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이란 게 있을 수 있으니...” 산사태 덮친 경북, 희망 놓지 않은 실종자 수색

김현수·김세훈 기자 2023. 7. 1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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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발생해 마을 대부분이 매몰된 경북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 일대에서 실종자를 찾기 위한 수색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조태형 기자

“천에 하나라도, 만에 하나라도, 제발 살아만 있어 줘라. 기적이란 게 또 있으니까….”

16일 오전 9시쯤 경북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 실종자 수색 현장에서 만난 주민 장봉덕씨(56)가 삽에 묻은 진흙더미를 털어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옆 마을주민인 그는 전날부터 밤을 꼬박 새웠다. 이웃 2명이 아직도 진흙더미 아래에 묻혀 있어서다. 장씨는 “(산사태로 다친) 형님이 형수님 좀 꼭 찾아달라는 말을 남기시곤 병원으로 가셨다”며 “형님 부탁을 못난 동생이 못 들어줬다”라며 자신을 자책했다. 장씨의 형수는 지난 15일 진흙더미에서 구조됐으나 결국 숨을 거뒀다.

16일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발생해 마을 대부분이 매몰된 경북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 일대에서 마을 주민의 가족이 부모님이 키우던 반려견과 함께 토사가 덮친 집을 빠져나오고 있다. 조태형 기자

14가구가 사는 이 마을에서 산사태가 난 시간은 지난 15일 오전 5시16분쯤. ‘쾅’하는 굉음과 함께 산에서 쏟아져 내려온 토사는 집 5채를 흔적도 없이 쓸고 지나갔다. 주민 김영훈씨(76)는 “깜짝 놀라서 나와보니 집 마당에 있던 농기계가 모두 쓸려나갔다”며 “순식간에 옆집들이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사방이 흙더미라 이대로 죽는구나 싶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날 수색 현장에는 산에서 휩쓸려 내려온 바윗덩어리와 나무, 진흙들로 뒤엉켜 원래 어떤 장소였는지 가늠하기도 힘들 정도로 처참했다. 세탁기와 냉장고 등 대형 가전제품들은 휴짓조각처럼 구겨져 있었고 자동차는 뒤집혀 흙더미 사이에 처박혀 있었다. 무릎까지 들어가는 진창으로 변해버린 이곳에서 소방과 경찰대원들은 곳곳을 철제 탐지봉으로 찔러가며 실종자를 애타게 찾았다. 백석리에서는 산사태로 3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된 상태다.

지난 15일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마을회관에는 실종자 윤모씨(62)의 언니와 남편을 비롯한 가족 10여명이 서로 부둥켜안고 통곡했다. 이들을 지켜보던 소방대원과 주민들도 눈가에 맺힌 눈물을 몰래 훔쳐냈다. 윤씨는 산에서 쏟아져 내린 물살에 휩쓸려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예천군 산사태 피해 현장

윤씨는 지난해 3월 이곳으로 귀농했다고 한다. 경기 수원에 살 당시 유독 마음이 잘 맞았던 삼총사 중 두 명이 예천으로 귀농하면서다. 다 같이 모여서 농사짓고 재밌게 살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윤씨는 귀농을 결심했다. 이날 만난 윤씨의 친구인 송덕자씨(64)는 “귀농해서 사니까 그렇게 좋다고 자랑했는데 너무 후회스럽다. 나 때문에 이런 큰일을 당한 것 같다”며 “제발 우리 친구 좀 찾아달라”며 울먹였다.

이 마을주민 70대 A씨도 폭우로 실종됐다. 마을진입로에 있었던 A씨의 집은 빗물에 휩쓸려 터만 남았다. 다행히 아들 B씨는 물살에 휩쓸릴 당시 주변의 풀 등을 잡고 겨우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주민 박태금씨(76)는 “아들이 아버지가 컨테이너 조각을 붙잡고 떠내려가는 것을 보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고 한다”며 “아들이 나를 붙잡고 하소연하는데 어찌나 슬프던지…”라며 말을 잊지 못했다.

영주시 영주동 영주초등학교에 마련된 임시대피소에는 10여명의 영주1동 주민들이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이날 오전 9시30분쯤 이곳의 주민들은 탁자에 둘러앉아 서로 상황을 공유하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주민 손연화씨(74)는 “전날 밤새 내린 비에 집 앞 둑이 터졌다. 앞으로 비가 더 오면 집이 무너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곳으로 왔다”고 말했다.

16일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발생해 마을 대부분이 매몰된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일대 마을에서 인근 마을 주민이 밀려온 토사를 바라보고 있다. 조태형 기자

산사태로 2명이 목숨을 잃은 영주 풍기읍의 안타까운 사고 소식도 전해졌다. 풍기읍에 거주하는 최경희씨(82)는 “쾅 하는 굉음과 함께 비명이 들렸다”며 “밖으로 나가보니 큰아들이 머리만 내놓은 상태로 흙더미에 깔려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놀란 최씨와 가족들이 맨손으로 흙더미를 파내 큰아들을 구하자 곧이어 옆집에 엄청난 양의 토사가 쏟아졌다고 했다. 최씨는 “그곳에 살던 일가족 2명이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들었다”며 말끝을 흐렸다.

이번 집중호우로 이날 오후 5시 기준 경북에서는 예천·영주·봉화·문경지역에서 19명이 숨지고 8명이 실종됐다. 사망자 가운데 15명은 산사태로 인해 토사에 매몰된 경우다. 나머지 3명은 빗물에 휩쓸렸다가 변을 당했다.

예천군 감천면 진평·벌방리, 효자면 백석리, 은풍면 은산·금곡리 등 5개 지역에는 소방과 경찰, 군인 등 2413명이 투입돼 구조와 수색 등을 하고 있다.

16일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발생해 마을 대부분이 매몰된 경북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 일대에서 소방대원들이 실종자 수색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조태형 기자
농작물 피해도 극심…마을회관에서 ‘라면’으로 끼니 때워

“앞이 막막하지. 막막해도 어째? 사람 죽어 (마을이) 초상집인데 우는 소리도 못 해.”

16일 오전 경북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에서 만난 70대 주민 이모씨는 엉망이 된 사과밭을 생각하며 근심에 잠겼다. 전날 내린 폭우로 사과 농장이 쑥대밭이 됐지만 길이 끊어져 돌볼 수 없어서다. 이씨는 “솔직히 비가 그쳐 해가 떠도 걱정”이라며 “해가 뜨면 약을 쳐야 벌레가 안 먹는데 이래서야 사과 한 쪽이라도 건질 수는 있을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또 다른 60대 주민은 키우던 소 6마리가 토사에 반쯤 파묻혀 있다고 했다. 이 주민은 “실종자 수색이 우선이라 소를 구할 수 없다고 한다”며 “목숨이라도 건진 건 다행이지만 전 재산과 같은 소가 폐사할까 봐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유영빈씨(29)도 이번 산사태로 사과밭을 잃었다. 유씨는 “3000평 정도 되는 사과밭이 그대로 흙더미에 묻혀 버렸다”며 “수확을 앞두고 황망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경북도는 지난 9~16일 2571가구의 농작물 1562.8㏊가 이번 집중호우로 인해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주로 지난 13일부터 쏟아진 폭우로 인한 피해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경북도 관계자는 “현재 곳곳에서 크고 작은 산사태가 발생하고 길이 침수되거나 파손된 상태여서 조사할 수 없는 지역이 많다”며 “앞으로 피해 규모가 훨씬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축산 분야에서도 피해가 막심하다. 영주·상주·문경·예천 등 농가에서 소 19마리와 닭 6만마리, 젖소 1마리가 폐사하고 축사가 침수되거나 부서진 것으로 조사됐다.

산사태를 피해 마을회관 등 대피장소로 피신한 이들은 대부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계속된 폭우로 집과 농작물 등 걱정이 앞서서다.

영주시 영주동 영주초등학교로 대피한 정영희씨(70)는 “집이 어떻게 됐는지도 잘 모르고,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몰라서 어젯밤을 한숨도 못잤다”며 “추가 피해가 발생하지 않게 제방 작업을 좀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북 예천군 은풍면 금곡2리 마을은 지난 15일 폭우로 전기와 수도가 모두 끊겼다. 냉장고까지 멈춰 음식 재료가 부족해지자 마을주민들은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60대 김모씨는 “사고 당일(15일)에는 빗물을 모아 쌀을 씻어 밥을 해 먹었다”며 “이런 비는 난생처음 본다”고 혀를 내둘렀다.

소방당국과 함께 경찰도 실종자 수색과 수해 복구를 위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경찰특공대 특수대응팀 등 경북경찰청 소속 2200여명의 경찰관은 예천·봉화·문경 등에서 수해 복구에 손을 보태고 있다. 지난 15일 오전 11시쯤 예천군 용문면 금곡리에서 산사태로 고립된 주민 1명이 경찰 기동대원의 재빠른 수색 덕에 긴급 구조되기도 했다.

경북경찰청 관계자는 “주민 대피지역에서 혼란을 틈탄 ‘빈집털이’ 등 틈새 범죄를 차단하기 위한 정밀순찰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발생해 마을 대부분이 매몰된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일대 마을에 16일 토사가 밀려와 있다. 조태형 기자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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