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서사의 완벽한 휘날레…이오공(250), 세종문화회관서 '꿈이었네'

이재훈 기자 2023. 7. 16.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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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반 '뽕' 위주로 70분간 스탠딩 공연…'아직도 모르시나요'
뉴진스 프로듀서 아닌 독자성 보여준 무대
이정식·오승원·나운도 등 디졸브 연상시킨 피처링 연출 일품
[서울=뉴시스] '아직도 모르시나요' 250. 2023.07.16. (사진 = 세종문화회관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1980년대 후반 아니면 1990년대 초반. 부모도 형도 오지 않은 오후 시간대 초등학생은 홀로 TV 앞에 앉아 애니메이션 '아기공룡 둘리'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1980~90년대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정서는 모두 슬펐다. TV애니메이션까지. '둘리' 뿐 아니라 '까치'도 그랬고 '하니'도 그랬다. 모두 슬픈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1982년에 태어난 프로듀서 겸 DJ의 댄스 음악은 그래서 슬플까. 이오공(250·이호형)이 지난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발매한 첫 음반 '뽕'은 여전히 재발견되고 있다. '뽕짝' 또는 '뽕'이라 불리는 트로트를 약 4년 간에 걸쳐 전자음악으로 재해석해낸 역작. TV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재발견되나 싶더니 다시 속절없이 사라져간 트로트는 250을 만나 여전히 펄떡거리고 있다.

지난 15일 오후 9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펼쳐진 공연 '아직도 모르시나요'는 250 음악의 위력과 매혹을 오프라인에서 새삼 발견하는 자리였다.

지난해 서울 종로구 무도회장 국일관에서 열린 논스톱 하드코어 뽕 잔치 '퓨쳐 관광 메들리' 무대에 오르고, 일본 투어도 돌았지만 250이 국내에서 '뽕' 음반으로 제대로 된 단독 공연을 보여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의 이름값을 증명하듯, 해당 공연은 티켓 예매가 오픈되자마자 단숨에 매진됐다.

고작 상반기가 지났을 뿐지만, 감히 올해 최고 공연 중 하나로 자부할 수 있는 이날 무대의 250은 신드롬 걸그룹 '뉴진스' 프로듀서나 '한국대중음악상' 4관왕이라는 수식 없이 그저 '라이브 퍼포머'로 부르면 충분했다. 아이돌 음악에 기대지 않는 '뽕'과 전자음악만의 잔치였다.

[서울=뉴시스] '아직도 모르시나요' 250. 2023.07.16. (사진 = 세종문화회관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쿵짝쿵짝 쿵짜자 쿵짝~♪♬' 네박자가 전자음악 사운드로 직조되고 붉고 푸른 조명이 마치 K팝 군무처럼 활개 칠 때, 몽환성이 극에 달했다.

특히 피처링진의 등퇴장은 영상에서 두 화면을 얕게 겹치는 '디졸브(dissolve)' 같은 우아함이 있었다. 높은 무대 위 가운데에 자리 잡은 250 양 옆 어두운 곳에 자리하고 있던 피처링 주인공에게 조명을 비추는 방식이다. 무대 위 동선, 관객의 시선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마치 음악이 번지는 듯한 연출 기법이었다.

무엇보다 음반 '뽕'처럼, 피처링진이 쟁쟁했다. '로얄 블루'에선 색소폰 거장 이정식이 가세해 '어른의 소리'를 들려줬다. 나무로 만든 리드를 사용하는 목관악기인 색소폰과 전자음이 만나 사운드 결을 해체하고 조합하는 인생의 선순환을 보여줬다.

'모든 것이 꿈이었네'의 나운도(원래는 김수일 보컬), '휘날레'의 오승원 각각의 보컬은 전자음악에서 아날로그의 고유성을 보듬는 길로 나아가게 했다. 오승원이 부른 '아기공룡 둘리' 주제가는 그의 목소리가 아닌 관객들의 떼창으로 울려퍼졌다.

[서울=뉴시스] '아직도 모르시나요' 이정식, 250. 2023.07.16. (사진 = 세종문화회관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250이 신시사이저로 음을 연주하고 왠지 구슬픈 멜로디의 이 곡을 남녀노소가 합창할 때, 서정 혹은 향수는 극에 달했다. 250이 같이 부르자는 신호를 전혀 하지 않았음에도 '집단 기억'에 내재됐던 멜로디가 저절로 길어 올려지는 마법 같은 순간이 연출됐는데, 그건 콘텐츠의 힘이다.

이렇게 사운드·조명의 질감과 공연 연출에서 흠 잡기 힘들었던 공연은 서사적으로도 완벽했다.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관객들이 스탠딩석에 직선처럼 서 있던 초반에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로 공연을 시작했고, '모든 것이 꿈이었네'를 거쳐 '휘날레'(피날레)로 마무리하는 서사는 완결성이 있었다. 비교적 짧은 러닝타임 70분으로 이걸 해냈다.

앙코르 격인 '춤을 추어요'(원곡 장은숙)는 나운도의 질펀하면서도 아련한 목소리, 한상철의 강렬한 기타 연주가 만나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정서를 뿜어냈다. 우리나라 시(詩)로 치면 조지훈의 '승무' 같은 거다. 슬프지만 슬픔을 붙잡고 울고 있는 게 아니라 뭐라도 해야 해서 춤을 춰야 하는 상황. 그것이 250 댄스음악의 근간이고 이날 공연은 그 근원에 대한 근거가 됐다. 애틋함에 대한 긍정이 애절한 댄스 음악을 낳았다. 250은 누구의 프로듀서이기도 하지만 그 홀로도 독자성을 충분히 갖는다.

이날 공연은 안호상 사장이 부임 이후 세종문화회관이 야심차게 진행 중인 세종 컨템퍼러리 시즌 '싱크 넥스트 23(Sync Next 23)' 일환이었다. 광화문 중심에 자리한 세종문화회관은 여전히 대중이나 대중문화 예술인에게 벽이 높은 이미지가 있다. 주말 밤에 블랙박스 극장을 스탠딩 클럽(2층엔 지정석이 있었다)으로 만들고 좋은 음악에 맥주까지 곁들일 수 있게 한 개방성으로, 이날 만큼은 세종문화회관이 힙스터들의 성지가 됐다. '모든 것이 꿈이었네'가 아닌 새로운 공연문화의 시작이었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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