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초 차이로 생사 엇갈린 오송 지하차도···오전 8시40분의 '악몽'
차량 15대가 잠기고 최소 11명 이상이 고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제2궁평지하차도에서 가까스로 ‘죽음의 터널’을 빠져나온 이들의 절박한 순간이 알려지며 희생자를 향한 안타까움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15일 연합뉴스는 오전 8시40분께 이곳을 지난 A씨의 탈출을 보도했다. 그는 청주에서 세종으로 가기 위해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향해 차를 몰고 있었다.
지하차도에 들어설 즈음 도로에 물이 유입됐고 차도를 벗어날 즈음 차량 바퀴가 물에 완전히 잠겼다.
간신히 오르막길로 빠져나와 백미러를 보자 지하차도로 물이 폭포수처럼 들이치고 있었다. 간발의 차이로 '죽음의 터널'에서 탈출한 것이다.
A씨는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아찔하다"며 "몇초만 늦게 지하차도에 진입했더라도 물속에 갇혔을 것"이라고 말했다.
A씨와 같이 아슬아슬하게 위험을 벗어난 차량의 아찔한 상황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알려졌다.
한 차량은 지하차도 중간에서 물이 차오르는데 버스에 가로막히자 순간 판단으로 차를 돌려 다급하게 역주행해 빠져나갔다. 잠시만 머뭇거렸으면 탈출이 아예 불가능했을 수도 있었다.
당시 이곳을 지나던 시내버스와 트럭 2대, 승용차 12대 등 차량 15대가 결국 이 지하차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청주국제공항∼오송역을 운행하던 시내버스 747번은 폭우로 침수된 다른 도로를 피해 노선을 우회했다가 참변을 당했다.
버스는 지하차도 터널구간을 거의 빠져나온 상태에서 밀려드는 물에 발이 묶여 침수됐다.
궁평2지하차도 인근의 미호강에는 15일 오전 4시 10분 홍수주의보가 내렸다. 당시 청주는 이틀째 400㎜에 육박하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하천의 수위가 '심각 수위'까지 도달하자 금강홍수통제소는 관할구청에 교통통제 등이 필요하다고 알렸으나 행정당국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많은 차량이 평소처럼 이 도로에 진입했다.
미호천교 인근의 둑이 유실되면서 하천의 물이 삽시간에 지하차도로 쏟아져 들어왔다. 길이 430m의 지하차도 터널은 2∼3분 만에 6만톤의 물로 가득 찼다.
지하차도에 배수펌프가 있지만 배전실도 물에 잠기면서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일부 탑승자들은 간신히 차량에서 탈출했으나 상당수는 순식간에 들이찬 물에 옴짝달싹 못 하는 차량에 그대로 갇혀버렸다.
침수된 차량 지붕위에 올라갔다가 계속 차오른 물에 휩쓸린 피해자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고 현장에서 구조된 시내버스의 한 탑승자는 "갑자기 엄청난 양의 물이 지하차도로 쏟아져 들어와 공포스러웠다"며 "버스가 완전히 물에 잠기기 직전에 겨우 창문을 열고 나와 허우적거리다 간신히 난간을 붙잡고 버텼다"라고 악몽과 같은 당시 상황을 전했다.
8시 45분께 신고를 접수한 소방당국은 5분여만에 현장에 출동했다. 1시간여 동안 9명을 구조하고 사망한 1명을 찾아냈다.
10시 20분께 중앙구조본부에 지원을 요청하고 피해자 구조·수색에 나섰다. 구조·수색에는 소방, 군인, 경찰 등 390여명이 동원됐다.
군부대와 소방 특수구조단까지 동원한 수색작업은 지하차도가 흙탕물로 가득 찬 데다 무너진 둑에서 계속 물이 밀려들면서 잠수부도 투입하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봐야 했다.
당국이 무너진 둑을 복구하기 시작하고 비도 점차 잦아들면서 고무보트가 들어갈 틈이 생겼다. 사고 발생 21시간만인 16일 오전 5시 55분께부터 잠수부 4명이 수색을 시작했다.
7시 26분께는 침수된 시내버스에서 5명의 시신을 처음으로 수습했다. 이 중 한 명은 탈출을 시도했는지 버스 앞쪽 출입구에서 발견됐다.
이후 시신 3구를 추가로 인양해 이날 오후 2시 현재 모두 8구의 시신이 추가로 인양됐다.
버스 안에 있던 시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차량 밖으로 빠져나와 안간힘을 다해 탈출을 시도하다가 거센 물살에 힘을 잃고 물 속으로 빨려들어갔던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 등에 신고된 실종자는 모두 11명이다. 하지만, 신고되지 않은 피해자가 더 있을 가능성이 있어 인명 피해 규모가 더 커질 우려가 있다.
한 실종자의 가족은 "도심의 도로를 지나다 이런 사고를 당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시신이라도 빨리 찾았으면 좋겠다"고 슬퍼했다.
김태원 기자 revival@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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