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이 한국에 머물렀다면…[김세훈의 스포츠IN]

김세훈 기자 2023. 7. 16.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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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인이 자기 PSG 유니폼에 사인하고 있다. PSG 페이스북 캡처



이강인(22)은 공을 차고 놀았다. 6세 때 ‘날아라 슛돌이’에 출연했다. 또래는 물론 형들보다 잘했다. 소년은 10세 때(2011년) 스페인 발렌시아 아카데미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13년 동안 기술 축구를 추구하는 스페인에서 자랐다. 청년이 된 그는 최근 네이마르(브라질), 킬리안 음바페(프랑스) 등 세계 최고 공격수가 속한 프랑스 명문 파리 생제스맹(PSG)에 입단했다.

이강인이 스페인으로 가지 않고 국내에 머물렀다면 지금처럼 대성할 수 있었을까.

한국 학원 축구 감독들은 대부분 체격이 좋은 선수를 선호한다. 기술과 재간이 아니라 힘과 체격으로 상대를 누를 수 있는 선수들 말이다. 그래야 골을 넣고 잠그는 축구, 버티는 축구, 뻥축구, 고공 축구를 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잖은 단신 테크니션들은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과정에서 축구를 그만둔다. 중학교, 고등학고 저학년 때 축구를 포기하는 선수도 대부분 단신이다. 이강인의 키는 1m73이다. 실제로 보면 그보다 약간 더 작다. 이강인이 한국 시스템에서 있었다면 기술과 재간을 맘껏 부릴 수는 있었을까. 출전 기회나 제대로 얻을 수 있었을까. 축구를 계속할 수나 있었을까. 물론 가정한 상황이지만 답은 ‘노’다.

이강인은 드리블을 좋아한다. 개인 플레이를 할 때도 있고 패스 타이밍이 늦을 때도 있다. 한때는 체력이 약해 선발로는 부적절하다는 평가도 들었다. 수비 가담에 소극적이라 공격수도 수비하는 현대 축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도 들었다. 그게 이강인이 벤투호에서 제대로 뽑히지도 못했고 뽑혀도 출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이유였다. 그래도 이강인은 포기하지 않았다. 자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팀 플레이에도 능해지면서 찬스도 많이 만들었다. 중앙 미드필더뿐만 아니라 윙어까지 소화했다. 수비도 적극적이었고 요령도 좋아졌으며 스피드와 체력도 향상됐다. 포지션과 무관하게 수준급 공격과 수비까지 해내는 만능 플레이메이커로 성장한 것이다.

최근 인터 마이애미(미국)로 간 리오넬 메시(36)는 PSG에서 2년간 뛰었다. 그는 10세 때 성장 호르몬 부족판정을 받았다. 그는 14세 때인 2000년 아르헨티나를 떠나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이주했다. 바르셀로나는 호르몬 치료비까지 지원했다. 메시의 공식적인 키는 1m70. 그는 작지만 빨랐고 겉보기에는 왜소하지만 강했다. 메시는 “내가 가진 다양한 기술들은 내 약점을 장점으로 바꾸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물”이라고 말하곤 했다.

이강인은 한국 국적이다. 공을 차기 시작한 곳도 한국이다. 그런데 그가 선수로 대성하는 데 아주 중요한 골든타임인 10대 모든 시간을 보낸 곳은 스페인이다. 태어난 곳은 한국이지만 길러준 곳은 스페인인 셈이다. 이강인이 스페인을 거쳐 PSG로 간 것은 승패·체격·몸싸움 위주인 한국 육성 시스템이 기술·체력·경험 중심으로 무조건 옮아가야 함을 의미한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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