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 취소에 시민들 발 ‘동동’…“집에 갈길 걱정, 고향 가족은 더 걱정”
“지금 방송에서 (열차가) 어디를 안 간다카는데…(대구는) 가는 게 맞나 모르겠네.”
16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서울역. 전광판을 하염없이 올려다보던 권모순씨(70)가 곁을 지나던 승객에게 ‘10시57분 동대구행’ 열차표를 보여주며 말을 걸었다. 그는 “값이 싼 열차를 타기 위해 새마을호를 끊었는데 어제 저녁쯤 비 때문에 열차가 취소됐다는 얘기를 듣고 딸이 KTX 표를 새로 사줬다”면서 “오늘도 비가 많이 온다고 하는데 출발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이달 초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 사는 지인을 만나러 왔다가 보름 만에 집에 돌아간다는 권씨는 고향에 있는 가족들 걱정에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권씨는 “친정 오빠가 사는 (경북) 문경 쪽에도 비가 많이 온다고 들었다”면서 “오빠 집에 전화를 해봤더니 농사 짓는데 비 때문에 ‘죽겠다’고 하더라”고 했다.
전국적인 집중호우의 영향으로 열차 운행이 중단되거나 지연되면서 주말 사이 지역을 오가려던 시민들이 대혼란을 겪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전날 오전 침수 및 산사태 위험으로 인해 무궁화호와 ITX-새마을호 운행을 전면 중단한다고 밝혔다. KTX도 중앙선과 중앙내륙선, 수원·서대전을 거치는 노선 등 일부가 운행을 멈췄다.
이날 서울역 승강장에는 “일부 열차가 운행 중지 및 지연되고 있으니 전광판에 표시된 열차 운행 정보를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 음성이 여러 차례 흘러나왔다. 타지에 있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상황을 알리는 통화 소리가 역사 안을 가득 메웠다.
업무차 서울을 오가는 시민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내일 첫 출근이 예정돼 있다는 이준하씨(25)는 정장을 담긴 부직포 가방을 들고 늦어지는 열차를 기다렸다. 이씨는 “어제 저녁 출발하려 했는데 일반 열차가 중단되는 바람에 오늘 오전으로 표를 바꿨다”면서 “출근 준비할 시간이 하루 밀렸지만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어묵 가게를 운영하는 손장우씨(72)는 서울 대리점을 방문하러 왔다가 발이 묶였다. 손씨는 “차편이 취소되면서 일정도 꼬여서 그냥 모텔에 하루 더 묵으려 한다”고 했다.
매표창구에서 손님들을 응대하는 역무원들도 분주했다. 이날 오전 9시부터 근무했다는 역무원 김모씨(34)는 30명가량 매표소 앞에 줄 선 모습을 보며 “일반 열차가 취소됐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하고 온 손님들에게 전액 환급 처리를 해주고 (이용 가능한) 다른 열차로 예매를 도와주고 있다”면서 “다들 예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최대한 친절하게 응대하려고 한다”고 했다.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안내하던 질서통제요원 임금녀씨(62)는 “그래도 어제보다는 한산한 편”이라면서 “어제는 급작스럽게 열차가 지연되면서 역사에 빈틈없이 사람이 들어찼다”고 했다.
기차표가 줄줄이 취소되자 버스를 타기 위해 시민들이 몰려들면서 고속버스터미널도 붐볐다.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은 부랴부랴 버스표를 예매한 승객들의 발길로 분주했다. 지난 금요일 충남 홍성에서 경기 하남에 사는 지인을 만나기 위해 수도권으로 왔다는 조모씨(56)는 “급하게 버스표를 알아봤는데 대부분 매진”이라며 “간신히 한 자리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광주에서 온 70대 어머니를 배웅하러 나온 강윤주씨(50)는 어머니가 돌아갈 길이 걱정이라고 했다. 강씨는 “오전 9시쯤 무궁화호 열차로 가시려고 했는데 운행이 중단된다는 문자를 받고 오후 2시쯤 가는 버스로 바꿨다”면서 “침수 때문에 지하철도 느리게 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 나왔다. 광주에도 비가 많이 온다고 하는데, 가는 길에 무슨 일 없어야 할 텐데 걱정”이라고 했다.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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