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직접 방문 등 선명해진 ‘자유 연대’…러시아 리스크 과제

유정인 기자 2023. 7. 16.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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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지난 15일(현지시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수도 키이우의 대통령 관저인 마린스키궁에서 열린 정상회담을 마치고 블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공동 언론발표를 하기 전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제공

윤석열 대통령은 6박8일의 리투아니아·폴란드·우크라이나 순방 기간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발 맞추고, 재건 사업 거점이 될 폴란드와 손을 맞잡은 데 이어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직접 찾았다. 민주주의 국가 간 연대에 힘을 실으면서 정상 차원에서 재건 논의에 속도를 붙이려는 뜻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직접적인 우크라이나 지원 행보와 한·일 정상회담 등으로 자유와 연대를 강조하는 이른바 ‘가치 외교’ 기조는 한층 선명해졌다. 한·미·일 대 북·중·러 등 신냉전 구도 강화 국면에서 한국 정부가 관리해야 할 러시아 리스크는 가중될 수 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16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우크라이나 방문 이유를 두고 “몸소 눈으로 현장을 확인할 때 구체적으로 상황을 평가해 무엇이 필요하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협력할 지 명확히 식별이 가능하다”며 “무엇보다 윤석열 정부의 가치외교 실천 기조가 아시아를 넘어 글로벌 현안에 긴밀히 연대한다는 점도 명분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전날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전격 방문은 순방 기간 내내 가치공유국 간의 연대 강화를 강조하는 와중에 이뤄졌다. 2년 연속 참석한 나토 정상회의에선 “이럴 때일수록 가치를 공유하는 우리들이 더욱 굳게 연대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선 “‘생즉사 사즉생’의 정신으로 강력히 연대해 함께 싸워나간다면 분명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의 윤석열 정부가 글로벌 중추국가를 내세우는 만큼 ‘자유 진영’ 국가로서의 존재감을 부각하는 행보로 풀이된다. 한국 정상이 국군 파병지가 아닌 전장에 연대 차원에서 방문한 것은 처음이라고 대통령실은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러시아가 준 피해 규모를 상상할 수 없다”며 “안전과 변화를 이루기 위해 국제사회의 지원 규모도 상상할 수 없는 정도여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재건 복구 분야에서도 큰 도움이 필요하다”며 우크라이나 회복 센터 건설 참여를 제안했다.

두 정상은 한국의 안보·인도·재건 지원을 포괄하는 ‘우크라이나 평화연대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기로 했다. 각 분야별로 3가지씩 총 9개 사항이 담겼다. 안보 분야에선 군수 물자 지원을 확대하고 양국 간 방위산업협력 체계를 구상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은 공동언론발표에서 “지난해 방탄복, 헬멧과 같은 군수 물자를 지원한 데 이어 올해 더 큰 규모로 군수 물자를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살상무기 지원에는 선을 그었다. 인도 분야에는 지뢰탐지기, 지뢰제거기 등 안전장비 지원 확대 등이 포함됐다.

이와 함께 윤 대통령은 이번 순방의 핵심 의제 중 하나를 우크라이나 재건 협력 분야에 맞췄다. 한·우크라이나 정상회담에선 1억달러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활용한 인프라 건설 등 협력 사업, 파괴된 교육기간 재건 등을 언급하며 협력 방안과 범위를 좀 더 구체화했다. 향후 재건 사업의 물류 거점이 될 것으로 보이는 폴란드와는 “우크라이나 재건 최적의 파트너”라며 손을 맞잡았다.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15일(현지시간) 키이우 인근 미사일 공격이 집중된 이르핀 민간인 주거지역을 둘러보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여기에는 인도적 차원에서 우크라이나 재건에 힘을 보태 ‘자유 연대’에 기여하겠다는 외교적 지향과 함께 해외 인프라 수주 측면에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윤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과 만나 거듭 ‘한강의 기적’을 언급하며 “드니프로 강의 기적이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고 한 것도 전후 한국의 성공 사례를 재건 협력의 지렛대로 삼으려는 뜻이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실은 특히 교통과 인프라 중심으로 재건 사업에 참여하면서 향후 우크라이나 시장 선점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지난 13일 브리핑에서 키이우 스마트시티 마스터플랜 수립 계획 등을 들어 “최대 1000억달러 수준으로 추정되는 주요 도시 재건 계획 중 첨단 도시 시스템의 밑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향후 첨단교통체계, 스마트물관리 등 다양한 사업을 선점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순방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안보 질서에 보조를 맞추는 외교 기조는 재확인됐다. 미국 주도의 군사동맹인 나토와는 ‘한·나토 개별 맞춤형 파트너십 프로그램(ITPP)’을 체결하며 협력 수위를 격상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재차 강조한 데도 미국 등과의 ‘가치 연대’에 힘을 실으려는 뜻이 담겼다. 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이뤄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선 한·일, 한·미·일 협력 강화를 재확인했다. 국내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고 국민 반대 여론이 높은 일본의 일본 후쿠시마 제1 원전 방류 계획은 사실상 인정했다. 이번 우크라이나 방문으로 한·미·일 정상은 모두 우크라이나를 방문했다.

러시아 리스크 확대는 한국 정부가 관리해야 할 과제다. 러시아의 맞대응 수위에 따라 대외 정책 시험대가 계속될 수 있다. 살상용 무기 지원이라는 한국 정부가 설정한 ‘레드라인’은 넘지 않았다. 다만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직접 방문으로 한·러 관계 긴장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이 같은 기조가 북·중·러 밀착으로 이어질 경우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에도 복합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한·우크라이나 정상회담에서 이번 전쟁이 “러시아의 불법 침략”임을 명확히 하고 ‘생즉사 사즉생’ 정신으로 싸워야 한다고 했다. 우크라이나를 찾아 한층 강한 어조로 러시아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낸 것이다.

러시아는 지난 3월 기시다 총리의 우크라이나 방문 직전 동해상에 전략폭격기를 띄우고, 일·우크라이나 회담 당일에는 일본과 영유권 분쟁지인 쿠릴열도에 미사일을 배치하는 등 무력을 동원한 반발에 나선 바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방문 전 기자들과 만나 “한·러 통상 무역 관계는 관리를 해 오고 있다”면서 “우크라이나를 방문한다고 러시아를 콕 집어서 비판하거나 특정 관계를 언급한다기보다는 우크라이나가 현재 상황을 어떻게 이겨내고, 향후 한국과 어떻게 협력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한·우크라이나 정상회담 전 먼저 키이우 인근 부차의 민간인 학살 현장과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이 집중됐던 민간인 거주지역 이르핀을 돌아봤다. 이어 키이우로 이동해 전사자 추모의 벽에 헌화한 뒤 정상회담과 대통령 부부의 오찬 등의 일정을 소화했다. 젤렌스키 대통령 부부의 안내로 11세기 지어진 소피아 성당을 둘러본 이후 국립아동병원에 들러 치료 중인 아동과 가족을 위로하기도 했다.

바르샤바 |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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