공장이나 가사도우미, 혹은 화려한 불빛 아래 술 따르고 춤을 추는 카바레의 에레나가 되기도 했다. 휴전 1년 뒤 1954년. 가수 안다성은 도미도레코드사에서 손로원이 작사하고 한복남이 작곡한 '에레나가 된 순희'를 노래했다. 아코디언 반주가 탱고 특유의 애수를 불러주는 그 시대 우리의 자화상이고 삶의 풍경이었다.

'그날 밤 극장 앞에서 그 역전 카바레에서/ 보았다는 그 소문이 들리는 순희/ 석유 불 등잔 밑에 밤을 새우면서/ 실패 감던 순희가 다홍치마 순희가/ 이름조차 에레나로 달라진 순희 순희/ 오늘 밤도 파티에서 춤을 추더라…. 그 빛깔 드레스에다 그 보석 귀걸이에다/ 목이 메어 항구에서 운다는 순희 순희…. 오늘 밤도 파티에서 웃고 있더라.' 에레나와 카투사. 1940~1960년대 우리 사회의 슬픈 이름이다.

순희가 상경한 그때 그 서울도 70년이 흘렀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아직도 서울에 목매고 이정표도 종착역도 서울이다. 순희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폐교되고 마을이 통째로 노인정이다. 어쩌다 마을에 아기가 태어나도 출생신고를 받아본 경험이 없는 면사무소 직원이 절차를 몰라 당황하고 축하 현수막이 붙는 현실이다. 전국에 폐가로 방치된 빈집이 6만6000여 호나 되고 시냇가에서 멱 감고 물장구치던 어린 시절은 '라때'의 동화다.

기자 시절 미국 취재를 갔다. 텍사스의 휴스턴은 정말 뜨거웠다. "왜, 이렇게 뜨거운 곳에 사느냐"고 시민에게 물었다. 대답은 "휴스턴이 좋다. 다른 곳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뉴욕, 워싱턴, 시카고, LA, 하와이, 필라델피아, 댈러스, 볼티모어, 라스베이거스, 시애틀 어디에서도 같은 대답이었다. 샌프란시스코는 그때나 지금이나 시내에 전차(케이블카)가 다닌다. 언덕에 꽃을 심고 가꾼 거리가 까닭 모를 애수를 주는 관광도시다. 지역마다 특색을 살려 발전시키고 주민들이 자부심을 갖고 사는 곳이 미국이고 '아메리칸 드림'이다. 지역 설계의 롤모델이 아닌지.

지난 6월 한 기업인이 일찍 떠나온 고향 마을에 초등학교를 세우고 고향을 지켜준 마을 주민과 동창들에게 1400억원의 감사금을 전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모처럼 백합꽃 향기 나는 6월의 이야기였다. 지금 서울은 정원 초과다. 전국 5000만 인구에 서울에만 1000만명이 몰려 산다. 통계청에 따르면 귀농, 귀촌, 귀어 가구는 총 33만2131가구로, 전년보다 12.2%나 줄었다. 2013년 이후 가장 큰 감소다. 뉴스에서 보는 서울의 표정은 때로 사납다. 이따금 평온한 모습의 귀농 가족, 밝은 표정의 귀향 어부,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을 보면 힐링이 된다. 희망의 서울에 신기루 현상은 없는지. 목이 메어 항구에서 운다는 '에레나가 된 순희'가 나는 아닌지. 장맛비 내리는 지난 주말에도 내게 물었다.

[신대남 한국대중문화예술평론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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