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지하공간 참변에 불안감 확산…당국 `부실대응` 지적 커져
차수·제방시설 미비…매년 사망사고 반복
지하차도부터 지하주차장, 반지하주택까지 폭우로 인한 지하공간 사망 사고가 여름철마다 계절병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이에 지하공간, 저지대에 대한 공포감이 확산하고 있다. 소를 잃고서도 외양간을 제대로 고치지 않는 당국의 부실대응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혹시 나도"…확산하는 지하 공포증(?)= 지난 15일 오전 8시 40분께 미호강의 제방이 무너지면서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 물이 들어차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하차도를 지나던 챠량 15대가 물에 잠겨 빠져 나오지 못한 안타까운 사고 소식에 시민들은 "결국 자기 안전은 자기가 지키란 말이냐", "공공 도로에서의 안전조치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라며 울분을 토해 내고 있다.
앞서 2020년 7월에는 부산시 동구 초량 제1지하차도가 폭우로 침수되면서 시민 3명이 목숨을 잃었다. 3년 만에 더 많은 희생자를 낸 사고가 다시 발생한 것이다.
서울 상암동에서 서부간선지하도로를 이용해 출퇴근하는 직장인 김 모씨(35)는 "부산 사고 이후 지하도로를 지날 때마다 무서웠다"면서 "오늘 아침에도 서부간선 지하도로를 지나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비상구 위치를 보면서 운전을 했다"고 말했다.
서울 월계동에서 강남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박 모씨(42)는 "동부간선도로는 그나마 미리 교통을 주의보를 발령하고 통제를 하지만 비가 조금만 와도 물에 갖히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다"면서 "동부간선도로를 지하화한다는 데, 다닐 수 있을 지 모르겠다"고 불안감을 나타냈다.
지하공간 침수로 인한 사망사고는 매년 반복되고 있다.
작년 9월 태풍 '힌남노' 당시 경북 포항 인덕동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 침수로 주민 7명이 숨졌다. 차량을 이동 조치하라는 관리사무실 안내방송에 차를 옮기러 나갔다가 순식간에 들어찬 물에 변을 당했다.
지난 12일 폭우로 지하주차장 일부가 물에 잠긴 강남구 개포자이프레지던스 아파트 주민들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입주민은 "이제 입주한 지 3달 밖에 안됐는데, 비가 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면서 "이러다 지하주차장이 완전 침수되지 것 아닌지 불안불안하다"고 말했다.
◇되풀이되는 지하침수…"당국 말 믿어야 하나요"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고 있지만 당국의 대책은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호강에는 지난 15일 오전 4시 10분에 홍수경보가 내려졌다. 쏟아지는 비로 하천의 수위가 급격히 올라 오전 6시 30분에는 이미 경보 수준보다 높은 '심각 수위'까지 도달했다. 당시 금강홍수통제소는 관할 구청에 인근 도로의 교통통제 등이 필요하다고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행정당국의 교통통제는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미호천교 인근의 둑이 유실되면서 하천의 물이 삽시간에 지하차도로 쏟아져 들어왔다. 길이 430m의 지하차도 터널은 2∼3분 만에 6만t의 물로 가득 찼다. 15대의 차량이 이곳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홍수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관할 행정관청의 위험도로에 대한 차량 통제가 이뤄지지 않았고, 사전에 제방관리도 허술했다는 주민들의 주장도 이어지고 있다.
아파트 지하주차장 침수사고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포항 아파트 지하주차장 침수사고 이후 공동주택에는 지하주차장 물막이판 설치가 의무화됐다. 하지만 신축 아파트에 제한됐고, 구축 아파트 물막이판 설치비 지원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실제 서울시는 '침수 위험' 아파트에 차수시설 설치비를 지원하기로 했지만, 올 4월에야 자치구에 관련 예산을 교부했다. 현재까지 물막이판 설치를 마친 단지는 지원대상 82곳 중 29곳에 그쳤다. 65%에 달하는 나머지 53곳은 여전히 침수 위험에 노출된 상태다.
물막이판 설치를 거부해도 과태료가 500만원에 불과한 것도 문제로 꼽힌다. 갑자기 물이 불어나면 바로 대응하기 어려운 '탈착식' 물막이판의 설치비가 500만원, 기계식은 3000만원이 넘는 만큼 계속 설치를 미루는 아파트가 생길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지난해 침수로 일가족 3명이 갇혀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한 '반지하 주택'도 여전히 방치되고 있다. 서울시는 사고 이후 반지하 건축을 전면 금지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작년과 올해에만 81동의 반지하를 허가했다. 이 가운데 13동은 주거가 가능한 반지하다.
전체 반지하 주택 23만8000호 가운데 침수방지시설 설치를 완료한 곳도 6310곳에 그쳤다. 침수 위험이 없는 21만호를 제외해도 설치 비율은 30%대에 불과하다.
반지하 거주민의 지상층 이주 정책 혜택을 받은 곳도 2250호에 그쳤다. 침수에 취약한 반지하 주택 총 2만8000호 중 약 8%, 전체 반지하 주택을 고려하면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를 통해 반지하 주택을 매입하는 방식 역시 호응을 얻지 못했다. SH공사는 올해 3450호의 반지하 주택을 매입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이달 초 기준 매입한 주택은 98호 뿐이다.
매년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지하공간에 대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시민들의 불안감만 커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남석기자 kn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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